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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골 1:3~8 2023-01-22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1세기 당시의 편지가 안부와 감사와 축복이 첫 부분에 오는 것은 일반적인 형태였을지라도 바울의 신앙적 안부는 그 이상이었다고 여겨진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하면서도 언제나 비록 문제가 있는 교회였을지라도 감사의 조건을 찾고 더불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형식 또한 바울의 서신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비록 자신이 직접 세운 교회는 아니었지만 자신과 일행들의 안부를 전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평강을 축복하며 구원의 방주인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사는 교회의 지체들과 얼굴로는 직접 대면한바 없지만 같은 동역자요 설립자인 에바브라를 비롯해서 믿음이 가는 형제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축복한 것이 지난 시간의 내용이었다.



Ⅰ. 믿음과 사랑을 들음에 감사(3~4)

왜, 바울이 바로 위에 있는 도시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거치면서도 골로새를 방문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역시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로마 교회에 써 보낸 편지를 보더라도 감사거리를 찾는 것이 먼저였음을 본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1:8)

또 언제나 편지하려는 교회의 기도의 제목을 찾아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역시 바울 신앙의 일상임을 여러 서신들에서 보는 바이다.

이러한 바울다운 표현이 오늘의 첫 절의 내용이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3f)

서로 기도로 교통하는 것은 그 대상이 어떤 사람이든지 귀하고 감사할 조건이다. 하나님 아버지께 주어진 상황과 형편을 함께 아뢰고 특히 나타난 문제들을 함께 기도로 나누는 것은 교회들의 더할 데 없는 힘이요 결속이라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를 할 때마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성숙한 상태라면 그 기도는 더욱 힘이 있고 은혜로 응답될 것이다. 또 기도할 때마다 감사로 생각나는 사람이나 교회라면 구하면서도 얼마나 감격이 될까!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3b) 우리의 기도는 새해 첫날에 떠오르는 태양이나 가장 밝다는 보름달을 보고 또는 밝은 별을 보고 하는 막연한 대상과는 다르다. 심지어는 어떤 조형물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소원을 적은 태그(tag, 꼬리표)를 붙이는 것과는 다르다.

창조주 이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자기의 가장 귀한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사랑의 아버지와 영광의 보좌를 기꺼이 버리시고 그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모진 형벌을 우리를 위해 기쁘게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거친 죄악의 세상 속에 사는 성도들에게 오셔서 함께 임마누엘을 누리게 하시는 성령님께 기도하고 감사한다고 하는 자긍심과 확신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표현이야 말로 이 모든 구원과 사랑의 은혜를 입은 우리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의 감사의 대상이요, 기도의 대상이며 찬양의 대상이다.

신앙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깝고 친근한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지만 그를 통해서 함께 자녀가 된 하나님 아버지는 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찬양을 받으시며 은혜를 쉼없이 베푸시는 우리 모든 하늘 백성의 아버지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15:16, 16:23~24, 26) 약속하신 것처럼 기도의 말미에서만 아니라 기도의 시작부터 이런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말씀으로 구하는 것도 약속에 합당한 기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4) 신앙의 세 기둥이라고 흔히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세가지 요소(要素)로 위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옆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성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장래에 대한 소망을 꼽는다.

마치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1:3) 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세 기둥이 튼튼해야 진리에 선 신앙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다. 비록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골로새 교회 역시 바울로부터 이런 칭찬을 듣고 있다. 여기에 믿음과 사랑이 나오고 다음 절에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5f) 거론하고 있는데 이것은 좀 더 넓혀 다음 과제에서 다루도록 하자.

요한 사도는 이런 틀이 갖춰진 신앙에 있는 성도들을 역시 칭찬함을 듣는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1:4)

그러나 좀더 확대해 보면 믿음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인데 그리스도 밖에도 믿음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이 더러 있지만 그것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과 우리의 통로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믿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정받는 믿음이다.

또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은 우리가 당연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만물의 대리관리자로 임명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땅에서의 믿음의 실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 사도는 이 사람에 대한 사랑도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10)고 당부한다.

누구보다도 우리가 믿음을 통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같은 믿음 안에 있는 성도들이요 또 국적이 다르던 계급이 다르던 관계없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이 땅에서의 믿음의 구체적인 실천이다.

유명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요한 사도의 확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는 사랑의 혜택을 먼저 받은 우리가 그 사랑이 넓게 유효하도록 세상의 아직도 미움의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전도이다.

그리고 위로 하나님(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한 믿음이 튼튼하고 옆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더욱 커지면 하나님께 영광도 영광이겠지만 당연히 하늘에 쌓아 둔 소망도 커지게 되어 있다. 당연히 그렇지 못할 때는 반대의 현상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떤 조건이나 형편에서든지 감사의 이유를 먼저 찾고 기도할 제목들을 나눔으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며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께 튼튼한 믿음과 사람을 사랑하는 희생과 헌신이 커져서 세월이 갈수록 하늘을 향한 소망도 더욱 많이 쌓여가는 은혜의 삶이 되시기를 …



Ⅱ. 하늘의 소망과 열매 맺음(5~6)

앞의 v4에 연이은 자연스러운 신앙적 확신을 본다. 믿음과 사랑이 충만할 때 소망이 충만하게 쌓인다는 논리를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사라지지 않은 소망은 과연 어디에 쌓아야 하며 그 소망의 근거를 좀더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5) 이 말씀이 바로 소망을 저축해야 할 장소와 소망의 또다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데서 중요한 교훈이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5f)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졌다는 나는 나를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어디에다 쌓고 있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소망은 너희를 위하여 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살아야 할 이유 즉, 소망을 잃어버려서 죽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심지어 유명세를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조차 삶을 쉽게 포기하는 것은 진정한 소망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들이다.

