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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23:1~13 2005-12-04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나가가시면서 이 세상의 종말을 증거 하신다. 이 세상에 종말이 올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바로 세상의 죄성의 확산과 신앙의 변절이라는 데서 바리새인들의 타락상을 이 23장에서 경고하시고 24장에서는 이 역사의 종말의 징조들을 열거한 후 종말 때 있어질 일들을 비유적으로 증거 하는 내용들을 25장에서 읽게 된다.

사실 우리의 시대에 이런 말씀을 본문으로 주님의 날에 증거 하는 교회는 없을 것이다.

이 23장에서는 당시의 종교의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의 옳지 못한 신앙적 삶을 책망하시는 내용으로 신앙의 삶에 있어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위선과 거짓을 통렬히 책망하심을 듣는 우리들은 이러한 삶의 경계를 받게 되는 데서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Ⅰ.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씀 하신다.(1~4)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1.위대한 인물의 자리를 탐하는 자들은 수없이 많다.(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이스라엘에 있어서 모세의 자리는 참으로 위대한 자리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자리에 합하지 못한 사람들이 문제이다. 충실한 자들은 다른 스승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아도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늘 모자라는 사람들일수록 스승의 이름을 들먹이고 자신이 누구의 계승자라는 투로 자신의 부족한 것들을 만회하려고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전1:12~13)

그러나 때로는 그들이 들먹이는 이름이 오히려 그들 때문에 오히려 존귀를 잃게 되는 일들이 자주 있다. 자랑스럽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 귀한 스승들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은 역시 영광된 이름들에 욕을 끼칠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면 역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다운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2.이들은 말과 행동이 같지 않아서 책망을 듣고 있다.(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이런 사람을 가리켜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라고 한다.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이다. 신앙에 있어 가장 경계 되는 것이 바로 이중적인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모습이 바로 이중적인 삶을 사는 위선자들이다.

뒤에 가서 주님은 이들을 향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시는데 바로 이런 이유에서 그렇게 책망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가르침은 바로 가르쳤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주님께서 직접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그렇다. 가르침부터 어그러진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시대에 옳은 것을 가르치기라도 했는데 이것도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은 가르침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별개라고 하는 데서 올바른 가르침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생명이 되는 것을 야고보도 지적하고 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2:14) 하였고 다시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

연이어 주님께서는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라고 경계하신다. 그들의 행위가 조금이라도 그들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신앙이란 바르게 깨닫고 확신한 것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저들은 자신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세의 자리만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 사도는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 …”(고후3:3f) 라고 말한다.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될 것이므로 주님의 영광에 합당한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3.이들은 사람들을 대하기를 짐승을 대하듯 하는 모습을 본다.(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이러한 비유는 당시의 나귀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모습에서 비유되었다. 감당하기 어려우리만큼 짐을 많이 지우고 자신마저 나귀에 올라앉으므로 나귀가 힘이 부쳐 감당치 못하는 상상할 수 있다.

사실 구약의 율법은 죄인으로서는 도저히 질 수 없는 짐이었고 이 율법의 항목들조차 613개 조항으로 만들어서 248개의 하라는 계명과 365개 하지 말라는 부정적 계명들은 외우기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 추님의 초청과는 너무나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본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때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를…



Ⅱ.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을 경계하신다.(5~7)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이들의 책망 받는 삶의 이유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5f)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에게 보이고자 시도하는 모든 것들이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먹혀 들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의 안과 밖을 동시에 보시는 주님 앞에 이러한 추한 모습은 숨길 수가 없었다.

제 자신이 처음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나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꼭 같은 옷을 입고 다녀볼까!” 하는 유치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가장 큰 위험성은 언제나 사람을 의식하는데 있다. 사람들은 단순하게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텅 빈 속을 가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많은 치장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신앙의 모범이신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꾸미거나 겉치레를 하지 않으셨다. 사실 그래서 ‘갈릴리 나사렛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하셨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구약성경 속에서 신명기6:8의 ‘쉐마’ 라고 하는 말씀에서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출13:9, 16) 라는 말씀에 기초하여 출애굽기 13:1~16 사이의 말씀이나 신명기 6:4~9의 말씀들을 가죽 끈에 써서 손목에 감거나 작은 가죽 상자 속에 넣어서 이마에 붙이고 다니기도 하는 “탈리트” 라는 것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런 것들을 보다 크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에는 제사장들이나 성전 봉사자들이 특별한 옷을 입고 대제사장은 더욱더 특별한 에봇 같은 것을 갖춰 입음으로써 백성들 앞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의 위엄을 나타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구속의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 하심으로써 감추어졌던 성전휘장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들어 났고 이제 더 이상 특별한 겉치레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1~2)고 당부하시면서 기도도 구제도 은밀하게 하라고 하는 당부를 주심으로써 어떤 신앙의 행위도 사람을 의식하고 행하는 것들을 경계하셨다.(3~6)

