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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눅 8:22~25 2002-06-02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항상 같이 지내면서도 위기를 만나자 사정없이 흔들리는 제자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물으신다. 이러한 오늘 예수님의 물음을 들으면 마치 믿음이 도시락에 싸서 가지고 다니는 음식 같이 필요할 때는 꺼내 놓고 그렇지 않을 때는 깊이 감추어 두는 그런 것처럼 느낌이 든다. 마치 별주부전에 나오는 토끼가 자신의 간은 꺼내 두었다가 넣기도 하고 더러우면 씻어 넣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항상 변함없이 같이 해야 하는 귀중한 삶의 도구로 확인하시기 위한 사실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육신의 삶이 한 순간도 빠뜨리지 않고 계속적으로 의식하든 안 하든 하는 호흡처럼 믿음 역시 우리에게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왕좌왕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묻고 계시는 것 같이 들린다. 오늘 우리가 좀더 이해하기 쉬운 다른 말로 바꿔서 이해를 한다면 "네가 정말로 하나님 의지하고 산다고 하는 것이 그 모양이냐?" 라고 들린다.

어느 순간 갈팡질팡하고 있는 나에게 주님께서 오셔서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질문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언제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Ⅰ.신앙의 사람들에게도 풍랑은 있다.(22~23)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 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갈릴리 바다는 언제나 예고 없이 풍랑이 잘 일어 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제자들의 삶의 터전인 갈릴리, 그러나 거기에 언제나 일어나는 풍랑처럼 오늘 우리의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너에게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라는 예고가 있고 시험이나 고난이 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신앙의 사람이건 불신자이건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풍랑 가운데 드러나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풍랑에 대처하는 모습은 믿음이 있는 신앙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엄청난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1.주님께서 함께 하셨는데도 풍랑이 일어났다.

①'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러나 그들은 풍랑이 일어났을 때 그곳에 예수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2.주님께서 가자고 하시는 데로 갔는데도 풍랑이 일어났다.

주님께서 명령하셨다. ②'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3.순종하였는데도 풍랑이 일어났다.

③'이에 떠나' 그럼으로 준비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

4.잘 나아가다가 풍랑이 일어났다. "행선 할 때에"(23f)

④'행선 할 때에' 언제나 어려움은 시작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깊은 신앙에 섰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위기와 시험은 달려들기 마련이다.



Ⅱ.잠자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23~24)

"행선 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

다른 사람은 대게 이 말씀에서 주님을 깨워야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주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매 순간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보고 계시는 분이시다. 시편기자는 찬양하기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시121:4)고 고백하고 있다. 욥은 고통 중에도 고백하기를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욥7:19) 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에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계셨던 예수께서 잠드셨을 때 풍랑을 만난 것처럼, 우리가 신앙이 잠들어 있을 때 풍랑을 만나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더 이상 연약한 육신을 입고 계시지 않으시다. 그러므로 더욱 나 자신이 깨어야 할 시기인 것이다.

1.비정상적인 상황이 되었다.

고통이 찾아왔다. ①"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힘겨운 수고를 감수해야만 했다. ②"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2.견디기 어려운 경지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위급한 경우에 이르렀다. ③"위태한지라" 죽을 지경이 되었다. ④"우리가 죽겠나이다"

3.깨어 있어야 한다. 성경의 당부는 한결 같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6:18)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5:6)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16:15)



Ⅲ.오늘 나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묻고 계신다.(25f)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 믿음은 우리 인간에게서 스스로 생겨나지 않는 믿음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명과 관련된 어떤 것도 사망의 몸인 죄진 인간에게서 난 것은 없다. 구원도 선물이요, 은혜도 선물이요, 믿음도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을 거져 주신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선물을 소유하며 사는 것은 받은 각자의 자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을 키워서 크게 가지고 사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점점 잃어 버려서 마침내는 완전히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찬185]

오늘 여기 여러분들은 어떤가?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이라는 것이 가지고 다니는 지갑처럼 내놓고 보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요구할 때마다 면허증처럼 보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이 두 가지와 매우 흡사하다. 물론 지갑이나 면허증처럼 취득하는 과정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지갑처럼 천국의 아름다운 것들을 그 속에 다 넣어 가지고 다니고 면허증처럼 어떤 관문을 통과하는가 하면 운전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영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1.주님께서 물으신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 pistis, '페이도(peitho)'에서 유래하여 설득, 신용,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확신, (특히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를) 신뢰. 막11:22; 롬3:3 faith, faithfulness; (연루된 의미로 직업에서의) 꾸준함]

2.나의 믿음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어디 있느냐" (장소의 부사로서)무슨 장소에, 어느 곳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요8:14);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고전12:17)

신앙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평상시에는 믿음이라는 천국 지갑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거의 어렵다. 그러나 위기나 어려움을 만나면 그 '믿음'은 그 사람의 모습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확실히 들어내고 만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다.



Ⅳ.내(우리)가 모시고 있는 주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25b)

"…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제자들은 그 때가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베푸시는 기적을 목격하며 다니면서도 그 위기를 당하기까지도 주님이 어떤 분이 신지 그 분이 주신 믿음이 어떤 것인지 전혀 의식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이상히 여길 뿐이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과 함께 따라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는 '저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이 순종하는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오늘 본의 제자들처럼 어떤 경우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전혀 의식도 못하고, 그분이 어떤 분이 신지'도 잊어버리고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주님이 놀람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사람에게만은 그만큼 익숙지 못한 존재로 계시는 것이다. 이 역사 속에서 주님의 기적과 능력을 수시로 누리고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능력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났다는 이적이 의아하게 여겨지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한 사람인가?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적은 그렇게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 속에 들어와 계신다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이 우주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주님과 함께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은 오늘도 어려움과 고통을 만나서 허둥대는 나를 보시면서 "내가 모든 상황을 능히 해결할 수 있도록 너희에게 줬던 믿음은 어디에다 버려 뒀느냐? 무엇보다도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냐?"고 물으실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육신을 입고 사는 이상 모든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죽음의 상황에까지 갔을지라도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식하고 바울 사도의 고백과 같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며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Ⅴ.결론.

능력의 삶이란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고 나에게 믿음을 부여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의식하며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극복할 것을 확신하고 넉넉히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을 주님은 요구하시고 교회와 세상이 필요로 하며 그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주님은 나(우리)를 향하여 동일하게 묻고 계신다. "내가 희생의 십자가로 인하여 선물로 준 믿음을 오늘 너는 어떻게 갖고 있느냐?" 이 질문에 부끄러움이 없는 나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