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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12:44~50 2020-10-25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지난 주의 말씀 중 한곳을 정리하고 오늘 말씀으로 가야할 것 같다. v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는 말씀을 반어법(反語法)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마태는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비교해 봤으면 한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13:15)

나사로를 살려주신 은혜를 감사하여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는 영광을 받으시면서도 주님께서는 그것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을 것에 대한 것이라고 살아 계시는 자신에게 미리 죽은 사람에게 바를 향유를 바른 것이라 해설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시체에 염하는 것을 살아있는 몸으로 받으시는 독특한 상황으로 이해하셨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도 호산나를 외치는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셨지만 역시 자신이 들려야 하리라는 선언을 하시지만 여전히 불신을 받으셨다.

오늘 말씀은 어쩌면 자신이 구속(救贖)의 역사를 이루시고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가 다시 오실 때에 있게 될 심판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꾸준히 자신을 불신하는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심판의 때에도 자신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순종하는 것이며 빛으로 오신이유가 어두움에 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 말씀하신다.

이 12장을 마무리하는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한 말이 마지막 날 죄를 심판할 것이며 그 이유는 모든 말씀들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주신 말씀들이기 때문이며 그런 이유에서 자신의 말을 어기는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라 말씀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이 영생이라고 까지 말씀하신다.

이러한 말씀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다르지 않음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앞에서도 분명히 이 사실을 증거하신 바 있다.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요5:23)

오늘 우리에게 혼란은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각각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최선의 섬김을 드린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다.



Ⅰ.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44~45)

이 말씀은 간단하면서도 대단히 중요한 표현이다. “나를 믿는 자는→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 “나를 보는 자→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라는 공식이 되는데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5:18)

마태복음9:1~8에 걸을 수 없어서 4사람이 메고 온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있었던 유명한 일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막2:1~12; 눅5:17~26) 예수께서 이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자 서기관들이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유대인들의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들의 이런 생각을 이미 읽으신 예수께서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마9:5; 막2:9; 눅5:23) 되물으신다.

그러나 연이어 예수께서 “그러나 인자가 땅(세상-마태)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신 후에 그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고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9:7~8)고 기록되고 마가나 누가도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요한복음도 그러한 표현을 공관복음보다 더 자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심을 듣게 된다.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요8:19)

특히 14:7~11 이러한 사실을 도마와 빌립의 대화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고 계심을 본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7도마)”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 말씀하신다.

그런 후에 다시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14:10~11) 당부하신다.

이 말씀에 가서 다시 다루게 되겠지만 이런 내용들은 오늘 첫 부분인 v44~45과 거의 다르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분명 다르지 않으시다. 다만 육신으로 이런 신비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분명히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Ⅱ.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46~47)

이미 앞에서도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하셨고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9:5) 선포하신 바 있다.

자신이 빛으로 이 어둠의 세상에 오셨지만 그 목적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어두움에 살게 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46) 그럼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의 어두움에 묻혀 사는 것은 주님의 오심을 헛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다.

분명히 어두움의 세상에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시려고 구별해 주셨는데(벧전2:9) 여전히 어두움으로 숨으려 하는 것은 빛으로 오시고 빛으로 불러 내셔서 빛의 백성으로 살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이유 때문에 바울을 통하여 권고하시는 것이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6:17) 당부하시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왜, “빛의 자녀로 행하라”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하실까? 아무래도 어두움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먼저 흉내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처음교육은 모방이다. - 심리학)에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하심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랐던 제자들의 삶을 본 삼을 것을 당부하시는 표현이다.

여기에 붙여지는 표현들이 이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5:9~11)

그런 다음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47)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은 절대로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임을 다시 증거하는 것이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47f)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은 죄인 된 사람들을 살리려 오셨지 결코 심판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구원을 위해서 보내신 구세주를 거절하는 것은 이미 심판을 받아 버린 모습이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삭개오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 죄인들과 함께 먹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하셨는데 “For the Son of Man has come to save that which was lost.”(마18:11우리성경 난외 주 처리) 잃어버린(απολωλός, 죽다, 멸망하다) 자란 형벌 받아 영원히 정죄 된 사람들을 의미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저주받은 생명들을 영광으로 이끌기 위해서 자신이 저주를 받으러 우리와 꼭 같은 이 세상의 사람으로 오신 목적이다.

