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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눅 9:57~62 2002-02-03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오늘 본문은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세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회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오늘 날 여러 형태의 믿음 생활과 대비되어져서 생명이 걸린 교훈으로 우리에게 다시 주어지고 있다.



두 사람은 스스로 주를 따르겠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오히려 주님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나를 좇으라!" 명하시지만 그의 반응은 자신에게는 주님을 따르기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를 처리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이 말씀은 비유이면서 사실적이고 고백과 실제적 삶과의 괴리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믿음생활과 현실과의 차이는 신앙인들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미음을 실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말과 행동의 차이를 나타낸다.



믿음의 고백이 현실적이거나 사실적이지 못하면 그 고백은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 또한 주님께서 경계하신 사실이다.



Ⅰ.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57~58)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 사람은 예수께서 따르라고 명령하신 것도 아니고 스스로 이런 고백과 같은 요청을 드리고 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사실 이는 우리 신앙인들 모두의 고백이요 각오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이유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복음을 순종하고 그리스도의 법을 따라 산다고 하는 것은 당장에 영광을 결과하지 않는다. 이 고백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바로 영광의 자리에 오를 것 같은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마20:21-세베대의 아들의 어미; 막10:37-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오히려 세상 속에서 불이익과 고난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의 희생으로 인한 구원을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치병과 세상적인 복을 선전함으로 복음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부수적인 것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믿음생활을 시작했다가 오히려 쉽게 낙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믿어도 차이가 없더라"고 말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고백이 현실과 각오와 다르다. 당시 복음시대의 고난을 읽지 못하는 상황에서 먼저 환상적인 기대와 고백을 듣는다. 이에 대해서 오히려 주님은 사실적인 상황을 인지시키신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괴리를 보는 것 같은데 그것은 기도와 현실의 차이 같은 것이다. 우리는 기도회를 갖거나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으면서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주님만을 위하여 살겠다고 고백하고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과의 이러한 약속을 아주 가볍게 망각해 버리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는 고백은 영광뿐만 하니라 계산됨이 없이 어떤 고난과 박해와 어려움, 그리고 모든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각오와 고백으로 드려져야할 주님을 향한 삶의 헌신이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3~34)



Ⅱ.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59~60)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 아브라함)



여기 두 번째 사람은 주님께서 자신의 사역에 초청하셨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또 아무에게나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는 인륜과 세속일에 초연할 수 있어야 함을 일깨우신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 다음으로 공경해야할 신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계명으로 강조되고 있는 교훈이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5:16f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마15:4, 19:19; 막7:10, 10:19; 눅18:20; 엡6:1~3)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무엇이 귀중한가? 를 바로 선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날에는 낙오자가 될 수 있다.



먼저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주님께서 일찍이 그를 따르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가르치신 바 있다.



엄청난 초청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세상의 최고 권력자들의 초청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오늘의 경조사가 주님을 따르는데 장애



Ⅲ.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61~62)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이 사람도 스스로 주를 좇겠다고 고백하면서 그러나 먼저 가족관계를 정리할 수 있도록 허락하라고 간청하고 있다. 우리 신앙의 관계에서 사실적으로 가족의 관계에서 문제를 많이 야기 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또 바울 사도는 가족을 떠나서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12:18)고 당부하신 바 있고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고 까지 엄격하게 경고를 한다. 그러나 가족 모두가 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허용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평생을 주님 앞에 오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미루는 사람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10:37) 라고 제자들에게 선언하신 바 있다.



그리고 여기에 답변하시는 주님의 말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란 세상에서도 역시 합당치 않음을 경고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아직 서투른 농사꾼의 실제적인 비유이다. 이것은 나누어진 마음과 적극적이지 못한 자세를 책망하시는 교훈이다. 우리 인생모두는 죄로 인하여 무디어지고 어리석어서 세상 속에서조차 어떤 한가지 일에 마음을 쓰지 않으면 그 일을 민첩하게 감당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하물며 영적인 일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플레니 핑고 16세 샌프란시스코→산타모니카 뒷걸음질 세계 챔피언, 사람들이 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안경에 back-mirror를 부착해 줬다. 그러나 백미러를 통해서 보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는 것 보다 완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뒷걸음을 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세상에서도 자동차의 역 주행이나 뒤로 운행은 대단히 위험하다. 이것 대단히 위험한 위법이요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믿음 속에서도 경계되어야만 하는 위험 천만의 모습이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8~39)



우리 모두는 믿음 속에서 인생이란 흔적을 바로 갈아야 한다. 어떤 것도 뒤에 두고 가는 것은 믿음에 있어서 유익이 없다.



Ⅳ.결론.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 붙잡는 것들이 많다.



오늘의 경조사가 주님을 따르는데 장애가 되고 가족관계가 장애가 되고 인생과 믿음의 역 주행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할 위험이 있다.



오늘은 외압은 없어졌지만 내면적인 걸림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