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행 10:23~33 2002-02-24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우리는 그 동안 각자 나름대로 기도하면서 기대하고 기다리던 은혜의 잔치를 시작하면서 이 잔치에 임하는 자세를 오늘 고넬료라고 하는 당시의 이방인이요 베드로 사도조차도 의도적으로 멀리하려고 했던 신앙의 사람과 그의 가족들의 자세 속에서 배우려 한다.



그는 최초로 구원받은 이방인으로 구원 역사의 분수령처럼 많은 이방인들에게 소망의 이유가 되었고 오늘 우리조차도 본 받고자 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우리가 그와 그의 가족과 같은 은혜를 받으려 한다면, 어떻게 그와 같이 하나님의 인정과 사람의 인정 그리고 그렇게 반대하던 유대 보수주의자들인 사도들까지도 뒤흔들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신 고낼료의 믿음 생활은 구원받기 이전부터가 우리의 모범이었고 그러한 삶이 구원을 결과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 말씀을 절대적이 모델로 이해하여 구원받기 위해서는 고넬료와 같은 경건한 삶이어야 가능한가 하는 오해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이 은혜가 아니라 공로에 의한 것이 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먼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에 온전히 순종하여 구원을 받고 구원받은 삶이 고넬료의 삶과 같은 모습을 결과해야 한다. 이런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이방 구원의 모범으로서 고넬료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단순한 성경 속의 하나의 이야기로 들어서 끝내지 말고 우리가 허락된 기간에 또한 같은 은혜의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Ⅰ.경건한 사람.(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앞에서 잠시 언급한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 없이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가?, 구원받기 전에도 않고도 경건이 가능한가?' 라고 물을 때 당연히 불가능하다. 경건 자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1.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가정은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고 다만 자신의 근무지의 백성들의 신앙을 통해서 얻어듣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가족은 소문만 듣고도 회개한 니느웨 성의 백성들처럼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어찌 보면 敎理的으로는 불완전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가정을 만들어갔다. 또 한 사람 에디오피아의 내시 와 같이 막연히 예배하러 예루살렘을 올라 다녔지만 하나님께서 빌립으로 하여금 그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게 하는 사도행전 8장 사건의 또 다른 국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2.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어떤 입장에서는 자신이 다스리고 관리하는 植民地 속국의 백성들에게 온정을 베푼다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구제의 사람이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이것은 의무에 의해서나 형식적인 요식 행위로 행한 것이 아니었음을 본다.



3.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시간을 정하여 기도했다.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30m) 아직도 막연한 하나님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그 지배민족들이 섬기는 하나님께 그는 항상 호흡처럼 기도했고 유대인들의 모습을 본받아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4.겸손의 사람.(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우리 나라의 일제 강점기의 순사와 같은 위치의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피지배지의 종교지도자에게 엎드리기까지 겸손한 그의 모습은 신앙인의 실재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신앙의 사람 야고보가 정의하는 것처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6~27)는 참 경건의 모습을 그에게서 본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러한 모습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야만 한다.



여태껏 그렇지 못했다면 이번 계기를 통해서 이러한 실재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복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Ⅱ.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7~8, 22)



자신만의 경건은 온전한 경건이라고 할 수 없다. 믿음 생활이 구체적으로 주변을 움직이고 사회를 움직이는 그런 모습으로 가야하고 고넬료는 역시 그런 입장에서도 모범이다.



1.그는 수하의 사람을 신앙으로 움직이는 사람. "…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 대"



①"…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②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③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④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⑤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 대,



2.가족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24)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①일가와, 신앙에 일가 친척은 이끌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선지자들도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기 어렵고 특히 로마의 자유민들이 황제를 배신하는 행위인 하나님 경외는 더욱 어려운 결정이다.



②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친구로 그 사람을 안다고 했다. 군대의 중대장쯤 되고 나면 이런 위치에 있는 가까운 친구들이라면 술친구이거나 피지배 국의 미색을 탐하거나 다른 것에 이끌리기 쉬운 부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친구들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영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③기다리더니, 친구와 가족은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었고 특히 그것이 종교적인 일이라고 하는데서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함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오기까지 동요가 없이 기다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임을 확인한다. 특히 베드로는 사회적으로는 결코 그들이 기대할 만한 웅변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의 모인 수가 적지 않았음을 보는 것은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27) 라는 말속에서 확인하게 된다.



Ⅲ.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33f)"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



말씀 앞에 겸손한 사람.



Ⅳ.말씀을 사모하는 사람.(33b)



"…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앞에까지의 모든 신앙적 행동은 아직도 말씀과 함께 하지 못한 준비단계의 믿음 생활이었다.



1.말씀을 가진 이를 환영하고,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2.주시는 명령이 어떤 것이든지,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3.모든 말씀을 놓치지 않겠다.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4.하나님 앞이라고 믿고 고백하고 받아 들였다.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Ⅴ.결론.



1.먼저 신앙하던 사람을 놀라게 했다.(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2.하나님을 찬양했다.(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3.은혜의 삶을 지속하였다.(48b)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