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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참으로 부조화스러운 것 같다.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 하다가 돌연히 눈 얘기를 하고 나서 섬기는 주인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나 여기에는 깊은 관계가 있다. 본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주인을 결정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눈이 천국을 보는가 지옥을 보는가는 세상의 모양과 변화와는 무관하다. 다만 나 자신의 삶의 변화에 따라 나 자신의 위치가 천국에도 있고 지옥에도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재물이 귀하게 보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귀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1.무엇을 보느냐?(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21)
이것은 "너의 눈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 즉 관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땅이 나의 귀한 것을 쌓기에 더 영화롭고 안전하게 보이는가, 아니면 하늘인가? 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묻고 계신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21) 이 말씀을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눈도 있느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님께서는 들음에 대한 경계를 주시기도 했다.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막4:24) 우리는 안에 가진 믿음의 스크린을 통해서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비춰서 이해하고 그것은 다시 밖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눅8:18)
구약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에게 계시하실 때마다 물으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렘1:11, 13; 24:3)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암7:8; 8: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슥4:2; 5:2) 하나님의 종들은 한결 같이 이스라엘의 장래 운명을 볼 수 있는 영안을 가지고 하나님의 물음에 답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선지자들에게 물으신 것처럼 "‥‥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과연 무엇이 보인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2.어떻게 보느냐?
무슨 기준으로 보는가? 무엇이 중심인가?
천국을 재대로 본 사람이라면 과연 무엇이 천국보다 귀할 수 있을까?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44)
사람이 기분이 상해 있으면 아무리 좋은 말도 짜증나게만 들린다. 반대로 내 기분이 좋으면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도 웃어넘긴다. 신앙의 사람들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이유 때문에 감옥에 앉아서도 웃고 앉아서 무시를 당해도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 하였고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2:17~18)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정말 쓸개도 없는 사람 같다. 이러한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 그의 보는 눈은 모두가 천국이요 천상의 성도들로만 보여졌기 때문인 것 같다.
3.오늘 나의 눈은 성한가?(22~23)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네 온몸이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표준]
적어도 이것은 육신의 눈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
영적인 눈은 거듭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새로운 눈으로 이해함이 옳을 것이다.
우리의 영안(靈眼)의 성결(聖潔) 여부에 따라 우리의 온몸 즉, 우리의 삶이 천국의 광명을 누릴 수도 있고 우리의 신앙적 눈이 어두우면 광명한데 있어도 지옥 같은 어두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우리의 주인을 결정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인데 밝은 믿음의 눈은 빛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절대적 주인으로 흐려진 신앙의 눈은 오히려 재물과 사라질 땅의 영광을 나의 구세주로 섬기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 시간도 우리 자신들의 보는 눈이 과연 영적으로 바른 눈을 가졌는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창3: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죄악 즉, 사탄이 기준이 된 눈을 뜨게 된다.) 그전에는 사랑만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충만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4.나에게 무엇이 크게 보이는가?(24)
"아무도 하나님과 돈이라는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한편을 미워하며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편을 극진히 위하며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물인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신가?
배고픈 사람은 모든 것이 밥으로 보이고 장사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돈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여자를 보고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개같이 취급되는 죄 많은 사마리아의 여자조차도 구원 받아야할 가련한 인생으로 보셨다.
보는 것에서 말하고 행동은 나온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
마음에 가진 것에서 기준이 되어서 세상을 보게되어 있다. 광야여행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마음의 가진 하나님의 다스리는 천국을 소유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적진에 정탐하러 들어가서도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승리와 약속을 봤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민14:7~8)
그러나 세상을 대표하는 애굽에 길들여진 눈은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도 여전히 세상의 두려움과 공포로 수적인 우위로 모든 것을 계산하게 되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3)
이 두 가지 보고를 보면 마치 각각 다른 땅을 보고 와서 보고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같은 땅을 함께 보고 와서 보고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믿음의 눈이 성한 사람과 마음에 영혼의 빛이 어두운 사람의 차이가 이렇게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주님은 "또 여기 있다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오늘 나의 눈은 어느 부류의 눈이라고 믿어지는가?
오늘 우리 모두는 다 신앙의 사람으로 바울의 권면을 듣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1~2) 고 부탁하고 그 이유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3)고 설명한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과연 영의 사람으로 세상을 출애굽 한 나(出世한 사람)는 모든 상황을 영의 눈으로 성령과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과 더불어 밝게 보고 있는지 점검하고 그렇지 못한 흐려진 어두운 눈이라면 예수님의 보혈과 말씀으로 씻어서["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9:7) - 육신의 소경도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씻음을 받았다면] 밝은 눈으로 빛에 사는 나와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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