일찍이 우리 주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계실 때 산상보훈에서 이미 이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신 바 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마6:19) 한 마디로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이 세상에 쌓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유는 썩고 도둑질 당하여 사라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교훈이다.

이제 좀더 적극적인 당부를 주시는데 그것은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6:20) 여기서 우리의 귀중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쌓을 수 있는 곳을 제시하신다.

세상에는 귀한 것이 절대로 쌓일 수 없지만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쌓여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당부하시기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하여 귀한 우리의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도 거기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럼에도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은 다행히도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5f)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은 귀한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땅에다 쌓아 두려는 안타까움을 본다. 오늘 과연 나는 나의 보물을 어디이다 쌓고 있는지 점검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보물을 하늘에 쌓게 된 이유를 덧붙이고 있다.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5b) 그리스도인들은 전에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다. 그러므로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이 사라지지 않을 하늘에 보물을 쌓는 비결인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 우리가 세상의 홍수 같은 말소리를 들으면서도 지속적으로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당연히 이 땅에 보물을 쌓게 되는 부정적인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6)

바울은 비록 자신이 전하지 않았지만 골로새 교회에 증거된 복음의 진리가 이미 그들에게 이르렀고 그 은혜에 깨달음이 다른 곳에서처럼 열매를 맺고 계속 자라고 있음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6f)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완성하신 후에 하나님 아버지 곁으로 승천하시기전 이 복음을 천하만민에게 전할 것을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바 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b~20f)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 두 곳에서 가장 분명한 당부를 본다.

지금도 아직 복음이 이르지 않은 곳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 복음은 반드시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역사가 나타나고 은혜를 감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퍼부어 주시는 사랑도 깨닫지 못하면 절대로 사랑이 생명 되지 못하고 은혜 되지 못하는데 그것은 영적인 약속을 육적으로만 받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바울은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아무리 사랑한다 사랑한다 고백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그대로 믿지 못하면 그 사랑은 사랑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골로새 교회나 우리 교회가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6f)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6b)했는데 이 말씀을 거꾸로 나열하면 “복음이 천하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는 것처럼 너희 중에서도 그렇다.”라고 같은 의미가 된다.

복음은 생명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라고 열매맺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 결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음”에서임을 꼭 기억해야만 한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인생을 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행20:24)에 바쳤다고 고백한다.



Ⅲ. 신뢰와 사랑(7~8)

이제 바울은 이 인사말 말미에서 골로새 교회를 세운 에바브라에 대한 신뢰를 골로새 교회에 확인하고 있다. 비록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가지고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자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골로새 교회가 진정으로 배우고 따라야할 스승은 바로 에바브라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7)

바울은 에바브라를 신뢰할 것에 대해서 자신과 격을 같이 한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데는 격이 다를 수 없다. 비록 사도라고 할지라도 역시 복음을 위해 선택받은 데는 다를 것이 없으므로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이런 표현을 기쁘게 쓰고 있음을 본다.

당시로서 종이라는 신분은 주인의 재산정도로 취급되는 시대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빌1:1) 또는 주님의 이름과 직위를 바꿔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유1:1) 이라는 표현들은 대단한 겸손이고 충성심을 담고 있다.

또 신앙을 누구로부터 받았거나 배운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 여기에서 바울이 자신의 애정과 신뢰를 가득 담아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7f)라는 것은 지금 복음을 왜곡시키고 진리를 흔들려고 하는 거짓교사들과 확실히 다름을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그 디모데가 믿음을 자신과 참된 진리로부터 배운 것을 확인하여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3:14) 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진리임을 증거한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5b~16)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7b) 당연히 에바브라를 두고 그가 너희들을 위하여 헌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직한 일꾼이기 때문에 그와 다른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거짓 교사들은 믿을 수 없는 스승들임을 이 말 속에 담고 있다.

사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πιστός]이니라”(고전4:2)는 말씀과 여기 신실한[πιστός] 일꾼이요 라는 기록은 꼭 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충성은 신실함에서 나오고 신실한 사람이 충성하게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에바브라의 신실성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면 바로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데서 ‘너희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라는 확신을 주고 있고 마치 빌립보 교회라면 에바브로디도 라는 인물(빌2:25~26)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 다음 오늘 마지박 v8에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고 적고 있다. 비록 자신의 가르친 대로 신앙하지 못하고 문제가 있어서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와서도 골로새 교회의 사랑을 전해왔다는 것이다.

많은 문제들 속에 있다고 해도 진실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사랑이 바탕이 되고 있다면 그 문제들은 반드시 옳고 좋은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지도자와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도자가 에바브라처럼 믿음이 가는 사람이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바탕이 된 사랑을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최종적으로는 바른길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방향으로 해결되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를 함께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그와 반대로 지도자가 신실치 못하고 교회속의 지체들이 서로 적대적인 미움으로 대치된다면 거기에는 더 이상 기대할 만한 미래가 없다는 반대의 결과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회를 들렸다 가고 알고 있는 사람들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옆으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살아 있는 믿음이 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런 사실적인 믿음은 진리의 복음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실천함으로 하늘에 소망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신앙적인 결실이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확대되어 열매 맺고 자라는 일들이 확대되어 가야할 것이다.

과거 충성되고 신실한 일꾼이신 김관평 전도자님으로부터 배웠고 그 가르침이; 바른 진리를 사랑하며 지켜간다는 소식이 우리 나라의 교회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게도 들리도록 믿음을 도전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