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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살후 1:3~9 2001-12-16
너희 믿음이 자라고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바울 사도는 현재보다 종말에 목표를 두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겪어야 하는 핍박과 인내 그리고 거기에 대한 미래의 약속을 통해서 위로한다.



우리들의 인생목표의 두 가지 중에서 그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은 오늘 나의 모습 자체를 가름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바울처럼 하늘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가지느냐? 아니면 우리가 그래도 땅에 몸을 두고 산다고 하는 것 때문에 지상에도 유토피아를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이 땅에서 편리와 안락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갈등은 영과 육의 분별이며 영원과 순간의 차이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가 현실을 접지 못함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가질 때가 많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면에서는 문제도 있지만 참으로 종말과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였었다. 교회의 최종적인 목표는 주님께서 오셨을 때 이 땅의 온 갓 죄악으로 타협되고 일그러진 수치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성결(聖潔)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귀중한 과제이다.



우리가 현재보다는 미래를 확실히 믿음으로 소망하고 나아갈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 된 모습과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배운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의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늘 현실 속에서 안주하려는 세속적인 타협으로 인하여 신앙의 모습 자체는 일그러지고 주변에 소신 있게 살려고 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조차 걸림이 되는 현실을 더러 보게 되는 오늘에 있어서 본문의 내용은 참으로 귀중한 교훈이다.



또 다른 일면에서는 자신들의 부족하고 무능한 모습으로 인해서 시련과 환난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두려움과 의심으로 미래를 애당초 포기하려고 절망하는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완전한 구원이 인간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한 것임으로 믿음을 붙잡고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영광으로 갚을 것이라는 격려의 내용도 덧붙이고 있다.



Ⅰ.미래의 영원에 인생의 가치를 두는 자들만이 신앙은 성장한다.(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우들의 믿음의 성장을 칭찬하면서 감사하고 기도한다고 칭찬한다. 특히 자세히 음미할 필요가 있는 "①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②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라 한다.



①하늘의 절대적 기준을 바라 볼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라고 한다.



우리의 기준은 이 땅의 사람들이 아니다. 늘 "나는 저 아무개보다는 낳지!" 하는 식에서는 믿음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도토리 키 재기' 라는 말이 있다. 땅의 사람은 아무리 성장해도 늘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전도자도 장로도 신앙의 표상은 되지 못한다.



우리의 기준이 늘 하늘에 있음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늘 자신의 모자람만 볼뿐일 것이다. 나는 왜 이 밖에 못될까 생각하면서 자신을 향하여 채찍을 들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는 말씀과 함께 늘 승리하셔서 하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만 그럴 수 있다.[504:4"예수 부활하셔서 승리하신 것보고 나도 승리할 줄을 믿고 싸우리]



올해 우리 자신의 믿음은 얼마나 성장했는가? 아니 오히려 까먹은 사람은 없는가? 이 땅에만 눈을 박고 모자라는 사람끼리만 쳐다보면 절대로 믿음은 자랄 수 없다.



하늘에 승리의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나도 반드시 승리하여 함께 보좌 우편에 앉으리라는 결심으로 날마다 믿음을 훈련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후예들이 되어야 한다.



②"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라 했는데 역시 풍성할 수 있는 사랑은 하늘의 것이어야 한다. 알량한 인간의 사랑은 아무리 커도 한계가 있다. 우리 모두가 절대적 사랑의 가치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와야 만이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한" 사랑을 누릴 수가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1:22)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0~11)



연약한 신앙의 사람들은 사랑도 저울질한다. 속으로 늘 "너는 항상 내가 해 준 것 보다 못해!" 그러나 이것은 부끄러운 모습일 뿐이다. 항상 내가 기준이 되면 안 된다. 하늘에서 우리에게 준 사랑의 가치를 생각하자.



우리 모두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제물로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본 받는데 까지 사랑해야지!" 라고 다짐하는 절대적 사랑의 기준을 가지시기를 …



Ⅱ.미래의 영원에 인생의 가치를 두는 자들만이 고난을 기쁘게 감당한다.(4~5)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여기에는 사람들이 별로 즐거워하지 않는 말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핍박과 환난, 고난" 그러나 하늘에 인생의 목표를 둔 사람들은 오히려 그 영광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초기의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그러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1:29)



이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서는 고난은 절대로 행복이 아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원한 영광을 사모하는 자들은 핍박과 환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데반은 고난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하늘을 바라 봤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맞기 위하여 서 계셨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5:10)



바울은 자신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고 있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12)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미움은 받는다면 그냥 그대로 두자. 세상이니까 그러려니 생각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자.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가 있고 그 우편에 믿음 때문에 고난 당하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롬8:26~27"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래서 우리가 아직도 믿음을 부지하고 있음을 감사하자.



세상이 부패하고 정치가들이 돈을 집어삼키고 로비가 범람하고 거짓이 득세하더라도 그것으로 절망하지 말자. 합3:17~18"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여기는 세상이니까... 장차 영광의 나라에는 그런 것은 아주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은 그런 것이니 방조하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하게 산다면 그런 것들에게도 빛이 되고 심판이 될 것이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는 태조 이방원의 고려 만고의 충신을 회유하는 詩 구절이었지만 오늘 어둠의 역사 속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큰 하늘의 소망을 바라고 오늘의 삶을 받아들이는 고백이기도 하다.



영원히 살 장소가 아닌 잠시 지나가는 타관이 어떠하든지 거기에 마음 쓰거나 흔들릴 필요가 없다.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고 잠시 머무는 하숙집 같은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불편은 기쁘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Ⅲ.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상벌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6~9)



(6)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아 사는 가운데 있는 하늘의 시민에게 환난을 끼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환난으로 갚으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환난을 끼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저들이 하나님께 보복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가련한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10:31)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보응 하신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7f)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조차도 영광으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그럼으로 이 땅에서 믿음으로 인하여 환난과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영광이 될 것이다. 할렐루야!



Ⅳ.결론.(10, 12)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늘을 지향하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오늘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꺼이 고난받으려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마지막 역사의 종말에도 믿음으로 산 신앙의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원한다면 이 세상보다도 영원을 사모하는 자세로 살 때 주님께서 영광을 얻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오늘 우리가 땅의 영광, 땅의 부귀, 영화를 위해서 다투는 것 때문에 주님의 영광이 가려진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없어질 것 썩어질 것을 서로 잡아당기는 초라함 속에서 주님의 위엄찬 영광은 녹슬게 됨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특히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하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우리는 아직 말로만 믿음의 눈으로만 주님의 약속과 위엄을 볼뿐이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고 하늘의 영광을 바라고 소신 있게 산 사람들은 주님께서 오셨을 때 "정말 그랬었군요!" 라고 서로가 신기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오늘 이 경계의 말씀을 은혜로이 감당하는 사람들은 그날에 오늘의 말씀을 상기하며 역시 신기해 할 것이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12)



이 말씀에는 현재와 미래가 다 나타나고 있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f) 이 것은 현실 우리 신앙의 사람들의 삶 속에서부터이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b) 미래에 환난과 역경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는 날 그 동안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던 우리의 삶이 주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231:1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그 아침을 당할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쁨으로 주의 얼굴 뵈오리, 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내가 그의 곁에 서서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에 못 자국을 보아 알겠네] 이 찬양의 고백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