그러므로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47b)는 하반절의 말씀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망하고 정죄하기 위해서 보내신 것이 아님을 앞에서도 말씀하신 바 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그러므로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세례로 거듭 났다면 이미 주님으로 통한 은혜의 역사에 참여한 자들이 되었음에 더 이상 잃어지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런 이유에서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4)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함에도 범죄한 세상과 어두움을 따르는 사람들의 심판은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그 정해진 뜻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와 삶은 분명히 심판이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안다면 그런 사람들은 분명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자신들이 하늘을 향한 마음과 눈과 귀가 열려 고침을 받을까 염려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은 그들이 심판 당하는 것을 절대로 기뻐하지 않으심을 헤아린다면 얼마든지 감사하고 찬양할 이유가 된다.

그럼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의 주님으로만 보고 비판하고 투정하는 사람들이 가련한 존재들이다. 그들의 당연히 저주받은 운명을 자신이 저주스럽고 비참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면서 구원하려 하심을 믿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감사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Ⅲ.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대로 행하심(48~50)

이 12장을 닫으면서 다시한번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주신 말씀이고 그런 이유에서 주님께서 심판을 하지 않으실 지라도 심판은 당연한 것이며 자신에게 주신 말씀이 또한 영생이요 생명이라고 확인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은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심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지 않으셨다고 앞에서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불신의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수순(手順)이라는 사실도 계속 증거하신다. 비록 주님자신의 의도가 아닐지라도 심판은 필연적이라는 안타까움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48) 여기서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란 당연히 불신의 사람들을 거론하시는 것이고 그들을 심판할 규범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것은 자신을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하신다.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여기서 “내가 한 그 말”이 “심판할 이”로 인격화 되어 선언된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4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만큼 철저하심을 고백하시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계시는 말씀 한마디조차도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49)라고 예수께서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신 것이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가장 쉽고 흔한 것이 [말]이라고 할 때 주님께서는 말 한마디도 자의대로 쉽게 하지 않으시는 철저한 순종을 고백하신다.

이래서 역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믿음의 모범이심을 본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상대의 입장이나 형편에 관계없이 쉽게 내뱉고 마는데 우리 주님께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임을 배운다.

우리가 이만큼 순종이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세상사람과 다를 것이고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명령을 충분히 감당할 것이며 성령께서도 기쁘시게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이나 일꾼과 함께 하실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50) 이제는 왜 그렇게 철저한가의 고백을 다시 주신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50f)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명령[ἐντολή, 규정, 계명, 계율]”이면 무엇이든지 영생을 결과한다는 중요한 도전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50b)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르시는 것은 자신의 의지나 감정을 섞지 않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라는 증거이다. 요즘 우리의 이성적인 생각이 신앙에 섞이고 감정이 이입되고 하고싶은 자신들의 의지가 더 앞서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이다.

어쩌면 이스라엘 첫번째 왕이었던 사울은 이런 입장에서도 탈락되었다고 보여지고 하나님께 충실한 일꾼들은 시대와 형편에 관계없이 자신의 처지에 관계없이 하나님 아버지의 주시는 명령만을 증거하고 실천하는 종들에 의해 진리는 계승되어 왔고 마지막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지자 에스겔만 해도 그런 예를 볼 수 있다.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겔24:16~17)는 명령을 받았다.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18)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어도 슬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삶이 그대로 예언이 되는 것을 감당해야만 했다. 예레미야를 비롯해서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삶 전체가 주님처럼 예언이 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은 모든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으므로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역시 바뀌지 않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고 이것 역시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차이의 결과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아들 앞에 설 때에는 좀더 분명한 결과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부터 절대자를 [하느님]이라고 불렀고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인지는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막연한 존재였던 그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게 됐고 그리고 바르게 자~ㄹ 섬기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운 심판주라고 만 알고 있지만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보다는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고 그의 백성들을 어두움으로부터 이끌어 빛으로 인도해 주실 뿐이시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는 아닐지라도 하나님을 순종하도록 그분의 말씀을 주셔서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결국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7:28m)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8:42b) 말씀들처럼 모든 명령이 곧 영생이신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오신 분이다.

마지막의 빛과 어두움의 일을 심판하시는 일도 있겠지만 또 다시 선언하시는 것은 세상을 정죄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생명을 얻게 하려고 보내심이 분명하다. 이 약속과 은혜를 주님처럼 확신하여 풍성한 생명을 허락하신 대로 넘치도록 누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