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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서 언약 백성의 성결을 상실하고 주변의 세속적인 관습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탄식하며 바른 신앙의 회복을 위하여 애통의 눈물을 흘리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모습을 자세히 생각해 봤다.
그로 인한 영적 지도자의 통한과 거기에 함께 하여 같이 울면서도 에스라를 위로하는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의 격려와 죄를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계획, 고통스럽더라도 다시 하나님의 언약으로 돌아가자는 영적인 각성을 읽었다.
대부분의 신앙의 사람들이라면 거기에까지는 가능하고 또 어떤 때는 부흥회다, 기도회다 해서 경각심을 고취하는 모습들은 오늘도 더러 보게 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은 참으로 용기 있고 결단성 있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영적 회개의 삶에 적용을 배우게 된다. 회개는 결코 "이래서는 안 된다"는 탄식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도려내는 아픔과 닥쳐올 어려움과 함께 현실적인 인간 관계조차도 명확하게 정리를 해야하는(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라면 절친한 사람의 관계까지도 청산하는) 삶의 변화를 사실에서 일으키는, 죄를 지어온 과거를 거꾸로 정리해 가는 운동을 본다. 죄는 깊을수록 회개가 어렵고 신앙은 단순히 마음속에 머무르는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행동을 고치고 삶의 방향을 다시 바로 잡아 가는 회복 운동임을 배운다.
그러므로 단순히 깨달음에서 머무는 마음의 각오에서 그치는 것은 의미가 없고 회개했다면 마음의 결단이 외적인 모습을 바꾸는 것으로 표현되는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성령으로 역사 하셔서 가능케 하신다.
Ⅰ.의를 위한 언약을 맹세한다.(5)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신앙의 결단은 신앙의 지도자들부터 백성들에게로 확산되어 가는 것이다. "①제사장들과 ②레위 사람들과 ③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이렇게 되어야 효과가 있다. 그기에 대한 반응이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9:2)고 한 것에 대한 사실을 두고 지도자들부터 맹세케 한 것이다.
[shaba 싸바] 본래의미는 일곱을 의미하는('쉬브아' 마치 7번 되풀이 선언함으로써) 일곱 번 말하다, 완전하다, 맹세하다, (서약함으로)간청하다. 의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히6:16)
Ⅱ.다시 하나님께 의탁하는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6)
"이에 에스라가 ①'하나님의 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②'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저가 들어가서 ③'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근심'하여 ④'떡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끝까지 이일은 경건한 하나님을 의식하는 지도자의 주도로 진행됨을 본다. 이미 다 약속이 되었음에도 에스라는 사람들과의 약속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이일이 움직여지기를 바라서 은밀한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본다.
요즘의 많은 기도와 금식이 마치 시위하듯이 전시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존경이 가는 영혼의 사람인 에스라를 본다. 그는 하나님의 전 앞에다가 금식한다고 자리를 펼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전 앞에서 일어나 골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과거의 죄로 인한 포로의 아픔을 연장하지 않기를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 앞에 매어 달리는 것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의식하는 금식이고 이러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일찍이 이사야를 통해서 주께서 위선적이고 잘못된 금식을 경계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6)
에스라는 하나님과만 이 엄청난 일을 의논하고 결재 받기를 원했고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하나님의 종의 간청을 들으셨다.
Ⅲ.거룩한 명령은 선포되었다.(7~8, 10~11)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좇아 삼 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쫓아내리라 하매"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나님 앞에 모든 일을 의탁한 에스라는 더 이상 사람의 힘이나 안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를 통한 선언은 참으로 듣기에 거북한 명령이었다. 결코 육신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그 일을 이스라엘의 두령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권위로 담대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공포하기를 qol 콜: 소리쳐 부르다, 딱딱 깨지는 소리, 크게 울부짖음, 선언하다, 불꽃이 튀다, 천둥소리] 한마디로 듣기 거북한 소리를 의미한다.
권력이나 다른 힘을 갖지 않은 다만 신앙의 지도자인 에스라는 "①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 ②삼 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③그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④쫓아내리라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⑤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고 공포하는데 요즘에 회개의 실질적인 이런 투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싶다.
