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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7:13~14 2002-05-20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서는 사촌 형제간에 사랑하는 연인을 양보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도 실지로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시대에는 모든 길조차도 되도록 넓게, 넓게(2차선 16차선) 넓히고 있고 가상 공간의 길인 PC의 데이터의 이동 경로까지도 100에서 133, 266, 400 clock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 어느 때 보다도 반대되는 개념인 본문의 말씀은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고 적용하는 것은 더욱 힘든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Enter through the narrow gate. For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road that leads to destruction, and many enter through it.(13) But small is the gate and narrow the road that leads to life, and only a few find it.(14)

우리 인생은 일생에 수많은 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문의 선택은 언제나 최종적으로 내가 한다.

Ⅰ.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가는 편리한 길 쉬운 길을 왜 주님은 막아 서실까? 어렵고 힘겹게 사는 것만을 원하시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대로만 버려 두어도 멸망으로 가는 것은 자동이다. 주님은 결코 우리의 망함을 원치 않으신다. 왜인가? 자신의 피로 죄에서 사셨기 때문이다.

1.명령이다.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신 생명의 주님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이 아니 자들의 삶은 간섭치 않으신다. 로마서 1장에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24)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26)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28)" 라고 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랑 입은 자녀들, 십자가의 피로 씻김을 입은 백성들에게는 언제나 죄악과의 성별을 명령하신다. 아무렇게나 인생이 떠내려가도록 버려 두지 않으신다.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2:3) 명령하신다.

2.선택은 각자가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우리가 힘겨워도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면 반드시 결과적으로는 기쁨과 영광으로 결과한다는 사실이다. "그래 주님 말씀 순종하길 백 번 잘했다! 할렐루야!" 라는 고백을 순종한 사람들은 반드시 하게 될 것이다. 믿는가?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3:17)

Ⅱ.들어가는 자들과 찾는 이들…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준은 진리와 상관이 있느냐 보다는 '길이 잘 닦여 있느냐, 많은 사람들이 가느냐?'를 선택의 이유로 삼고 거기에 '그렇다고' 답변이 되면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는다. 오늘 이 시대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대중성이 있느냐?' 일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휩쓸려 가는 사람들이다.

1.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오늘 대부분 사람들이 선택하는 "普遍妥當"은 의외로 함정일 수 있다.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라고 고함치든 사람들이 모두가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저 분은 죽여서 안된다"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악의 종노릇하던 종교지도자들의 선동에 군중들은 점점 흥분하였고 악은 이겨 갔던 것이다.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눅23:21~23)

세상의 법은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였다. 오늘 신앙도 대단히 두려운 사실이지만 대중적인 인기 수준이 수를 좌우한다. 오늘 진리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소위 기독교인들조차도 입고, 먹고, 일하고, 공부하고 사는 것들을 모두 그렇게 한다면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러나 마구 밀려가는 다수의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점검해야 할 사실은 "이 문이 생명으로 연결 된 문인가?" 라는 점검이다.

2.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공동]"

여기서 단순히 적음이니라가 아니라 "찾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냥 휩쓸려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찾아서 들어가는 문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늘 점검하는 모습을 본다. 먹어도(신앙이 순수할 때의 모습을 되돌아보자-졸업여행 하면서 전화한 자매) "이것이 영생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닌가?" 늘 위엣 것을 찾는 삶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고 당부한 바 있다. 살든지 죽든지 진리를 점검하는 삶이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은 이러한 사람을 위의 다수의 사람들을 "者" 라고 표현한 대신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먹으면서 특별히 건강들을 많이 생각들 한다. '체 지방이 감소된다, 혈당이 내려간다. 콜레스테롤이 내려간다.' 등등 그렇다면 하늘의 사람으로서의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더욱 신경 써야하지 않을까?

살면서 먹든지 마시든지 하늘의 사람으로서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점검하는 그것은 분명히 좁은 문이다. 그러나 좁은 문을 선택한 최종적인 결과는 생명으로 인도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그냥 다 그렇다는 식으로 일반적인 것을 생각할 때도 모든 사람에게는 타당하지 않지만 하늘의 사람으로 합당한 삶을 찾는 생명에 이를 사람은 달라야 한다.

비록 그러한 동료가 소수일지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하심을 구하는 삶은 이 땅에서는 좁고 험한 길이지만 주님의 뜻을 구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찾는 이가 적은 좁은 문을 선택한 사람들도 역시 주님께서 이끌어 주심이 확실하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함께 떠밀려 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큰소리 치고 이 땅에서 쾌락을 추구할 때 눈을 들어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언제나 좁은 문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다.

Ⅲ.인도하는 문들이다.(멸망으로 인도하는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우리는 오늘의 시대만큼이나 이 말씀이 실감나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공항이나 지하철에 Moving Walker는 물론이고 할인 Mart들에서조차도 escalator를 타면 굳이 걸을 필요가 없이 가고자하는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서 "인도하는"이 수동형이다. "들어가라!"는 명령형과 사뭇 다름을 깨닫는다. 우리는 사회의 풍조에 밀려갈 수 있고 어떤 유행에 떠밀려갈 수 있다. 그것보다도 위험한 것은 모든 사람들에 떠밀려 멸망에 다다를 수 있다는 두려운 가능성이다.

우리는 세상의 불신과 하나님을 거역하는 풍조에 자연스럽게 밀려 떠내려갈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부실했던 것을 1회로 만회하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기념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1회로 만회되는 신앙이 불가능하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9~11)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17~24)

1.우리는 적어도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에 서지 말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4)

문의 선택은 내가 하지만 그 문들은 각각 내 인생을 전혀 다른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2.생명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서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떠밀려 가서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가 좁은 문을 선택하기만 하면 생명으로 인도되는 것도 우리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에 의해서임을 잊지 말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Ⅳ.결론.

결과의 엄청난 차이를 본다.

우리는 계속해서 두 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

"… ①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②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오늘 우리의 들어갈 문의 선택의 결말은 오늘 우리가 공항이나 지하철에 Moving Walker를 탔을 때하고는 다를 것이다. 출발지는 분명히 오늘 현실이고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도착지는 엄청나게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도달할 도착지를 볼 수 없는 까닭에 아무렇게나 편하고 일반 대중이 선택하는 것들을 나도 선택한다.

우리를 위해서 피 흘리신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명령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선택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 각자가 해야 할 과제이다. 모든 일반적인 사람들은 편하고 넓은 길을 선택한다. 당연히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라는 것보다는 피로 우리를 죽을 수밖에 없는 죄악에서 사주신 주님의 기뻐하시는 좁은 문 구원의 문을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서 "인도하는"이 수동형이다. 우리가 선택한 문에 설 때 우리는 멸망으로 이끌림을 받을 수도 있고 생명에 이끌림을 받을 것이다. 세상과 죄악은 아주 편하게 우리를 멸망이라는 최후 종착지에 나를 인도할 것이고 비록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지만 고난의 험하고 좁은 문일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면 생명의 문을 선택하여 주님과 함께 좁고 험한 인생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2:7)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13)는 경계를 매 순간 확인하여 비록 적은 사람들 그래서 고독할 수도 있지만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험해서,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14)는 경계의 교훈을 오늘 나의 것으로 삼아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비록 광야에서 머물러도 하늘의 문을 확인하고 사는 우리 신앙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