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히 6:1~8 2000-08-27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우리는 또 하나의 결실의 때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잘 자라오던 오곡과 실과들은 많은 비로 인하여 결실을 앞두고 상하고 낙과가 됨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자연에 속한 농사일뿐만 아니라 영적인 입장에서도 비슷한 과정들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잘 자라서 결실 해 가던 믿음도 세상의 거친 풍파로 열매 맺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썩어져 빈가지가 되어 버리는 마음 아픈 일들을 경험하곤 한다. 그러나 심어놓고 자라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여기에 지지 않을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의 신앙이 당연히 자라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기 전에 탄식하여 이르기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2~14) 하였다.



1.어린아이의 신앙이란?(1~3)



(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①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②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③세례들과 ④안수와 ⑤죽은 자의 부활과 ⑥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대로-공동 하나님께서는 이미 허락하셨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①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②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③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1]두려움과 걱정이 많다. 감사보다는 불만(욕구)이 많다.



[2]항상 자기 중심. 남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는다. (1)먹을 것. (2)가지는 것, (3)사랑에서; 사랑하기보다는 사랑 받기를 원한다. 이해력이 부족하다.



[3]경쟁적이다. 늘 비교 의식에 익숙해 있다.



[4]장성한 자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데 반해서 도움을 필요로 한다.



[5]사실적인 삶에는 약하면서 항상 이상적(理想的)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상상 속에 산다. 현실에 충실치 못하면서 막연한 미래를 동경한다. 신앙적으로 살지 못하면서 천국은 동경한다.



[6]일을 해결하기보다는 만든다. 또 쌌군!; 덕스럽지 못한 일을 만든다. 장성한 자들의 관계를 깨뜨리는 경우도 있다. (아이 말 듣고 소 잡는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살후3:11)



[7]생산 보다는 소비적이다.



어린아이가 좋은 것은 순수하다는 것뿐이다.



2.신앙은 반드시 자라야 한다.



이것은 신앙인의 일생의 과제다. 사람의 육신은 어느 시점에서는 성장을 멈추고 퇴보를 할 때가 있지만 이것은 유한한 세상의 삶이기 때문이고 무한과 영원을 위한 우리의 삶은 주님 오실 때까지, 또는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기까지 반드시 자라야만 한다.



바울 사도도 고백하기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1]자신을 바로 볼 수 있어야 자랄 수 있다.



겸손해야 한다.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 상대적인 평가인 다른 사람과 비교보다는 절대적인 목표인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와 희생의 피를 보면서 자신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저래야 한다"



[2]이상(비젼) 즉,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이 땅에서 최고가 아니라 천국에 합당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3.성장의 방법.(7~8)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5:7)



사55:10~11"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성경은 쉼 없이 우리가 자라가야 한다고 독려한다. 자라야할 목표는 바로 인간의 완전한 모델이신 그리스도가지다. "오직 ①사랑 안에서 ②참된 것을 하여 ③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오직 우리 주 곧 ①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②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 지어다"(벧후3:18)



4.신앙이 자라지 못하면.(4~6)



"①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②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③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④젖이나 먹고 ⑤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연단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2~14)



영적인 성장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19:30"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20:16; 막10:31; 눅13:30] 고 하셨다.



(4)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견고하심을 내세워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불변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背敎의 위험도 경계하고 있고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취소가 아닌 인간의 간악함 때문이다.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의 반석은 든든하지만 인간이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