그느 s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이런 과감한 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Ⅳ.불합리한 모든 조건은 극복되었다.(9, 13)
"유다와 베냐민 모①든 사람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구월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전 앞 광장에 앉아서 ②이 일과 큰비를 인하여 떨더니,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③큰 비가 내리는 때니 ④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⑤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때도 좋은 때가 아니오 일도 좋은 사안이 아니었다. 축복을 해 주겠다는 내용으로도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힘든 유대의 험악한 겨울 날씨였다(기슬르月-양력 11월 중순). 우리 나라는 비가 많이 와도 따뜻한 여름이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스라엘은 비가와도 겨울에 우리 나라의 여름처럼 오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비오는 겨울날 모든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으라는 선언은 인간적으로는 결코 먹혀 들만한 그런 주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려운 하나님의 형벌의 선언과 진눈깨비 내리는 예루살렘에 백성들은 떨며 몰려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이일이 하루 이틀에 끝낼 수 없는 일이니 완전히 정리하자고 간청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반대의 세력은 역시 그곳에도 있었다.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①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②저희를 돕더라"(15)
그러나 이 반대 세력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와 경건한 영적 지도자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본다. 오늘 우리의 상황보다 결코 낳은 것이 없었던 당시의 이 영적 회복 운동의 결과는 오늘 우리로 하여금 변명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게 한다.
시대가 또는 상황이 아니다 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다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지도자들과 하나님의 결재가 문제가 될 뿐이다.
Ⅴ.마침내 은혜로운 회복의 역사는 이루어졌다.(12~14)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본성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우리 하나님의 이 일로 인하신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세상의 고통보다도 하나님의 진노를 의식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고통스러운 회개였지만 영원한 죄의 형벌을 끊게 했다.
무슨 좋은 일이라고 "회 무리가 ①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②당신의 말씀대로 ③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라거나 "… ④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 우리 ⑤하나님의 이 일로 인하신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라는 고백과 간구는 그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의한 것이었다.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11)는 삶의 요청은 참으로 가슴을 도려내는 고난의 현실이다. 맨 마지막 절에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취한 자라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44)는 모습을 보면 그야 말로 한 많은 미아리 고개 같은 참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와 백성들은 그 무서운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Ⅵ.결론.
신앙 회복운동이란 혼자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물론 현실과 미래를 바로 관조하는 믿음의 눈과 하나님을 의식하는 지도자로 시작하여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확산되어 가는 것이다. 함께 죄에 대한 탄식과 서로의 확신과 언약,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하나님만 의식하는 헌신적인 기도, 확신을 가졌으면 사람의 입장이나 눈치를 보지 않고 깨달은 것을 선포하고 어디에든지 반대 세력은 있지만 받아들이는 서로의 용기 있는 결단이 불리한 모든 조건을 극복하고 은혜로운 성별 된 회복의 역사를 이뤄내는 것을 배운다.
인간적으로는 몇 년이 되었건 함께 정을 나누며 살던 이방의 아내들과 거기서 난 자식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불쌍하고 잔인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의가 먼저 세워져야 모두가 산다는 확신 앞에서는 인간적인 정도 자르고 아픔도 삼키는 과정을 감수하지 않고는 죄에 자리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아픔을 감수하고 거사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 역시 무사안일을 추구한다면 신앙의 성장이나 회복은 기대할 수 없고 주님 오실 때까지 별로 차이가 없는 모습과 때로는 개운치 못한 모습을 그대로 뭉개고 앉아 있는 어정쩡한 모습이 있을 뿐이다.
영이 살아야 육이 살고 신앙이 살아야 정신이 살며 믿음의 회복이 지속적으로 있어져야 육신의 사람으로의 타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모두가 마지막의 어두운 시대라는 한탄에 앞서서 우리 자신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을 바로 세우고(언제나 문제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살을 깎는 결단과 각오로 먼저 자신부터 변화된 모습으로 세워져 가는 나와 여러 지체들이 되시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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