신약성경에는 어떤 경우에도 정결과 단정에 대한 당부 외에는 외형적인 의상이나 꾸밈에 대해서는 당부가 없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음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외모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려고 하는 구약적인 시도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베드로 사도도 그리스도인 된 아내들에게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3~4)고 경계하고 있고 바울 사도도 디모데전서2:9에서 같은 당부를 주고 있다.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취하는 것을 늘 최고로 생각했기 때문에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6~7)는 지적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아시면 최고라는 주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은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을 얻지만 이러한 내적이고 영적인 기쁨이 없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듣는 칭찬과 영광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러한 자들은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사람들이 알아 주는 것을 최고로 자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성경에 대표적인 사람이 하만이었다. “… 사람을 보내어 그 친구들과 그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자기의 부성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방백이나 신복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또 가로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에5:10~12) 그 잔치가 죽음을 부르는 것인 줄 모르고 어리석은 자신의 사라질 영광을 자랑하고 있다.

뱀의 특징이 화가 나거나 하면 흙에 바짝 붙어있던 머리를 쳐드는 것이 특징이다. 하나님께서 교만을 싫어 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 사탄의 특성이 교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요5:41)라고 선언하셨다. 우리 모두가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위로와 소망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서 주님처럼 사람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천국의 자유와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



Ⅲ.존귀한 칭호를 받지 말라(8~10)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이스라엘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이 몇 있는데 바로 주님께서 부정적으로 언급하신 부류의 사람들이다. “랍비, 아비, 지도자”가 그것이다. 이 칭호들을 예수께서는 다 하나님께 드려야 될 호칭임을 가르치는 것이 역시 특이하다.

[랍비, 히, 나비(nabi) – 영감 받은 사람, 선지자, 예언자(출7:1; 신13:2; 삿6:8; 왕상22:7); 헬, ㅎ랍비(hrabbi) – (존칭어로)나의 선생님] 여기서 주님의 말씀은 바로 주님 자신을 선생이라고 칭해야 한다고 들리지만 바로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스승으로 오실 “성령”을 마음에 두시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으로 이해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아비, 헬, 파테르(pater), (문자적으로, 상징적으로)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부정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이와 같이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요4:12) 또 이것을 지적하시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조상은 당연히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낳은 아버지 외에는 “하나님 아버지” 외에 이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영적인 스승은 없다.

바울은 자신이 영적으로 낳은 자식들을 향하여 이 말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지만(고전 4:15; 딤전1:2) 전혀 그런 관계가 아닌 “교황(Pope)”이나 “신부(神父-Godfather)는 이런 입장에서 옳지 못한 사용이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앞뒤에서 ‘받지 말라’는 표현 대신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고 쓰여진 표현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8:6)고 일깨워 주고 있다.

[지도자, 헬, 카데게테스(kathegetes), 안내자, (상징적으로)선생, 주인] 우리의 진정한 천국의 안내자요 인도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없다.

결국 성경을 가르치고 지도한다고 할 찌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그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아 마땅한 행위라는 것이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4)고 탄식하신 바 있다.

바울 사도 또한 그러한 자신의 동족 지도자들을 향하여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롬2:19~20)라고 탄식하는 것을 본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온전하고 유일한 스승이요, 아비며 지도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 뿐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늘 바라보며 본받아야 할 지도자를 소개 하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이 땅에서 어떤 영광된 이름도 거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장차 영원한 나라에서 시들지 않는 영광을 누릴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러한 겸손의 사람으로 주님 앞에 이를 때까지 겸손 하시기를 …



Ⅳ.겸손하면 높아지는 천국의 원리를 설명하신다.(11~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제 주님의 가르침의 핵심에 왔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이러한 가르침은 주어진바 있었다. 주님의 고난 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영광의 나라에서 주님의 좌우에 앉게 해달라는 세베대의 두 아들들에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6~27)는 가르침을 주신 바 있고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 18:14b)

신앙에 있어서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뭇는다면 역시 겸손일 것이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좀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겸손을 지킬 수 있다면 천국에서는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과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이 점일 것이다. 세상은 자기가 차리고 꾸미고 선전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주님께서 높여주심을 기대하면서 잠잠히 자신을 주님의 심자가 아래 감추는 것이다.

주님께서 가장 귀한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이 원리는 지상의 교회에서부터 천상의 영원 나라에까지 변함이 없을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로 영원히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자신은 그런 그릇이 되지 못하면서 위대한 스승의 자리를 넘보는 자들이 많다. 그런 사람일수록 말과 행동이 따로 인 모습이 특징이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평안을 빼앗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신앙의 사람들이 짐짓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람을 의식하다 보면 그렇게 되기 쉽다. 내면을 감추고 외형을 지나치게 꾸미고 거룩한 척 하지만 위치나 지위가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 하시는 사람이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자의 것이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