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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시 92:12~15 2020-01-19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성장을 위한 음식이 중요하다면 자라야 될 환경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종자일지라도 환경이 맞지 않으면 자라지 못한다. 사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하늘의 성도가 이 세상 속에 살면서 성장하는 것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옮겨진 삶의 장소에 대해서 확신을 주고 계시다. V13 “주의 집 안에, 우리 하나님의 집 뜰 안에 서 있는 사람들아,”(시135:2 표준) 라고 같은 내용으로 부르고 계시다.

우리는 세상에 몸담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의 집에 옮겨진 사람들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우리의 본래 종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음에도 범죄하여 마귀의 수하에서 죄의 종이요 어두움의 종노릇하던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값주고 사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완전히 종자부터 새롭게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이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3:3)

이런 이유에서 우리의 생명의 환경이 새롭게 된 것을 늘 의식해야만 하고 그 도구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그리고 이것을 계속 환기하기 위하여 주님의 날마다 희생을 기념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과거 세상의 일반적인 사람으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능력의 자녀로 살 것인가가 오늘 우리 각자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다른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다.

OT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이미 예언한 바 있다.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사60:21)



Ⅰ. 하나님의 백성은 번성하고 성장한다.(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성경의 가장 분명한 약속이 죄의 노예에서 자유를 얻은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번성하고 자라리라는 확신이다. 이것은 물론 한 순간을 의미하지 않고 한 인생과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는 의인이 아닌; 악인이 성공하는 것 같고 힘이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신앙의 세대 전체를 두고 판단해 볼 때 그렇지 않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시편73에서는 악인들의 형통을 보는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4)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나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고(5)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고(7) 교만할 뿐만 아니라(6~9)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12)기 때문에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다(13)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다(16)고 탄식하다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17)라고 고백하고 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그런 이유에서 두번씩이나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잠24:1, 19)는 경계를 주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 본분에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라고 증거하고 있다. 신앙하는 가문에 비록 어느 세대는 병들어 일찍 죽기도 하지만 그것이 씨앗이 되어서 오히려 그 다음 세대는 더 융성하는 것이 전체적인 그림에서 하나님의 역사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부분적인 것을 보지 말고 큰 그림을 보자” 라든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보자” 라고 격려하게 되는 것이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 두 나무의 특징은 하늘을 향하여 곧게 큰다는 것과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하기도 하고 열매(대추야자)는 달아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건강을 주는 식물로 무더운 여름에는 그늘로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 또한 하나님의 백성된 의인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백향목]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나이를 세지 않고 백년단위 즉, 세기를 샌다고 한다. 이러한 상징들은 영원속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의 피로 말미암아 의인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데 적절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연륜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영원을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나 자람도 육신의 단계에서 비교될 수 없는 영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지난 주에도 인용한 바 있지만 영혼의 양식인 말씀은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는 것도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Ⅱ. 그것은 주님의 집에 심겨졌기 때문이다.(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2절의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한 것과 같이 여기서도 반복적이다.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적절한 환경으로 바꼈기 때문이다.

건강한 식물이 좋은 열매를 맺고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아이를 낳는다. 서로 성숙한 관계 속에서 자라가게 되는 것이 교회이다. 여기에 대한 경계나 교훈이 많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1~22)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5:13b)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3:11, 4:7, 12; 요이1:5)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

교회 속에서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답게 먼저 사랑하라이지 ‘사랑을 받으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언제나 “사랑하라, 뜨겁게 사랑하라”고 사랑의 사도인 요한을 통해서 권고하고 있고 사랑안에서의 성장은 가장 힘이 있다. 오늘 나의 사랑을 인하여 다른 사람의 믿음이 자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장을 위하여 여러 당부들을 우리 서로에게 주고 있다.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5:26)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4: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21)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2:18)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빌4:14)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8)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살전5:11)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히13:3)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약5:9f)

주님의 교회는 세상에 있지만 특별한 기관이다. 세상에서 특별히 불러내고 하나님의 보살피심과 통치를 받는 하늘 나라의 대사관이다. ‘기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장소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어떤 장소로 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13) 선언하고 있는 것 처럼 삶의 자리가 영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며 번성할 수 밖에 없고 앞절에서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12) 말한 이유와 성장의 결과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번성하며, 성장하리로다”하였던 말씀을 “번성하리로다”로 표현하는데 성장 즉, 자람과 번성은 생명의 자연적인 모습이면서 결과이다.

