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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경계를 더러 주고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긴 하는데 너희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그리스도인인가를 반드시 점검하라"는 것이다. 약2:18"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믿음이 있지만 나에게는 행동이 있소. 나는 내 행동으로 내 믿음을 보여 줄 테니 당신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오."[공동]
이 말씀은 내년도의 푯대 세움 말씀이면서 중요한 신앙적 과제이기 때문에 오늘 한시간 이 말씀을 살펴서 믿음을 확고히 했으면 한다. 먼저 우리말 번역본들의 의미가 각각 흥미로워서 살폈으면 한다.
"여러분은 자기의 믿음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따져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계십니까? 만일 깨닫지 못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낙제한 것입니다."[공동번역]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하여 보고,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 모르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표준 새 번역] "여러분 자신을 잘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험에 합격하였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며 여러분 속에 역사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더욱더 실감하고 있습니까? 그와 반대로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된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현대어 성경] "여러분은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시험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우리 대한민국처럼 그리스도인은 많은데 왜 우리의 현실은 이렇게 점점 어두워가고 절망 스러운 모습으로 점점 나아가는 것일까? 생각하면 참으로 참담하다. 그러나 그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건치 못한 그리스도인 중에 나도 공범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원망하고 안타까워하게 된 원인의 제공자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만 한다.
알 것은 다 알고 하나님의 원하심도 알고 있는데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일까? 확인하고 나의 올바른 신앙의 역할과 시도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내년도의 신앙의 목표이다.
오늘 이 귀중한 점검은 "과연 내가 믿음 안에 있는가?"를 나 자신의 판단에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따지고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이고, 낙제한 것이며, 실격자이고 그리스도인이 된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며, 불합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다.
Ⅰ.사전적 의미.
①"시험하다(peirazo)" (객관적으로)시험하다, 자세히 조사하다, 유혹하다, 훈련하다, 증명하다 (마4: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우리 각자는 내가 믿음 안에 있는가 자세히 조사하여 증명해야 한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과 명령 속에 순종하는 삶이다. 그것도 남들이 인정하는 증거가 되어야 객관적일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요6:6) 예수께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시면 서도 빌립의 믿음의 그릇을 시험하시는 모습이 여기 쓰인 말씀과 일반이다. 분명히 빌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뽑으셨고 그 때까지도 주님을 따라 거기까지 온 주님의 제자였다. 그러나 주님을 따라 다녔다는 그것 가지고는 주님의 참된 제자임은 증명되지 않았고 실제로 극한 상황에서는 가룟 유다가 아니라도 주님을 많이 더나 가는 것(요6:66"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을 성경에서 보면 이러한 시험은 수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쳐야 할 학기말고사 같은 것이다. 교회만 항상 나오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우리는 매 순간 내가 진정으로 믿음 안에 있는가를 시험해야만 하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의 영원히 안전한 보호처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9)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한번 구원받은 자들은 영원히 구원을 놓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그 약속 안에 머무를 때만 보장됨을 성경은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딤후1:1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딤후2:1)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딤후2:10)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6)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만 가치가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시험되어져야 한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에서 바울은 긍정적인 표현이지만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6~7) 함으로서 자신들이 믿음에 있으므로 견고함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마음껏 하나님의 나라의 약속을 향유하는 장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 하는 믿음뿐이니라"(갈5:6) 세상에도 믿음이나 신념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으로 인도하는 효력 있는 약속의 도구인 것이다.
오늘 이 말씀과 함께 각자가 믿음에 있는가 자신을 확증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빈다.
②"도키마조(dokimazo)" 시험하다, 증명하다, 입증하다, 옳다 하다, 인정하다, 시도하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5:10);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2:4)
고전11: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이 '확증하라'는 말의 의미는 앞의 '시험'하라는 의미보다는 더 진보된 뜻을 가진다. '도키마조'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말씀 중에 들어서 아는 말로서 제련소에서 순금을 골라내는 작업에서 유래된 낱말로 순수한 것을 확증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벧전1: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세적 당부에서 그 뜻이 잘 나타나 있다.
시간과 상황 그것도 고난과 환난을 겪으면서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모서리는 다 달아지고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품으로 순화 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수 없는 시험의 단계를 거쳐서 보다 성숙되어지는 모습을 의미한다. 마치 매 중간고사, 학기말 시험을 거쳐서 마침내 상급생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많은 사람들은 남에게서는 이런 것을 요구하면서도 자신의 순화는 생각지 못하는 경향이 많은 것을 보는데 안타까운 사실이다.
우리 각자의 믿음이 시험되고 순화되어져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6: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4)는 사도들의 권면이 그대로 이루어지시기를.....
③"아도키모스(adokimos)" 공인되지 않은, 즉 거절된, 가치 없는(금을 골라낸 찌꺼기), 신에게 버림받은(롬1:28)"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앞에서 쓰인 "dokimazo"에 부정의 의미인 알파(a)가 합쳐져서 불같은 시련에서 불합격되어 버려지는 부분을 의미한다. 고전9: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은 한 사람도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빈다.
Ⅱ.교회 안에서 진정한 믿음의 확증은 어떻게 나타날까?
야고보가 기록한 것처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2:18) 하였는데 과연 교회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어떻게 확증되어 지는 것일까?
여러 가지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섬김"이라는 모습이 우선 일 것이다. 위로는 하나님을 그리고 교회 속에서는 그의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로 표현 될 것인데 이것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고 바울 사도도 당부하신 믿음의 교훈이요 손수 실천하신 분들이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8:3)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행20:19)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6:10)
그리스도안에 있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믿음의 사실적인 모습은 겸손과 온유로 섬기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신앙의 삶일 것이다.
Ⅲ.세상 속에서 확인은 무엇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확증이 세상 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그것은 이해되지 않고 어울리지 않을지라도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일 것이다. 불이익이 오고 거짓된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어울리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모든 분야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것이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고 그것이 가장 바른 전도가 될 것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속에서는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세상에 나가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다름이 없이 물고 뜯고, 자신의 것은 손해보지 않으려고 성경에서 얻은 지혜는 오로지 나의 것을 잃지 않으려는 간교한 쪽에만 쓰는 그런 것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복음이 가려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새해부터는 세상 속에서 믿음 있음을 확증하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Ⅳ.이 당부는 누구에게 주어지고 있는가?
이 한 절의 말씀 속에는 "너희자신"과 "너희"라는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쓰여지고 있어 강조적으로 들린다. 마치 바울 사도가 나를 향하여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너 자신이 믿음에 있는가 너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 안에 계신 줄을 네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네가 버리운 자니라" 고 말씀하는 기분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아닌 여기 있는 우리 각자에게 이 당부는 주어지고 있다
Ⅴ.결론.
세상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속담이 "두 마리의 토끼를 좇다가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어리석은 시도를 잘도 한다. 세상 것도 잃지 않고 천국도 소유하려고 하는 욕심이 그것이다. 그것 때문에 때로는 믿음이 있는가가 의심될 때도 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를 버려야 다른 하나를 온전히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시는데도 그러한 말씀은 들리는 것 같지 않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세상이 감당치 못할 것임(히11:38)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 같다.
오늘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는 당부의 말씀이 오늘 이후부터 영광의 순간까지 매 순간의 경계로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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