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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에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솔로몬의 범죄로 분열된 왕국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이 두 선지자의 이야기는 벧엘과 같이 도덕이 해이해지고 우상숭배가 범람하는 이 오늘의 역사 속에서 진리를 바로 지키며 살고자 하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교훈의 말씀이다.
우리 더러는 이 말씀에 대하여 읽으면서도 더러는 의문을 갖는다. 왜 하나님의 선지자를 하나님의 선지자가 꾀어서 실족시켜서 죽게까지 만드시는가? 그러나 여기에는 두 사람 다에게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같은 질문을 민수기 22장의 발람의 예를 비슷한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발람으로 하여금 가라고 허락하시고도 나귀를 통해서 책망하셨는가?' 그러나 발람을 통한 교훈은 오늘 말씀의 결론과 같은 중요한 교훈이다.
Ⅰ.사명을 받은 선지자.
1.그의 처음의 신앙 자세는...
①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은 온전히 수행했다(1~10).
②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사명을 수행했다. 이 선지자는 대단한 역할을 했음에도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나타난다. 요즘 같으면 그냥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③왕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신앙의 담력이 있었다. 자신의 영역도 아닌 이국의 왕의 권세 앞에서도 담담히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을 수행했다.
2.사명을 완수한 후의 모습...
①성취감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긴박한 명령을 안일하게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사람의 뒤를 좇아가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뇨 대답하되 그러하다"(14)
②하나님의 일꾼들이라면 주님의 말씀에는 불변의 확신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명령은 처음 주신 말씀이 절대적이다. 이 선지자에서 받는 경계의 교훈을 우리는 발람에게서 본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처음에 분명한 응답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민22:12)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매, … 아무 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민22:15~17) 라는 말에 솔깃하여 처음 하나님의 의중을 알고도 또 다른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기 위하여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보리라"(19)고 말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발람이 마음에 이미 가고 싶은 결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결제를 받고자 하는 발람에게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기쁘게 주시는 응답이 아니었다. 그리고 발람은 나중에 (수13:22)"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도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술사 발람도 칼날로 죽였었더라"고 기록되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왕의 앞에서나 늙은 선지자 앞에서 증거 했던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을 주실 리가 없다.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17) 하고,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좇아 돌아가지 아니하니라"(9~10)
하나님께 예외가 있다면 그러한 것들이 상징이 될 때는 그렇게 하시기도 하시지만, 자신의 종에게 일을 시키시면서 굶겨서 기진 하게 하시려고 굶기시거나 목마르게 하실 분이 아니다.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그만큼 재촉하셨고 신속히 자신의 본연의 자리에 돌아올 것을 명하신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셨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의 명령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키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되는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18~19)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다른 명령을 주셔서 혼란케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14:33) 그럼으로 처음 받은 말씀이 중요하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면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든지 거기에 빠져서 진리를 잃어버리는 예가 허다하고 이러한 경계는 성경의 여러 군데서 주고 계시다.
③언제나 육신의 안일을 추구하다 보면 실족한다. 이 모든 유혹은 육신적인 유혹이었다.
④끝까지 진리를 지키는데 실패했다. 끝까지 경성하지 않으면 넘어진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b) 여기서 '죽도록'이라는 말씀을 '죽을힘을 다하여'이기도 하지만 역시 '생명이 다하기까지' 라는 의미도 같이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울사도는 자신을 향해 경성하기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7) 고 고백하면서 경계한다. 참으로 이 선지자는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은 버림을 당하는 비극을 보이고 있다.
⑤이 실족한 선지자를 하나님께서는 유혹했던 선지자를 통해서 책망하신다.
"저희가 상 앞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20~22)
베드로 사도는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벧후2:16)
Ⅱ.죄악의 도성 늙은 선지자.
1.먼저 된 자로서의 신앙의 자리를 믿음으로 지켜야 한다.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11f)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남을 실족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당시의 모든 신앙의 지조 가진 사람들은 다 남쪽 유다로 내려오고 북쪽 이스라엘에는 없었다.
대하11:13~17"온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 레위 사람이 그 향리와 산업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렀으니 이는 여로보암과 그 아들들이 저희를 폐하여 여호와께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여로보암이 여러 산당과 숫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스스로 제사장들을 세움이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오로지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이 레위 사람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그러한데도 이 선지자는 죄악의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연륜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믿음 변함없이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2.자신보다 귀중한 역할을 하는 일꾼을 시샘했다.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지조를 지키지도 못하면서 귀중한 일을 하고 돌아가는 하나님의 종을 시샘한 것이다. 신앙의 연륜에 관계없이 열심히 일하고 섬기는 사람을 존경하고 격려하는 것이 옳은 신앙의 자세다. 그러나 잘못된 신앙은 오히려 거치는 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경성 해야만 한다.
죽이고 울어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곧 그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그를 위하여 슬피 울며 가로되 오호라 나의 형제여 하니라"(30)
Ⅲ.우리가 넘어지는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1.외적인 유혹이나 핍박에는 강하나 내적인 유혹에 약한 것이 그리스도교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도 언제나 그랬다.
①왕의 위엄 앞에서도 담대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고(1~4) ②왕의 회유에도 뿌리칠 수 있었다.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7) ③그러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라는 말 한마디에 맥없이 넘어가고 만다.
(18)"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①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②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③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2.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모범을 주셨다. 이러한 모든 불순종을 오직 순종으로 극복하신 십자가를 지신 주님 앞에 우리는 더 이상 어리석음이나 변명은 의미가 없다.
(마26: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14:36)"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눅22:42)"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3.육신의 일보다 영적인 일에 더 신경을 써야함을 본다. 영적인 일보다 육신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것에서 실패한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사도를 통하여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5~7) 라고 하였고 여이어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고 경계한바 있다.
요한도 그의 생의 말년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2:16)고 같은 경계를 주고 있다.
4.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여 쓰시는 종이라도 말씀을 온전히 순종치 않으면 징벌하신다.
우리는 교회 속에서 직분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설마 나를, 설마 나를"이라고 자위할 수 있다. 그러나 직분이 곧 천상의 보증은 아니다. 오히려 직분을 바로 감당치 못하면 그것이 더 큰 책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Ⅳ.결론.
먼저 복음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경계되는 사실은 그 시대의 불순종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났지만 복음이 완성된 이 시대에는 영원한 형벌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생명은 곧 사명을 위하여 존재하며 가치를 가진다. 주님께서 이 죄악의 시대, 이 죄악의 도성에 하나님의 복음의 선한 일을 위하여 오늘 나(우리)를 보내셨다. 우리는 세상에 취해있어서도 안되면 우리 각자가 나아온 세상의 길을 다시 돌아가서도 안 된다. 왕과 같은 권력과 우상을 경배하는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심판을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 우주의 어떤 세력도 결코 우리의 대적이 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혀 있다고 약속하신다.(롬8:31~39)
우리 각자가 먼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오로지 신앙으로 변함없이 앞서가는 것뿐임을 자각하고 먼저 된 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변함없이, 그리고 끝까지 경성하고 자신보다 귀중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신앙의 연륜이 짧든지 어리든지 격려하고 기도로 힘을 보태는 자세로 동역하고 더불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주님 오실 때까지 지속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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