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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4)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6)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7)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지금 "나"라고 하는 자아는 생각으로 우리 속에 존재한다. 이 몸집에 거하면서 자신의 육체를 움직이고 이끌어 가는 생각, 미래를 결정하고 계획하는 생각이 나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 사람들의 이 생각은 반드시 어떤 강한 힘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그 지배하는 영향력에 의해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정신을 잃었다' 거나 '제정신이 아니다' 라는 말을 곧잘 하곤 한다. 또 '저 사람은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다' 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만큼 외부의 영향력에도 허약한 것이 육체에 거하는 우리의 생각이다.
요즘 우리는 거대한 하나의 흐름에 우리 각자를 내 맡겨 버린 채로 생각이 오로지 하나에 붙잡혀 있는 것을 느낀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파란 잔디 위에 11 사람의 발끝에 눈과 마음과 생각과 인생을 다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아우성이 있고 탄성이 있고 절규가 있고 온 갓 喜怒哀樂이 거기에서 다 나오는 느낌이다.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고 유쾌해 하는데 우리는 시큰둥해 있을 필요는 없다. 바울 사도는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고 당부한바 있다. 우리도 한 국민 된 감격과 자긍심을 나눌 수 있고 더 높은 고지를 기대하고 바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사람들로서 이러한 거대한 물결과 같은 흐름에서도 우리 자신을 잃지 않고 중심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며, 영적인 단계적 성장을 16강, 8강과 같이 기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의 영원한 하늘의 영광의 역사를 보면서도 그럴 수 있는가?' 라는 도전을 해볼 필요가 있다. 아니 성경대로라면 그보다 더 큰 희열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Ⅰ.우리의 승부는 육체에 있지 않다.(3~4)
(3)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4)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7)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1.우리도 육신을 입고 산다.(3f)"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하늘의 부르심을 입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의 도구인 육신을 입고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입은 육신은 세상의 죄에 유혹에는 완전히 무반응 하는 그런 육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이 육체를 다스리는 정신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육체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6:11에서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당부하고 나서 계속 경계하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12~14)고 선언한다.
우리도 동일한 육신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고후2:16)라고 구별하고 있다.
2.우리의 투쟁은 육신의 싸움이 아니다.(3b~4) "…육정을 따라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싸움에 쓰는 우리의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적수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실 때 어두움의 핫인 노릇하여 우리에게 대적으로 역할 하는 사람까지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라는 것이지 어두움의 권세자인 마귀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고 선언하는 것처럼 우리의 철천지원수는 마귀 사탄이지 그러한 세력에 눌려서 이용당하는 인간이 아니다.
영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육신을 위한 소모전은 참으로 유치한 소꿉 싸움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대범할 필요가 있다. 유치한 썩은 고기를 위한 초라한 하이에나의 싸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3.어떤 대상이라도 반드시 이기는 무기이다.(4b)"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요새라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골목에서 우리 스스로만 싸우는 싸움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싸움이다. 우리의 싸우는 모습을 주님은 늘 보고 계시고 우리가 약할 때에는 우리의 대적을 친히 대항하시기 때문에 이미 이겨놓은 싸움이라고 까지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무기로 싸우는 유리한 고지의 전사들이다.
그러나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Ⅱ.모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5f)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우리의 삶 속에서나 언어 생활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역사를 거스르는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불신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계시는 당시에도 은혜의 역사는 제한되었던 것들을 본다. 마가복음 6장 서두에 보면 예수께서 고향에 가셨을 때 그곳 사람들이 육신 적으로 아는 것 때문에 예수임을 배척했고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5) 라고 불신의 비극을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불신임을 성경에서는 자주 말씀하고 있다.
1.궤변을 물리쳐야 한다.(5f)
모든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으로 제한하는 괴변들을 물리쳐야 한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는 하나님에 관한 인간적 판단과 거역을 몰아내야 한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언제나 우리의 얕은 생각과 꾀로 제한하는 어리석음을 물리쳐야 한다.
아람 군대에 둘러싸인 사마리아 성에 먹을 것이 귀해서 "당나귀 머리 하나 값이 은 912그램이었고 [비둘기 똥 한 홉에 은 약 34그램]이었다."(왕하6:25) 그때 엘리사가 선언하기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가장 좋은 밀가루 약 7리터와 보리 약 15리터가 각각 은 11.4그램]에 매매되는 것을 보게 될 것"(왕하7:1)이라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했지만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2)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언제나 있지만 그것을 얕은 생각으로 제한하고 헤아리는 사람에게는 득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궤변을 우리 각자에게서 물리쳐야 은혜의 역사가 바로 나의 것이 될 것이다.
2.교만을 쳐 부셔야 한다.(5fm)
이런 모든 것은 교만에서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는 잘못된 궤변이나 불신의 생각 못지 않게 구원과 은혜의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교만이라는 기형적인 괴물이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고 가르쳤고 야고보는 "…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 항상 덤벙대고 우쭐하던 베드로 사도 역시 "…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Ⅲ.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5b)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사로잡는 다거나 복종은 다분히 강제성을 가지는 말이다.
최초의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여인 '하와'는 뱀의 말에 생각이 붙잡혀 선악과를 금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의도조차도 의심하게 되었다. 우리의 생각은 늘 쇳덩이처럼 자석에 들러붙으려고 하는 것처럼 어떤 것들에 들러붙는 잘못된 습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를 가장 좋게 해 주실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 시켜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경계하기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고전9:27)
1.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야 한다.(5mb)
범죄한 인간의 생각은 항상 악할 뿐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바울 사도도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고 고백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의 자연적인 생각은 절대로 바르게 쓰이지 못한다.
"사로잡아[아이크말로티조, aichmalotzo]"라는 말은 '포로로 하다, 사로잡아 데려가다' 라는 의미다. 마치 로마서7:23에 사용된 말씀과 같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사로잡는다' 라는 말은 강제성을 가지는 말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의 사랑의 법에 완전히 사로 잡혀야 한다.
우리의 모든 생각은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생각이 바른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결과를 바울 사도는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3:20)
2.그리스도께 복종 시켜야 한다.(5b)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고후9:13)
Ⅳ.그럴 때 비로소 확실히 멸망 받을 사람들과 구별될 것이다.(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Ⅴ.결론.
우리는 영의 사람들이다. 무엇을 보고 겪으면서도 영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16강에 오르는 우리의 축구팀을 보면서 온 나라가 열광을 했다. 그보다 더한 영적인 싸움의 단계를 이기고 올라가려는 열망과 그러한 선한 싸움을 감당하는 하늘의 전사들에 대해 더욱 환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거룩한 전사로 싸울 때 우리를 응원하며 격려하며 열광하는 군중은 월드컵의 응원에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12:1)
어떤 경우에도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생각을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붙잡혀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뿐 아니라 나와 교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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