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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욥 22:21~30 2002-05-0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우리는 이 욥의 이야기에서 시종일관 자신의 무죄와 정결을 주장하며 타협 없이 순결을 지키는 욥을 향하여 세상의 일반적인 상대적 논리로 다그치고 있는 욥의 친구들을 온전한 사람들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 그들의 말은 우리 자신들에게 보배로운 교훈이 되는 것들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에서 때로는 짐승을 통해서도 그의 일꾼들을 교훈 하시고 책망하시는 것들을 읽게 되는데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막14:72)고 일깨우셨음을 본다.



이뿐 아니라 율법에서 엄하게 금지하신 일이지만 神 접한 여인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울을 책망하시는 것(삼상28:15~19)을 읽는다.



우리는 때로 아주 하찮게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신앙의 교훈을 얻고 경계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10:6~11)고 교훈 해 주고 있다.



Ⅰ.하나님과의 화목이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과제이다.(21~23)



성경은 우리 인생의 모든 불운은 하나 같이 죄와 관련되어 있고 그 죄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것을 지적한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5:25)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쉽게 내리게 된다.



1.인생의 가장 우선 순위를 하나님과의 화목에 둬야 한다.(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1]인간의 불행은 하나님과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사람의 절대적 행복은 하나님과의 화목과 평안함에서 얻어지는 것을 우리가 '에덴'(희락의 동산)의 범죄 이전에 누렸던 희락에서 찾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미래의 회복될 메시야 왕국의 모습을 예언하기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하였고, 요한 사도를 통해서 기록한 계시록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회복된 새 예루살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계21: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데서 불행은 시작되었고 그것은 고통과 눈물과 절망으로 넘치게 만들었다.



[2]이 간격은 인간의 노력으로 매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이 불화는 사람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매울 수 없는 절망의 늪이며 인간 스스로는 건널 수 없는 절망의 강이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셔서 죄진 인간은 죽음과 절망의 모습으로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깊은 수렁이 존재할 뿐이다.



[3]하나님께서 이 강을 아들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매우셨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서 화해의 길을 마련하신 것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죄를 간과하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죄의 수치와 저주를 자신이 친히 감당하셔서 우리에게 화해의 안전한 다리를 절망의 수렁 위에 세우신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형벌을 자신이 친히 지시고 나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0) 고 약속하시고 계시다.



2.그 화목을 지켜 가는 법도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이다.(22)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우리 모두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믿고 순종하므로 드디어 하나님과 화목하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죄의 습성은 끊임없이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내려고 한다.



[1]그 입에서 나오는 교훈을 받아야 한다.(22f)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이것은 적어도 하나님과 화평을 계속적으로 지켜 가는 최고의 방법이다. 바울사도도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 했는데 그것 역시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을 가르침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계속 적으로 듣고 경계를 삼아 순종할 때 하나님과의 화평은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2]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고 당부하신다.(22b)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6:6),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잠6:21),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5)



3.계속해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1]우리의 목표는 늘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23f)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신앙의 사람도 때로는 흔들릴 때가 있고 갈등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언제나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우리의 인생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야 한다. 탕자가 그러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2]우리의 삶의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제해야 한다.(23b)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우리의 장막은 바로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를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더불어 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같이 살면서 죄에게도 방을 내어 줄 수 없다.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임한다.



Ⅱ.하나님께서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이셔야 한다.(24~27)



우리의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을 자신의 아들의 생명과 바꾸신 주님께서 우리 인생의 언저리로 결코 만족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지불하신 대가가 크신 만큼 우리 삶의 모두를 가지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어느 부분만을 그분께 허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실 수 없는 모욕이라고 느끼신다.



1.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세상의 어떤 것도 비교하는 것을 용납지 않으신다.(24)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을 버릴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이 되어 주신다. 우리 신앙의 사람들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 아닌 어떤 것을 둬서도 안 된다.[형제의 우애를 깨뜨리는 금 덩어리 강물에 버리는 兄弟 -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이 있다.]



오늘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재산, 명예, 가족, 우리에게는 독선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래서 주님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10:37) 하셨고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하신다.



어떤 것도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거나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 것은 사실 주님 자신을 위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전혀 우리를 위해서이다.



우리는 두 주인을 다 잘 섬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마6:24; 눅16:13)



그리스도의 절대가 세상의 모든 것을 상대화 시켜 버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다.



2.하나님만이 우리의 인생의 보배로운 주인이셔야 한다.(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세상의 모든 보호를 거절해 버리고 주님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확실한 가치가 되어 주신다. 세상을 버린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나는 너의 보배가 되겠다"고 선언하신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모두 버리고 가나안으로 들어온 아브람을 향하여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고 격려하신다.



[367:1]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 가도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세상에서 부귀 영화 모두 잃어 버려도, 주의 평안 내가 받고 영생 복을 얻겠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저울질하는 이상 하나님께서 보배가 되어 주실 수 없다. 여차하면 세상으로 튀려고 하는 表裏不同한 사람들에게는 세상도 하나님도 절대적 가치가 되지 못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렇게 고백하는 바울은 아울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3:8)고 말한다.



3.주님만 기뻐하는 자에게 얼굴을 비추실 것이다.(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25~26)



4.하나님과 완전한 교통이 이루어진다.(27)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 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



요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Ⅲ.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관해 주실 것이다.(28~30)



주님께서 우리에게 절대 가치가 되실 때에 비로소 우리의 삶은 주님께서 친히 다스려 주실 것이다.



1.이렇게 될 때 나의 일은 하나님의 손에 넘겨진다.(28)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절대적 존재가 되시면 우리의 모든 일은 주님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의 모든 인생을 경경하실 것이다.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46:10)



2.세상의 수치와 멸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29)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의 당하는 고난과 수치는 곧 주님이 받는 것이 될 것임으로 그러한 것을 반드시 되 갚으실 것이다.



3.이것은 우리의 삶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움직여지는 인생이기 때문이다.(30)



"무죄한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을 인하여 그런 자가 건지심을 입으리라"



주님 앞에 정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욥25:5)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정결한 삶이 되고 그러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또 다른 사람들을 은혜에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Ⅳ.결론.



나 자신의 생명이나 재산이나 가치나 인생보다도 귀한 것은 하나님이셔야 한다. 상대적인 오늘의 시대에 이것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계실 때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적당한 관계로만 생각한다면 주님도 우리의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실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가치를 버린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절대적 가치가 되셔서 우리 인생과 가정과 모든 것을 주관해 주실 것이다.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사33:6)



상대화된 세상의 유혹을 버리고 주님을 나의 보배로 삼고 절대화하면 가정도 행복도 지켜진다. 그러나 하나님을 나의 모든 다른 것들에 같이 두게 되면 우리의 모든 것은 다 깨어지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