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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세상의 선생들은 그에게 배우는 제자들에게 "너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거나 "너는 무엇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벌써 완성된 상태로 이름하여 부르신다.
오늘 본문에서도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거나 "너희는 장차 세상의 소금(빛)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환기시키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벌써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어지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하나님께서는 온전치 못한 우리들을 온전케 하시고 또 온전하다고 인정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여기는 중요한 의미와 역할을 생각게 한다. 우리가 불안전 하지만 하나님의 의에 붙들리면 불안전한 우리가 완전한 하나님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과 함께 우리 그리스도인 각자가 책임을 갖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소금과 빛이 되게 하시고 세상 속에서 그렇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 각자가 그러한 기대에 부응치 못한다면 우리 삶 자체가 배은 망덕이 될 것이다.
오늘도 이 말씀이 하나의 이야기로 그치고 말까? 하는 걱정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들로서 세상에서 소급과 빛으로 확신되기를 바란다.
Ⅰ.세상의 소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밖으로 불러 내셔서 새사람이 되게 하시고 다시 그 세상 속으로 가라고 명하신다. 하늘 나라에는 우리의 소금의 역할도 빛의 역할도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썩어 가는 세상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주님께서는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후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28:19)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하셨다 물론 안타까운 심령으로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눅10:3) 하시면서도 그의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 보냄 받은 사람들이 누구인가? 바로 '나(우리)'이다. 그럼으로 세상에 주님의 귀중한 중책을 부여받고 다시 보냄을 받은 무리들이 바로 오늘 우리인 것이다.
Ⅱ.소금은 좋은 것이다.
오늘 본문의 병행 구절인 마가복음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4:34~35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두 군데서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는 내용은 "소금은 좋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분명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는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이다.
소금은 구약의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식에서 사용되었다. 율법서 중에서 중요한 제례와 성결 법전인 레위기 2:13에서 하나님께서 이를 명하고 계신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소금은 고대의 모든 제사의식이나 계약에서 사용되었다. 소금은 고대인들 사이에서는 우정과 충성의 상징이었고 아라비아인들은 동맹계약을 맺을 때 소금으로 승인하는 관습이 있었다. 소금은 고대의 이방 세계에서도 그들이 절대로 범하지 않는 호의에 대한 신성한 보증이었다.
(1)부패 방지로...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출30:35)
주님께서 우리(나)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실 때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하여 썩어짐이 방지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오늘의 세상의 부패는 세상의 부패의 정도가 심해서 라기 보다는 바로 우리(나) 자신들이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썩어 가는 세상을 위하여 오늘 여기 소금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두셨다. 그럼으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벌써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회개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선언은 세상은 너를 인하여 보전되어 진다는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 세상이 썩은 원인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우리) 자신이 부패를 방지하기보다는 함께 썩었기 때문임을 오늘 우리 각자는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정화 능력을 잃어버린 시와湖가 되어 버려서 걷잡을 수 없으리 만큼 썩어서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려서 자신 속에 들어오는 오폐수조차도 정화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오늘 우리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다시 한번 각성해야만 한다.
(2)변하지 않는 성질로...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민18:19; 대하13:5)
소금은 녹아도 결코 성질이 바뀌지 않는다. 나트륨(Na+) + 염소이온(Cl ) 시종일관 변함이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 자신을 세상을 위하여 녹이되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님처럼 변함이 없는 도구이어야만 한다.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자신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은 너무 세상에 많이 물들어 버려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본질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본연의 모습을 중요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반대로 자신을 녹이지 못하는 독선으로 양극화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3)맛으로...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막9:50)
욥은 그의 세 친구들에게 의미 없는 이생을 비유하여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욥6:6)고 고백한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실 때 세상은 우리들을 인하여 인생의 사는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맛이어야 한다. 그러나 역시 나(우리) 자신이 생명의 맛, 사는 맛을 잃어버림으로 오늘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잘못된 대서 인생의 맛을 찾으려 한다. 그것이 바로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음란한데서 맛을 찾으려는 현대인들의 일면이다. 그럼으로 역시 이러한 입장에서도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의 맛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별 된 삶을 삶으로서 진정한 사람 사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 줘야하고 성결의 삶을 삶으로서 심판의 짠맛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소금은 생명의 능력이기도 하다. 우리 몸에서 소금 성분인 나트륨의 전해질이 일정량 이상으로 빠져나가면 사람이 탈진이 되고 쓰러지게 된다. 그런 입장에서 소금은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다.
