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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석
사 58:11~12, 사 40:1~5 2019-09-08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 : 고난  
이사야 58:11-12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사 40:1-5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죄의 속성에 대해 에덴 동산에서부터 연구해 온 그래서 우리 인간보다 죄의 속성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사탄은 우리의 생존 본능이 욕심이 되고 궁극적으로 죄를 짓게 하기 위해서 “비교와 경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구조 전반을 지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비교와 경쟁”의 원리를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도 침투시켜 용서와 사랑으로 가득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삶의 가장 기초가 되는 교회와 가정까지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주 전에는 사탄이 어떻게 예배를 교묘하게 타락하게 했는지 보셨습니다. 먼저 예배의 유일한 대상인 하나님 대신에 우상 숭배로 바꾸어 왔고, 심지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조차도 사탄의 기준 즉 세상의 기준으로 바꾸어 예배를 사람의 눈에 보기 좋고 예배의 형식으로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청중을 감동시키기 위해 화려하게 꾸며도 되는 공연과는 다른 목적을 갖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는 이들의 진지함과 전문성을 분명히 존경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는 근본적인 목적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누군가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건을 기억하고 미래에 있을 심판에서 누군가는 영원히 구원을 얻고 누군가는 영원한 벌을 받을 것이라는 매우 심각하고 절대적인 성격을 가진 사안에 대한 약속을 확인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얼마나 화려하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영원한 인생을 결정할 심각한 사안에 대해서 지금까지 어떠한 역사적인 증거들로 설명이 되었는지를 확인하고, 더 나아가 그 증거들과 함께 주어진 약속을 믿는 자들이 함께 모여서 마지막까지 그 약속을 지키겠다(순종, 삼상 15:22)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이와 같이 소중한 예배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릴 수 있음을 감사드리고 다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은 이 세상의 무너진 다른 부분을 보고자 합니다. 바로 고난(고통)입니다. 한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저는 절대로 누군가의 고난(고통)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당사자가 겪는 고난의 무게에 대해서는 제 삼자가 절대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인 아들을 잃는 그것도 흠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타인들의 죄 때문에 희생시키셨던 고통을 우리와 공유해 주셨기에 감히 오늘 여러분 앞에 우리 인류가 겪는 고통/고난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첫번째,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통/고난의 원인 네가지

두번째, 사탄은 고통을 어떻게 이용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공격하는가?

세번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고통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본문

첫번째,

성경에 등장하는 고난의 원인에 대해서는 크게 네가지 정도로 볼 수가 있습니다.

고통의 근원:

창세기 3:16-17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 자신의 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반복되었던 양식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 이스라엘 민족의 교만과 죄  하나님의 벌과 그로 인한 고통/고난  이스라엘 민족의 회개(겸손) 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이 벌하시는 시점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죄인은 이 세상에서 그 벌을 받을 수도 있고 이 세상에서 벌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지막 심판의 날에 공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2. 타인의 죄

        우리는 뉴스를 통해 매일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이들을 확인합니다. 누군가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루어진 테러는 지금까지 수많은 무죄한 목숨들을 앗아갔습니다. 누군가의 음주운전으로 누군가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그 가족은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이는 자신이 지은 죄의 벌로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와 아무 상관없이 단지 타인의 악한 행위로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잠언 13:20의 말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와 같이 미련하게 죄를 사랑하는 자들을 멀리하고 지혜롭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가까이하면 그 만큼 타인의 죄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꼭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에스겔 18:1-4에 따르면,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여기서 타인의 죄 때문에 누군가가 고통 또는 벌을 받는다는 것에는 타인의 죄가 누군가에게 전가되어 그 벌을 죄가 전가된 사람이 대신 받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즉 부모의 죄로 인해 자녀를 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만일 그러한 것을 누가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탄의 장난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시기에, 사탄은 하나님은 말씀하신 적이 없는 죄책감을 우리에게 더하고 그 죄책감은 우상 숭배를 통해 이길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3. 자연 재해

