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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8:39~47 2020-06-0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생명과 영생의 영양제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소화해야만 한다. 바울의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는 말씀은 참으로 진리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들이 살 수 있는 생명의 교훈을 주시는데도 그것이 들리지 않고 소화도 되고 있지 않음을 보게 된다. 주님은 저들의 그러한 반응에 대하여 그들의 옳지 못한 자세를 오늘 본문에서 세 번씩이나 분명히 지적하신다.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40f)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43b)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47b)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장에서 그들이 말했던 대로 헬라인들의 흩어진 자들에게(7:35)나 다른 어떤 이방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생명의 진리를 증거하고 계시는데 마치 벽에다 말씀하시는 것처럼 반사되어 튀어나올 뿐임을 보게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보는 대로는 출신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다. 저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진 메시야를 환영하고 기뻐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그렇지 못하다. 답답하신 주님께서 이를 안타까워하신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42b)

대신에 저들이 저주하고 죽이려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되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저들은 자기 변명하기에 바쁘다. 하나님께 로부터 온 사람을 거절하고 죽이려고 시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반대편인 어둠에 숨어서 자신을 속이고 죽이려 하는 마귀의 시도는 처음 사람 아담 때부터 있어왔고 그 첫 아담의 자자손손(子子孫孫)들을 속여왔기 때문에 그 죽음의 고리를 끊고 사람들을 살려주러 오신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앞에도 계속하고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44b)

분명히 하나님의 보내시심을 받고 하나님께 로부터 오셨는데 그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저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계속 해대는 것은 분명히 코드(code)가 맞지 않아서 임이 분명한데도 저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우겨 대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분명히 말과 사실이 다른 것인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소통이 안되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고 신앙 한다는 사람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나중 째림의 때 이런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데서 경각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마태복음 7:15~23 예수께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표현하는 내용이 오늘의 유대인들과 대화 내용과 같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그러나 이것은 오늘 내용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다. 결국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 같이 하나님을 대하다가는 마지막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런 모습이 되고 말 것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주님께서 말세를 예언하시면서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선언하시는 내용을 보면 딱 이런 모습이다.(25:41~46) 바울의 교만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는 경계도 같은 교훈이다. 결국 말과 삶이 다르지 않은 하나된 삶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됨과 아브라함의 자녀됨을 나타내는 것이다.



Ⅰ.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동, (39~41)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이 첫 부분에서는 유대인들의 거짓된 답변으로 시작하고 거짓말로 끝맺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거짓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계신다.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39f)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41b) 저들의 말을 빌리면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분명하다.’ 라고 자신하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막론하고 믿음의 사람들이면 누구나 아브라함의 후손됨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존경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세는 쉽게 본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예수님과 대화하고 있는 유대인들조차 주님께서 지적하시는 사실에 대해서 계속해서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항의하지만 예수께서 보시는 것으로는 그렇지 못함을 보게 된다.

지난 시간에 봤던 대로 예수께서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38)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39f) 주님의 말씀하신 것에 대한 답변이라면 이 말은 자신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말하고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창세기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을 맺으시고 다시 15장에서 언약을 확인하시고 17장에서는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당부하신 후에 할례의 언약과 함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꿔 주신다. 21장에 이삭을 낳고 22장에서 어렵게 받은 독자를 하나님께서 번제로 바칠 것을 명령하신다.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확인해 왔던 아브라함은 드디어 그대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되고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고 인정하신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도 처음부터 완벽한 믿음의 소유자는 아니었었고 그의 삶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이 되었을 때야 그의 믿음이 인정받고 있음을 야고보도 증거하고 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2:21~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때인 아브람 때가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순종할 때 즉,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이라도 하나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삶이 되었던 때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따른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39b) 이라 말씀하시고 오히려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40f) 라고 저들의 말과 행동이 아브라함의 후손 답지 않음을 책망하고 계신다.

연이어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40b)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순종했던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주어지는 말씀을 순종해야 당연하지 않느냐고 책망하신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면서 그랬는가를 지적하신다.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41f) 여기서부터 그들의 진정한 출처를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데 v44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지적하시는 것이다. 물론 저들은 이 말씀도 거절하는 표현이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41b)라고 항의한다.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말이 아니라 행위와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보이는 믿음이 될 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게 될 것이다.



