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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베드로를 다시 찾아 다시 사명을 부여하신 사건으로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다.
나중에 베드로가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아마도 이 상황을 생각하면서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2:21~22) 라고 회고했던 것 같다.
"…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 저희는 어부라, …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4:18~20) 하던 베드로는 그 던져버렸던 그물을 다시 찾아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요21:3~5)
오늘 우리 각자가 2001년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 보다 우선해서 주님을 사랑하겠노라고 눈물로 고백하고 나서 여전히 옛날에 돌아가 영적으로 아무 얻은 것도 없는 빈 그물질 하다가 이 2002년의 동이 터 오는 이 새벽 같은 마지막 주님의 날 다시 주님께서 참으로 허약하기 그지없는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같은 질문을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것 같다.
어쩌면 주님께서는 이리도 가슴 저리게 베드로와 우리를 찾아 물으시는지 모르겠다. 최후의 만찬을 끝내고 예수의 수난 받음을 예고하시면서 감람산으로 찬미하며 가는 길에서 "오늘 밤 다 나를 버리리라"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 맹세했던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바로 숫불 옆에서(요18:18) 부인했던(마26:69~75) 베드로에게 동일한 숫불 옆에서(요21:9)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씩 물으시는 주님의 확인 앞에 고개를 들고 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던 시몬 베드로처럼 오늘 여기에 앉은 우리들 또한 유구무언으로 다만 남이 들을까봐 부끄러워 모기 소리 마냥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독백처럼 되뇌일 뿐이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결코 우리를 낙심시키고 절망시키고자 이렇게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소망과 자각을 주시고자 찾아오시고 물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감사할 수밖에 없다.
Ⅰ.실패와 절망에 버려 두지 않으시는 주님을 깨닫는다.
주님의 구속의 죽음을 뒤로 한 채로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던 그 위대한 약속도 십자가 밑에 던져버리고 그래도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그전의 가장 익숙한 방법을 찾아 갈릴리에 그물을 챙겼지만 그 밤에는 피라미 한 마리 그의 그물에는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베드로에게는 무엇보다도 엄청난 복이었다. 아니 주님께서 사명을 잊어버린 베드로에게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만약에 그 밤에 베드로의 그물과 배가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만선이 되었다면 베드로는 영원히 복음에서는 버려진 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밤의 실패로 인하여 불신으로 인한 좌절과 아픔 그로 인하여 오는 죄책감이 엄습해 오는 아침, 밝아오는 소망의 아침이 아니라 온 갓 만감이 교차하는 갈릴리의 그 아침, 피곤과 졸음과 내일을 염려해야 하는 가족이 딸리고 함께 먹여 살려야 할 동료들이 더욱 짐스럽게 느껴지는 그 아침에 주님은 그러한 베드로를 찾아 주셨다.[낙지잡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던 육신으로 구속의 은총을 이루신 후에 그 짐스럽던 육신을 벗은 영광의 몸을 입고 절망과 피곤으로 인해서 솜뭉치처럼 지쳐버린 베드로와 일행을 찾아 주셨다. 인간의 모든 수완과 방법이 부도나 버린 허탈한 그 아침에 주님은 비로소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 주셨다.
그리고 주님 되심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요21:6) 다시 명령하신다. 그 밤에 만선이 되었다면 그 아침의 이 주님의 명령이 먹혀들었을까? 그리고 주님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주님은 그렇게 만드셨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 없이 세상일에 만사형통이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복이 아니라 저주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님은 완전한 불신의 사람도 좌절 속에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믿음의 사람도 곁가면 망하게 해서 다시 주님 앞으로 이끌어 오시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일이 잘 안되고 좌절 될 때는 주님께서 더욱 가까이 찾아와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절대로 절망 속에 내팽개치시는 분이 아니신다. 절대 절망은 오히려 주님을 더욱 가까이 만날 시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절대 희망의 전환점이다. 믿는가? 그렇기 때문에 지난 한해 동안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이 있다면 더 큰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실패했지만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주셨고 오늘 나를 또한 찾아 주시기 위해서 다가오신다. 할렐루야!
Ⅱ.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현실을 물으신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너 큰소리 치더니 결국 이 꼴이구나?"라던가 "삼 년간 수제자로 대우해 줬는데 겨우 하는 일이 이 친구들 끌고 다시 갈릴리에 돌아와 고기 잡는 것이냐?"라는 식의 책망은 전혀 하지 않으셨다.
