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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남 시간까지 신앙공동체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교회의 신앙과 관계회복을 생각해 봤었다. 오늘 본문은 조금 더 세분된 신앙하는 각자의 부름 받음에 대한 확신과 역할을 감당해야 할 각오를 바울의 고백 속에서 이해 하고자 한다.
말년에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은 자신의 일꾼 된 감격과 더불어 그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치러야 할 고난이 있다면 그것마저도 기쁘게 자신이 감당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생명의 신비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자신과 같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고자 하는 의지를 고백하고 있다.
Ⅰ.고난을 기뻐하고 각오한다.(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사람들은 누구나 남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것에는 적절한 이유나 반대 급부가 없다면 견딜 수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해도 나는 빠져야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라고 기쁘게 고백하고 있다. 두 번째의 바울 사도가 감당하려고 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비단 그가 사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당연한 자세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들려야 하는 고백이다.
바울은 골로새 교우들을 위한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했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고난과 복음을 위한 고난을 각오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나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오늘 신앙인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고난은 피하고 영광은 취하려는 이기심과 독선 때문에 복음의 빛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사도니까 오늘날에는 전도자나 장로쯤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복음 시대의 신앙의 사람들은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했다.
베드로 사도가 부탁하기를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3~16)고 당부한다.
세상에 누가 고난을 즐거워 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한 생명을 잉태하는 그 어머니의 고난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고통이다.
올해는 우리 서면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서로 성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받으려는 각오로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냄으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믿음이 크게 성장하시기를 주님의 복되신 이름으로…
Ⅱ.내가 오늘 그리스도인이 되고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서다.(25)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것은 오늘 나의 고백이고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어떻게 오다 보니 오늘 내가 서면 교회 교우가 되고 일꾼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비극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영광을 위해서 라기 보다는 역시 "너희를 위하여" 즉 교회의 구성원들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고 너 만난 것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분명히 비극이다. 우리는 서로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경륜이라는 고백은 부부간에도 필요하지만 교우간에도 꼭 가져야 하는 확신이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4~5)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서면 교회 성도가 되었고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말씀을 이루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모두 하나님의 경륜에 있다면 경륜을 거스르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 믿음으로 고백해야 한다. "내가 서면교회 성도가 되고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Ⅲ.영원부터 감추어 있던 비밀을 알게 하신 감사를 가지고 있는가?(26~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남이 모르는 것을 특히 그것이 놀라운 것일 때, 안다고 하는 황홀감은 누구나 가지는 것이다. 나에게만 들려줬다. "이 심오한 진리는 과거의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던 것인데 이제는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분명히 드러났습니다"[공동] 그 수 천년의 역사 속에 감추었던 것을 오늘 날 나(우리)에게 알게 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알게 하신 은혜와 사랑을 역시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숫한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조차 몰랐던 모르고 간 비밀을 오늘 내가 안다고 하는 자긍심을 우리 모드는 가져야 한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0~12)
복음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비하게도 오늘날도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또 비밀을 맡은 자는 책임도 그 만큼 크다.
Ⅳ.우리 모두는 먼저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자로 서야 한다.(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우리 서면 교회가 이 정도에서 머무는 것을 하나님께서 결코 원치 않으실 것이다. 영광스러운 교회, 당 끝까지 복음을 나눠주는 사랑이 충만한 교회를 만드시고자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러분들을 부르셨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6~27)
완전한[텔레이오스, teleios], (노동, 성장,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다양한 적용에 있어서) 목표에 도달한, 충분히 달성된, 성숙한, 장성한[고전14: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성년의, 온전한[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perfect, complete)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얼마나 엄청나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깨닫는다면 아무도 이 땅의 것들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예배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바울은 기도한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8~19)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계획이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7)
반드시 먼저 된 자들은 온전한 자들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자를 위하여 힘을 쓰게 해야 한다. 온전한 자는 남의 앞에 거침이 되지 않는 자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롬14:13)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고전10:32)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소원을 위해서 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거듭난 자들이다. 교회는 모두가 자기의 소원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힘을 모으는 곳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교회의 모습이다.
Ⅴ.교회의 모든 일은 이일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즉, 교회의 모든 직분과 일은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일을 위하여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인 방법과 수완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즉 성령의 역사와 함께 우리 각자가 "힘을 다하여 수고" 함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 신적이고 인간적인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빠져도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해서 사는 완전한 자로 세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바울 사도는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4:19) 라고 장성한 사람을 향한 기준과 그에 따른 수고가 어떠함을 증거하고 있다. 당시에 갈라디아 교회에도 분명히 그리스도인이라고 이름하는 교우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장성하지 못하여 유대교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었고 우왕좌왕 하는 휩쓸리는 모습 때문에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Ⅵ.결론.
교회는 분명히 하늘의 기관이요 하나님께서 영광을 입혀주신 그리스도의 신부들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서지 못하고 난장판이 되어서 주인 되신 하나님의 영광은 고사하고 서로 반목하고 경쟁하며 권력이나 자리다툼이나 하는 꼴불견으로 유치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기까지 사랑하셔서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엡5:27) 고 십자가를 지시고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셔서 오늘 우리를 초청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습은 주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교회는 자신이 먼저 남의 보살핌이 필요 없는 완전한 자로 서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다른 교우들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받겠다는 각오와 내가 오늘 서면교회에 교우 된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이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는 확신과 영원부터 많은 선지자들에게조차 감추었던 신비를 알게 하신 감격을 가지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자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만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 나의 지식과 건강과 물질과 영광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바울의 당부인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는 약속을 우리의 교회의 모두에게 이루고 바울의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이 심오한 진리는 곧 이방인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게되었다는 사실과, 또 영광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희망입니다-공동]라는 말씀이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시기를 복되시고 영광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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