Ⅱ. 거짓의 아비에게서 난 자들, (42~44)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여기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유대인들의 사실 된 모습을 지적하심을 본다. 문제는 참으로 아브라함의 자녀였다면 이런 지적을 받을 때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회개한 다윗과 같이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삼하12:13f) 같은 자세가 되어야 하는 데 이들은 마치 호세아 선지자의 표현처럼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호11:2f)는 반대 보습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42f) 같은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한 핏줄로 난 형제를 미워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로 저들에게 호소하신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42b) 나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왔고 오고 싶은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왔다. 그럼으로 저들 앞에서 진리를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43) 이런 정도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마치 다른 나라 말을 듣는 것 같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천국의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에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9, 43)거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막4:9; 눅8:8, 14:35) 귀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하늘로부터 거듭난 [들을 귀]가 있어야함을 말씀하시고 또 다른 표현으로는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6)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눅10:23)라고 칭찬하신 바 있다.

저들이 듣기는 거북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를 말씀하신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44f) 즉, 아버지를 닮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그의 성품을 따를 것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대항하는 것은 저들의 근본 성품이 하나님이 아닌 마귀의 성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행하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씀이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44b) 이제 마지막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인 진리를 말씀하고 있는 데도 믿지 않는다고 지적하시지만 마귀의 존재이유와 성품을 가장 분명히 말씀하신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 달리 말하면 시작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을 죽이려고 이 역사에 등장했다. 마귀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을 최대한 활용해서 사람을 죽이는데 간교한 지혜를 다 썼다.

하나님의 성품과 목적은 죽은 사람이라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시는 것이지만(요3:16; 딤전2:4) 마귀, 사탄, 귀신은 생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여 한 사람이라도 죽이고 멸망으로 이끄는 것이 이 어두움의 무리들의 존재 이유이다. 그런 이유에서 요한 사도는 마귀들이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모든 것을 밝혀서 해결하시려는 하나님과 다르게 철저하게 속이고 위장하는 진리의 방해자로 반대자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을 철저하게 속이고 자신들의 아래로 이끌어 자신들을 섬기게 하려는 간교한 술수를 그만 두지 못하고 있다.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마귀는 진리를 갖지 못하고 철저하게 거짓을 사용하는 것은 그들의 가진 것이 거짓 뿐이기 때문이고 그런 이유에서도 하나님은 마귀의 성품인 거짓을 싫어 하시는 것은 어쩌면 진리의 근본이신 하나님께는 당연한 행동이시다.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 표현이야 말로 마귀를 가장 적절히 묘사하는 것이다. 한번 어쩌다가 거짓말을 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계속해서 상투적으로 거짓을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거짓말쟁이] 라고 표현한다. 또 당연히 [거짓의 아비]는 거짓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와 마귀로부터 난 자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이해를 할 수 있다. 오늘 나에게는 어느 것이 더 쉽고 자연스러운가를 점검함으로 보다 합당한 천국백성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Ⅲ. 진리를 말하는데 듣지 못한다. (45~47)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진리를 증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저들이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유를 증거하신다. 바른 것, 옳은 것을 말하고 증거하면 환영하고 박수 치며 즐거워할 일임에도 저들은 듣기는 커녕 오히려 대적하고 반대하는 것은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저들의 출처가 다르기 때문임을 확인하신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45)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이해가 된다. ‘내가 거짓을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실 수조차 없으신 분이시지만 진리를 말씀하시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진리가 통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어두움이고 막힌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46f) 실제로 저들은 어떤 비슷한 허물이라도 찾을 수만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음에도 주님은 자신의 속성상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고후5:21)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책잡을 수 있는 허물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저들의 마음에 비수(칼)를 꽂는 말씀이셨다.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46b) 저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면 진리를 받아들이며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계속해서 진리를 말씀하시고 계시는 주님을 믿지못하는 것은 진리의 추종자나 순종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다시 한번 귀신들렸다고 몰아붙이지만 이제 주님께서는 결정적인 말씀을 하시고 만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47f) 너무나 평범한 표현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순종할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이든지 이 말씀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저들에게는 없었을 것이다.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47b) 이 진리는 그 때도 지금도 또 영원한 때에도 진리일 수밖에 없다. 분명히 바른 진리를 들으면서도 거절하는 것은 자신이 진리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참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면 말 뿐만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올바른 반응과 삶과 행동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주님으로부터 칭찬 듣는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진리를 듣고 깨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관계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진리 아닌 거짓편에 선다면 마귀의 속임수에 놀아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분 좋게 듣고 은혜였다고 끝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 때문이다. 언제나 말씀 속에서 내가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희생을 사실적으로 누리고 있는가 하는 점검이 필요하다.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고 순종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