오늘 날 우리 하나님의 성도들이 당당히 살기만 한다면 많은 절망하는 영혼들에게 인생의 맛을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
Ⅲ.맛을 잃으면 버림을 당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선언하신 예수께서는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백성이라 이름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신앙인들을 향한 심판의 선언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1)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의 귀중 성을 말씀하신다.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하나님께서 오늘 이 부패한 세상, 범죄하여 절망과 죽음의 저주가 판을 치는 세상을 하나님께로 불러 회복시키는 일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희생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생명을 찾아 주시고자 하신다. 이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며 이것은 적어도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일이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1:20)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1:4)
그러므로 오늘 내가 이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를 통해서도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롬14:20f)고 경계 하신바 있고,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6~7)라고 하신 말씀도 함께 이해를 해야만 한다. 잘못되고 부패된 것을 정화해야 할 놀라운 역할을 외면하는 처사이기 때문에 두려운 책망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입당에서 안타까운 하나님의 탄식을 들어야 한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2)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무용지물이다.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 다는 것은 귀하고 놀라운 일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1) 하나님 나라에서 쓸데없는 존재는 어디에도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주님은 무익한 죄인들도 새롭게 하여 쓰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특히 밖에 버리워 진다는 말은 참으로 두려운 의미를 가진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6) 거나 마태복음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8:12, 22:13)는 표현은 지옥의 형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라는 인정은 대단한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성이다.
(3)하나님께 보다 먼저 사람들에게 밝힘을 당한다.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하나님께서 "…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13) 는 무서운 결과를 예언하신다. 그리스도인들만큼이나 바른 신앙을 잃게 되면 사람들에게 밟히는 일도 드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악하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의로운 기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자기네들끼리 잘못된 것들은 어느 정도 묵인을 하면서도 신앙인들이 범죄 하거나 실수하는 것은 "예수쟁이들이 그럴 수 있느냐?"고 흥분을 한다. 실재적으로 신앙인들이 본분을 잃고 범죄 하면 더 가혹하게 보복을 하는 예는 오늘날에도 드물지 않게 듣게 된다.
우리는 신앙의 지조를 분명히 가지고 삶으로 세상사람들에게 밟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Ⅳ.결론.
구약 성경에서 엘리사는 여리고 성에서 소금으로 물을 고침으로 토지 소산이 익기전에 떨어지는 것을 고치는 기록을 본다.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왕하2:19~22)]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나)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선언하신다. 이러한 선언은 그만큼 우리를 귀중한 존재로 대우하신다는 의미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중은 "서면 교회의 성도들아 부산 도성의 썩어 가는 부패를 치료하기 위해서 내가 너희들을 세웠다. 부디 그 사명을 잊지 말고 맛(본분)을 잃지 안도록 최선을 다하여라!" 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세상과 같이 썩을 수 없는 귀한 존재의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거나 "너희는 장차 세상의 소금(빛)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말씀하심을 새롭게 확신하자.
오늘 우리(나)는 과연 어떤 소금인가? 세상이 나 때문에 사는 맛을 찾고 부패가 방지되고 생명의 활력을 찾게 되는가? 아니면 맛을 잃어서 버림을 당하고 세상사람들에게 밟히는 소금인가? 주님께서 오늘 나(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확신시키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부산 도성을 치료하는 귀한 소금 같은 존재들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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