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행 17:22~31 0000-00-00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은 철학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 가운데서 당시에 철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교훈 하던 아레오바고 가운데서 당시의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시에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빌어서 그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동일하게 오늘 우리를 꾸짖고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사실 철학이라는 것의 목적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최고의 학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근본을 잃어버리고 인간과 사람을 규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당연하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가장 사실적인 모습을 바로 깨닫고 거기에 따라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흠 없는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Ⅰ.반드시 알아야 할 것(22~23)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절대적인 존재에 의존하여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다. 그래서 대상이 무엇이 됐든지 섬기려고 하는 것은 비록 범죄 하기는 했지만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부터 하나님 없이는 살지 못하는 특별한 성격을 사람들 속에 창조해 놓으신 것이다. 그러나 범죄 한 인류는 그 섬김의 대상의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대신에 다른 피조물들을 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이 없는 사람이든지 지식이 많은 사람이든지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예외가 없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더 종교적인 것은 1세기 최고 철학의 도시 아테네에서부터 과학의 최첨단의 시대라고 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꼭 같다.

또 문명국일수록 오히려 다신교적인 것을 역사 속에서 흔하게 보는 것들이다. 최고로 지혜로운 시민이라는 긍지를 가진 아테네 사람들은 신들의 이름을 붙이다 못해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까지 제사하는 제단을 꾸몄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유일신교는 오히려 어리석게 보이는 것 같이 보이는 것 같다.

앗수르 왕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말하기를 "너희가 혹시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왕하18:22) 저들이 보기에는 여러 신을 섬기는 것이 군사를 많이 거느리는 것과 같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다.

교회를 들락거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다. 물론 제대로 된 신앙은 아니지만 그들은 '만약에 예수 믿어서 천국이 있으면 가고 다른 신도 믿어 가지고 손해볼 것은 없지 않느냐!' 하는 식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사람들은 바울 시대의 아덴 사람들과 다름이 없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칭찬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신을 많이 섬기는 것보다 생명이 걸린 문제는 그 신이 참으로 사람을 도울 힘이 있는 참신이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위하고 섬기는 것으로 그 자신들의 가치를 알 수 있다. 권력을 섬기는 사람도 있고 돈을 섬기는 사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