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는 우리가 보호받는 국가를 위하여 여러 가지를 많이 감당하고 감해야 한다. 또 의로운 통치와 평안한 신앙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당부를 듣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2:1~2)
그러나 하늘의 백성으로서 더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보존과 확장을 위한 우리의 의무감과 자세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백성다움의 자세를 흐트러지게 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곧잘 가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정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보존되기 위한 가족으로서의 의무와 자세가 있고 오늘 요한 사도는 사랑이라는 법으로 지배되는 이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집에서의 우리의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우리를 향하여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라고 말한바 있다. 즉, '사랑의 나라'와 '아들의 나라'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아들의 희생의 피로 세워진 나라요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임을 가르친다.
우리 국가가 각 국민의 의무의 충실한 이행과 충성으로 지켜지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다.
Ⅰ.하나님의 나라의 기초 헌법이 사랑이다.(11)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그리스도의 피 흘림의 희생으로 세워진 나라다.
복음이 이 땅에 증거 되면서 증거 된 것이 하나님께서 죄진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선언이었다. 물론 우리 각자가 전도를 받으면서도 가장 먼저 들은 말씀도 하나님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한사람의 육신의 자녀탄생도 부부간의 사랑의 행위에 의해서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는 죄의 어두움 속에 있던 우리에게 완전한 사랑의 법 때문에, 십자가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
죄악의 이 땅에는 사랑이 바탕이 되야 할 법은 효력을 잃고 미움과 저주가 더 세력을 얻어서 다투고 싸우며 빼앗고 죽이는 어두움이 되었고 이 선거 철이 되면 그런 것들을 더욱 실감한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어두움이 싫어서, 사랑이 그리워 사랑 받기 위해서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온 자들이 아닌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는 이 사랑의 나라에 감격하여 이민 자들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 하게 이 사랑이 기초되고 희생이 기초된 나라, 그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들어와 있으면서도 어떤 경우에 과거 어두움의 나라의 행위와 생각을 재현하려는 우리 각자들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의 나라의 완전을 위하여 사랑의 나라의 왕이신 주님께서 마지막을 정하시고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17:31) 이 말씀은 사랑이 완전히 지배하는 나라를 위하여 백성들을 완전히 구별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13:41~42)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사랑의 법에 의해서 살지 않으면 그것은 허울좋은 이름뿐인 사랑의 나라 백성일 수 있다.
2.이 사랑의 법은 더 이상 돌이나 종이에 쓰여진 법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약 말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율법에 근거한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에 의해서 세워지는 나라의 법을 말씀해 주시기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1:31~33) 하셨는데 이 말씀은 더 이상 보이도록 기록된 법을 보이면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마음에 감격으로 간직하는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백성을 사랑하게 될 사랑이 완전히 지배하는 나라임을 말씀하신다.
사랑은 명문화 된 법을 따져서 하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다. 사실 완전한 사랑 속에는 보이는 법이 별로 효력이 없다. 그래서 복음은 세상의 법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Ⅱ.어두움의 법을 따를 수 없다.(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동생을 시기하여 분노한 가인에게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가인은 결국 어두움의 세력의 하수인이 되어 동생을 죽이고 만다. 그리고 이를 평가하기를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선언하고 있다. 어둠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자신을 살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로움을 시샘하고 미워하는 모습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사도 요한을 통해서 "가인같이 하지 말라"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당부는 언제나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어두움의 나라 백성에게 두시는 명령이 아니라 사랑의 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당부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중성에 대하여 바울 사도도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1:16)고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삶 대한 실재적인 경계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이다.
Ⅲ.사랑의 법을 행하는 것이 우리가 사랑의 나라에 있다는 사실적인 증거다.(13~15)
앞의 내용들이 좀더 실질적으로 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내용이 여기에 있다.
1.법이 다른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직접 말씀하신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들보다 세상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동에 더 가깝거나 그들과 더 잘 조화된다면 여기에 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2.나 자신이 지금 어디에 속했는가에 대한 검증.(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사랑의 나라의 백성 됨으로 인하여 당하거나 손해본 것들을 증거하기를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①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②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③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④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⑤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히10:32~34)고 과거의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오늘 나는 어느 것을 더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가?
3.우리 각자가 두려워해야 할 자신의 모습.(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확실한 성경적인 선언과 함께 익숙한 또 하나의 별명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피를 나눈 혈연의 관계이고 여기서는 굳이 법이라는 것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가족관계도 법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末世至末임을 실감하는 동시에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갖는다.
서로 간의 배려와 사랑은 하나님 앞에 제사보다 더 중요시되고 있음을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Ⅳ.이 사랑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완성된 법이다.(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사랑의 나라는 희생으로 세워진 나라이고 희생으로 지켜지는 나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마련된 이 나라는 오늘 나의 희생과 섬김으로 서로에게 자신에게 지켜져 가는 나라이다.
1.주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이셨다.
언제나 주님이 먼저다. 베드로 사도는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라고 주님의 십자가를 모범으로 소개하고 있고 요한 사도도 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 주님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나(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생명을 주신 것으로 모범을 주셨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그럼으로 나(우리)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2.하나님의 가족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데 까지 사랑해야 한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 사랑의 나라의 마음에 있는 법은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것이요,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희생하는 것이다.
Ⅴ.결론.
우리가 속해 있는 새로운 나라, 생명의 나라, 사랑의 나라인 교회는 사랑의 법에 의해서 커 가는 나라다. 무기와 싸움이 아니라 희생과 사랑으로 확장되는 나라다. 돌에 쓰여진 법이 아니라도 우리의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 얻은 시민권이 있다. 그렇게 때문에 더 이상 어두움의 과거의 나라의 행위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 내가 이 사랑의 나라의 시민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나의 삶 속에 미움의 원리보다는 사랑과 희생이 같은 시민 된 관계 속에 나타나는 것으로 확신되는 것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세워진 사랑의 나라는 오늘 나의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 유지되고 확장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피를 나눴다고 하는 전우애도 평생을 간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
각자의 관계 속에 법률적인 계산의 관계가 아니라 감사하는 희생의 관계가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를 서로 서로 받들어 가는 사랑의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