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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딤전 6:11~16 2002-03-17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성경은 평안과 화평을 얘기하는가 하면 대부분의 내용은 전쟁과 경주를 명령하고 있다. 구약 성경의 숱한 이야기는 바로 전쟁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열 두 아들들과 출애굽, 광야 40년 가나안 정착의 노정이 모두가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사실 그 이전의 아담의 후손들 속에서 가인이후의 모든 사람들의 삶이 투쟁으로 얼룩져 있다. 아니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나는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가 투쟁으로 산 사람들이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향하여 선언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4~39) 하셨다.



유물론주의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부분만을 확대해서 봤기 때문에 적자생존(適者生存)이니 환경적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용불용(用不用)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적으로 이 땅에 태어나면서 삶이라는 투쟁과 직면하게 되고 자연과 질병과 죽음과 공부와 일과 자신과 끊임없는 싸움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 어찌 보면 인생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왕에 싸우면서 살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면 보다 가치 있는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Ⅰ.어떤 싸움을 싸울 것인가?(11~12f)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세상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싸움을 본다. 이 땅의 국가들의 군비 경쟁과 기업들의 정보싸움, 바둑판에 훈수 두다가 싸움이 붙는가 하면, 동물의 세계에서 썩은 찌꺼기 고기를 두고 하이에나와 독수리들의 싸움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육신의 생존 경쟁에서 어쩔 수 없는 투쟁이지만 이것만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라면 동물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1.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전투 명령이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러한 호칭이 디모데에게만 주신 명령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필요도 없고 들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천성을 향하여 가는 자들이다. 특히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13b~14)는 명령을 주는 것으로 봐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임이 분명하다. 선한 싸움을 감당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부르신다.



2.그러나 주님의 백성들에게는 피해야 할 투쟁이 있다. "이것들을 피하고"(11m)



무엇을 피하라는 말인가? v9~10의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이 말씀 바로 앞에서 경계의 말씀을 주신바 있는데 이러한 싸움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큰 상처를 입게 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는 위험스런 정글 속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바로 앞 8절에서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는 격려를 준 다음에 이러한 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러한 추한 동물들의 싸움에서 건지시려고 친히 피를 흘려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23:18에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15:50)



3.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당부하신다.



바울은 좀더 구체적으로 "…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1:18) 라고 격려 한 바 있다. 다시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10:3~4)



그렇기 때문에 천국 백성들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는" 싸움이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8~9)



우리 신앙인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 싸워야 한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인생 말년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라고 자신 있게 고백한다.



Ⅱ.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1.영생을 취하기 위한 싸움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다" 영생을 위한 싸움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싸움이고 선한 싸움이다. 더러운 방법을 가지고 영생을 위한 싸움에 참여할 수 없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2.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1:3)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



393(후렴)"일심으로써 힘써 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9:23)



Ⅲ.어떻게 싸울 것인가?(13~14)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하나님 앞에서의 투쟁을 해야 한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



2.세상의 무력과 권력 앞에서도 선한 싸움을 해야 한다.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3.약속과 진리를 위해 싸우신 주님 앞에서 싸워야 한다.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6:10~13)



4.주님의 재림의 때까지 계속 싸워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5.의로운 싸움을 싸워야 한다. "①점도 없고 ②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③명령을 지키라"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1:10) 오직 하나님의 사람들만이 졸렬하고 추한 싸움이 아니라 거룩한 싸움을 명령 받고 있는 것이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11)



Ⅳ.선한 싸움의 상급은 무엇인가?(15~16)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①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②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③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④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⑤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Ⅴ.결론.



신앙은 고요가 아니라 전쟁이요 투쟁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의로운 전쟁을 위하여 불림을 받은 군사들이다. 싸우지 않으면 주저앉거나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를 위하여 누구 편에서 싸우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영생을 취하기 위한 싸움"은 결코 수치스럽거나 중단해야 할 싸움이 아니다. 주님의 명령대로 더 많은 죄의 포로들을 '믿음의 도'에 이끌기 위하여 어두움의 세력과 끊임없이 싸워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무력이나 권력을 두려워하지 말고 먼저 의로운 희생의 피 흘림으로 승리하신 주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영광의 주님으로 임하실 때까지 선한 싸움 의로운 싸움을 지속해야만 한다.



약속의 때가 이르면 복되시고 홀로 한분이신 하나님은 그 영광된 모습으로 우리를 자신의 의로운 오른편에 앉히시고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을 왕위를 누리게 하실 것이다.



402:3 "달려갈 길 다가고 싸움 모두 마친 후, 주와 함께 기쁨을 용사들아 누리세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받아쓰리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 우리 싸움 마치는 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



우리의 이 싸움을 지켜보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리고 만국의 천국 백성들이 구름 같이 둘러싸고 "이겨라! 이겨라!"로 응원하고 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이 싸움을 마치고 우리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



오늘도 우리의 전투를 지휘하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