로마서 8:20-22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앞에서 자신의 죄와 타인의 죄가 개인의 삶에 제한되어 있다면, 자연 재해는 우리 인류의 죄가 역사적으로 누적된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아 시대, 인류의 죄을 벌하시기 위해서, 천지창조 때에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눠 두셨던 물 중에서 궁창 위의 물을 지상으로 모두 쏟으셨습니다. 따라서 궁창 위에 물이 있었을 때 누렸던 자연의 보호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인류의 수명이 급격히 짧아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잘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고 필요 이상으로 개발했습니다. 자연 재해의 규모는 커져가고 더 불규칙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연 재해 앞에 악인이든 의인이든 고난을 당합니다.



4. 사탄의 시험

의인에 대한 사탄의 시험을 하나님은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욥일 것입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그냥 읽기에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자신의 목숨 외에는 모든 것을 잃었었지만, 욥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욥을 시험하고 싶었던 사탄의 의지를 하나님이 잠깐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1. 사탄이 유혹을 할 때는 정말 달콤해 보이는 것들로 다가오지만 상황만 허락된다면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파멸시키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탄을 대상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2. 욥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괴로워했던 친구들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지만, 그 이후의 평가에 대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책망을 받습니다. 바로 영적인 문제를 세상의 관점으로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되면 하나님의 관계 즉 영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세상에서 잘 안 되면 영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죄책감을 주는 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끝임없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비교하고 경쟁하게 해서 영적인 부분까지도 세상의 물질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 바로 사탄이 가장 즐기는 전략입니다.

3. 하나님은 고통과 고난을 초월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의 끝은 죽음일 것이고 하나님은 독생자를 예수님을 통해서 그 죽음까지도 극복하시고 승리하셨기에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더 이상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 자신이 또는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 또는 고난의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 원인을 아십니다. 오히려 우리는 고통과 고난이 있을 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용서를 구할 부분이 있다면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고통과 고난이 지속된다고 해서 계속 죄책감 가운데 살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완벽하고 완전합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용서를 믿고 고난과 환란 가운데에서도 평안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번째,

사탄은 고통을 어떻게 이용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공격하는가?

갈라디아서 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주술(φαρμακεία)로 해석된 단어의 원어는 놀랍게도 현재 우리가 쓰는 약국, 약학(pharmacy)에 해당하는 단어의 어원입니다. “파마케이아”라는 이 단어에서 마법사, 주술사, 점쟁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고 지금은 약사라는 단어까지 이어졌는데요. 단순한 의미만을 보자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먹이다”를 뜻합니다. 사탄은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거짓 약속을 합니다. 혹시 보이시는가요?  앞에서 보셨던 고통/고난과 방금 보신 주술과의 연결고리를요? 사탄은 사람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우리 인간은 비록 우리 죄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었지만 그 고통을 달게 받기 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그 고통을 적게 받기를 원하고 더 나아가 고통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아주 큰 대가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사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거짓말을 합니다. ‘나, 사탄에게 물질을 더 바치면, 앞으로 닥칠 고난을 받지 않게 해 줄게. 나에게 더 큰 제물을 바치면, 앞으로 일어날 불행한 일을 미리 알려줄게.’ 사탄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거짓 약속을 내세우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간과 공간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마치 자기 것인양 거짓 약속을 하고 “더 많이 바치면 더 많이 줄게”라는 거짓 장담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갈라디아서에 이와 같은 죄에 대해 경계하라고 기록해 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번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고통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 환난과 고난 중에도 충성하라

요한계시록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2. 타인의 고난으로 영적 상태를 판단하지 말라

요 12:47-48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3. 내 이웃을 위로하라.

이사야 40:1-5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결론

고통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할 부정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고통과 고난은 우리가 죄인임을 돌아보게 하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즉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그 큰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주위의 이웃들이 고통에 대한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지 않도록 그들을 위로하고 우리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기회로 주셨습니다.



혹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이 계신다면 하루 빨리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도 주님이 사랑으로 주위에 고난 받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고 고통에 대한 진리를 통해 그들을 주께로 인도하시는 한 주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