또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13)라는 표현은 자랄 수밖에 없는 이유와 번성의 장소를 분명히 가르키고 있다고 본다. 주님의 희생으로 탄생한 교회는 처음 예루살렘에 삼천(2:41)으로 시작하였다.

다시 오천(4:4) 남녀의 큰 무리(5:14)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6:7) 라고 하여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마침내 주님의 예언대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이곳 부산에까지 퍼졌다.

물론 어떤 것이든지 초기의 성장과 같은 자라남이 계속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주시는 생명은 처음의 약속부터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창1:28f, 9:1, 7) 선포하신 말씀은 이루어져갈 언약이다.

그럼에도 의인으로 인정되는 이유를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라고 말씀하셨다면 자람의 범위를 “…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완벽한 비유가 될 수는 없지만 요즘 겨울철이 딸기철이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분명히 딸기는 자연적으로 자란다면 늦은 봄부터 여름에 맛있게 자라고 열리는데 미세먼지도 많고 온도도 불규칙한 자연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 겨울에 맛있는 딸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은 비닐하우스라는 특별한 시설을 통해서 가능함을 보는 것에 견줄 수 있다.

신앙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자라고 번성할 수 있는 것은 이 죄많은 세상 속에 교회라는 특별한 도구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고 ‘완벽한 비유가 될 수 없다.’고 표현한 이유는 비닐하우스는 유형적이고 장소적이기 때문에 어쩌면 비닐하우스에 또다른 재해가 발생하면 키우던 농장물은 죽어버리는 경우까지도 있지만, 우리 주님의 의인 즉, 주님의 백성들의 성장의 환경은 유형적인 환경이 아니라 언약이라는 무형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13)라는 성장과 번성의 약속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각 지체들이 서로, 피차, 함께 살아있는 하나님의 뜰안에 있는 역할을 감당함으로 서로의 성장의 환경을 스스로 감당하고 만들어 간다는 의미를 생각해야만 한다.



Ⅲ. 결실이 끝이 없고 주님의 의를 선포하게 된다.(14~15)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하나님 나라에서 의인들의 성장은 육신의 번성과 같이 젊을 때에 끝나지 않고 평생과 영원 속에 지속될 것을 v14에서 본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의 생물의 성장과 다름을 나타내고 있다.

비슷한 표현을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7~8)는 기록이다.

이 말씀의 앞부분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이 사람들에 의해서 어겨지는 유다의 불신과 범죄를 지적하는 내용이 예레미야17:1~6에 기록된 후에 그와 반대의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에게 있을 성장과 번성의 약속을 증거하는 것으로 이 약속이 이루어져서 사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생명의 존재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14) 신앙의 성장과 번성은 사람의 육신적 젊음에 있지 않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바른 신앙의 성장은 외형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젊을 때만 있고 늙으면 그치는 것이 아님을 하나님은 증거하신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앞에서 종려나무와 백향목을 예로 든바 있지만 사실 이런 내용은 감람나무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시52:8) “여호와께서는 그의 이름을 일컬어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렘11:16)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호14:6)

감람나무의 특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뭄에도 잘 겨디고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로 세월이 가고 가지가 꺾여도 다시 새움이 나서 뿌리를 캐버리지 않는 한은 생산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15년 이상 자라야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도 특징으로 그만큼 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한다고 하는 데서 역시 한 그리스도인을 키우는 것에 비유될 수 있는 부정적인 특징도 없지 않다.

“늙어도 …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이러한 비유는 역시 요즘 말하는 진정한 동안(童顔)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육신의 겉사람은 쇠퇴할 수도 있지만 영혼의 속사람은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할 것이라는 표현을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하였는데 이것이야 말로 점점 성장하고 번성하는 영혼의 사람만이 가능한 모습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자람과 번성이 흔들림없이 지속됨과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께도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음을 마지막 절은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15)

이러한 약속을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진실하심이 반석처럼 불변하시고 그러한 사랑의 영원성이 그것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주님의 백성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라는 고백이다.

신앙 성숙의 분위기는 어떤 한사람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인 우리 서로, 피차, 함께 만들어 간다는 사실에 도전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천국의 지배아래 즉, 성령과 말씀의 지배아래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과거처럼 세상의 지배아래 있느냐에 따라 영적인 성장과 후퇴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갈4:8~9)

여전히 과거의 세상에 속한 인생으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 것인가에 따라 영적인 성장과 성장의 분위기는 만들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