1.과거의 지키지 못한 약속을 확인하시지 않으신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부터 지금까지 방황한 사실들을 생각하면 주님께서 자신 앞에 서 계시다는 자체가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애당초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고 호언 장담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어 버렸고 "…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고 큰소리 쳤던 자신의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하여 주님은 한마디도 문책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해마다 "이렇게 하겠습니다., 저렇게 하겠습니다"고 주님 앞에 약속했던 것들이 베드로만 못할까? 그러나 이 2002년의 새벽에도 역시 주님은 우리들의 지키지 못한 약속에도 그저 침묵하신다. 그러한 주님의 권위와 사랑 앞에 우리는 베드로처럼 굴복할 수밖에 없다.
2.일한 것의 업적을 묻지 않으신다.
"그래 내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너만은 대려 갔었고, 이 갈릴리의 풍랑 속에 빠져 가는 너를 건져 물위로 걷게 했었다. 그러한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었고 이적을 베푸는 능력도 줬는데 너는 그 동안 뭘 하고 있었어...?" 하고 문책 할만 하시다. 그러나 역시 주님은 그렇게 몰아 세우지 않으신다. 어찌 베드로에게 만이겠는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이 다 진리를 모르고 죄악 때문에 눈멀어 있지만 나는 너를 그 죄악에서 피 흘린 값으로 사서 이 역사와 천국의 비밀을 알게 하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너희들에게 줬다. 너는 그 특권을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 물으신다면 주님 앞에 앉아 있을 면목이 없다. 그러나 주님은 지나간 시간을 묻지 않으신다. 엄청난 용서요 긍휼이다.
우리에게 직분을 주시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다 충성치 못했다.
바울 사도처럼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라는 감격가지고 바울처럼 충성했어야 함에도 역시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자, 주님께서는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면서 앞으로 충성하라고 격려하신다.
3.현실의 각오를 물으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지금까지 이전의 모든 과거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해 놓은 일의 업적도 없고 그저 부끄러움뿐이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업적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결정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별 볼일 없는 사람은 오늘도 내일도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과거의 어떤 것보다도 오늘의 나를 보신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미래를 보신다. 특히 충성치 못했고 공로가 없음에도 다만 '사랑하는가'를 묻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것이다.
사무엘상 30장에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해 있으면서 블레셋 군데와 함께 전쟁에 나간 사이에 자신의 거처인 시글락에 있는 전 가족과 재산을 아말렉에게 탈취 당하고 아말렉을 추적하는 중에 애굽 소년 하나를 만났는데 병이 들었다고 아말렉 사람이 버린 것을 다윗이 먹을 것을 주고 고쳐서 그 소년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는 기쁨을 얻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보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과거를 그냥 그대로 둔 채로, 해드린 것이 없을지라도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다만 그것을 보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Ⅲ.그러나 확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시는데 그냥 확인하시는 것이 아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NASB)
1.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것은 "너의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으로서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자식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이 사람들보다"라는 의미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어떤 사람들도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누구보다도 더 사랑할 가치가 있으신 분이시다.
오늘 나는 진정 주님을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하는가?
2.이 모든 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Simon son of John, do you truly love me more than these-NIV)
오늘 많은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사업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취미생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이런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있다가 떠나갈 것들이요, 두고 갈 것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102:1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신 주님만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분이요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실 분이시다. 믿는가?
3.다른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15f)로 번역을 하고 있다. 사람은 편견을 가지거나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만은 서로 시샘할 정도로 사랑해도 결코 손해가 없다. 적어도 "누구보다는, 무엇보다도 더 사랑해야지!…" 라는 각오를 가질 필요가 있다.
Ⅳ.사명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다.
이 말씀 속에 나타나는 언어의 차이나 다른 것은 다 접어두자. 다만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사랑을 확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다만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고백할 뿐이었다. 사람은 나타난 것만 알지만 주님은 감추어진 것까지를 아시는 분이다. 전혀 그렇지 못하면서 거룩한 척 하는 것인지, 정말 거룩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해 보이는 것인지 사람은 몰라도 주님은 아신다. 그래서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판단을 주님께 맡겼던 것이다.
그러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다시 사명을 확신시켜 주신다. 네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일이다.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명을 다시 일깨워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19) 고 다시 확인하시는데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할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어떤 자리나 위치에서건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 명령하고 계시는 것을 들어야 한다. 조금 후에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21:20~22) 라는 대화를 듣게 되는데 다른 사람의 충성도 게으름도 내게는 상관할 바 아니다. 이 아침에 주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통하여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는 사랑의 음성을 다 듣고 다시 새로운 각오로 이 세상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나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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