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요 14:15~24 2006-10-16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이 약속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유월절 만찬을 드시면서 주신 약속이요 주님의 희생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시는 언약이다. 이미 이 약속은 메시야 탄생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약속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이 모든 우주와 영계의 조성자 이시오 운행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감동할 일인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왕상8:27; 대하2:6, 6:18)이라는 솔로몬의 고백처럼 이 온 우주 가운데 충만해 계신 놀라우신 하나님이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신다는 선언은 분명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약속이지만 이것이 사람의 생각이나 약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만 인류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주신 약속이기 때문에 의심할 이유가 없다.

이 약속이야말로 얼마나 우리로 하여금 자신만만하게 하는지 모른다. 이 놀라운 약속을 누리고 산다는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모습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범상한 삶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 이 약속을 확인하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의 자리를 다시 확인하고 영광과 확신과 감사를 이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께 돌리며 어떤 조건 속에서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으로 환경과 조건을 넉넉히 이겨내는 …



Ⅰ.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이다.(16~1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 약속의 대상인 너희[너희에게 주사]는 당시에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었지만 오늘날 같은 약속을 따라 사는 우리들에게 도 유효한 약속이라는 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이 말씀이 주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떠나실 바로 그 시점이라고 하는 데서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볼 때 특히 성령이 이땅에 임하실 오순절 이후의 약속이라고 하는 데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대상하는 것이 더욱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부활 후 승천하시기 이전에 주신 전도 사명의 명령과 함께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는 약속에서도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약속은 좀더 영구적인 약속으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라는 것이다. 거듭난 피조물 속에 주어진 성령은 이 세상 끝날까지 각 개인이 이 세상을 떠나든지 이 역사에 마지막이 올 때까지는 물론이고 새 예루살렘에 영원한 영광에 참여할 때까지도 함께 하시겠다고 분명한 약속을 주고 계신다.

반면에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17f) 예수께서는 이미 같은 요한복음3:3에서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셨고 성령을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의 백성들에게는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7b)고 약속하신다. 바울 사도가 이를 더욱 분명히 확인해 주고 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그러한 결과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 고아의 비극은 무엇인가? 보호자가 없다는 것이다. 에덴이후에 하나님을 등지고 떠난 사람들은 고아와 같이 보호자를 잃은 가련한 인생들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비극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난 자들은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신다. 할렐루야! 그런 이유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경우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며 주님께서 보호자로 함께 하신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바울은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3)고 확신 시켜주고 있다.



Ⅱ.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는 약속이다.(19~20)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이 세상을 떠나서 성령으로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결국 육신에 계신다면 주님을 육신으로 대하는 주변 사람들만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성령으로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시지만 이러한 약속을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들의 눈에 가시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리새인들이 종들을 보내어 잡으려는 과정에서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요한복음7:33~36, 8:21~22에서 듣게 되는데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33~34),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35~36)

8: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실 모습을 말씀하시는데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20) 하셨는데 이것은 장소적인 곳에 구애됨이 없는 약속이다.

주님께서는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에 들어갈 여호수아를 향하여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8~9)

하나님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기록된 대로 지킨다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을 하신다. 실제로 구약성경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졌음을 읽을 수 있다. 이 여호수아 이전의 창세기에서도 요셉의 가는 곳마다 함께 하셨던 주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데 이 사실을 스데반이 증거하고 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행7:9~10)

바벨론에 역시 포로로 잡혀가 있는 다니엘과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복음시대 새 언약의 귀중한 언약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당연한 약속이다.

495:1.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3.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디든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두려워 할 것도 없는 이유는 거하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믿습니까?

우상의 중심부든지 무당의 집이든지 절간이든지 진정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는 하등의 신경 쓸 것이 없는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이 있는 그곳에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기 때문에 정신의 혼란 없이 단잠을 잘 수 있고 두려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Ⅲ.그러나 조건이 있다.(15, 21, 23~24)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지금까지의 말씀은 확신과 감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무조건적으로 함께 하시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라는 사실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다. 어찌 보면 오늘 말씀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 이유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 나를 사랑하는 자니,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 내 말을 지키리니” 반대로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라는 말씀들이 이를 분명히 해 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바로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에서 나타난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에서도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2:5~6)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

또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 속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겠다고 약속하신다. “…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거짓말 하는 것이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라고 하신 말씀과도 연관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을 역으로 말씀 하시기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4) 주님의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싶습니까? 그의 말씀을 지키십시오.



Ⅳ.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순종하여 지키는 자들을 격려 하신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31:7~8)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17:24)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9)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3:12)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6)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10:35)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13:6)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에도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허탄한 마음으로 다른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에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였지만 작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빈 그물질을 했던 이유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이고 날이 새어갈 때 주님께서 오셔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요21:5~6) 기록이 이를 분명히 해 주고 있고 적어도 이것은 베드로에게 처음이 아니었다.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가 주님을 알기 전에 밤새 헛 그물질을 했지만 주님께서 오셔서 베드로의 배를 복음을 증거 하는데 잠시 사용하신 후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눅5:4~6)는 경험의 재현이었다.

아무리 입술로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말해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계명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함께 하실 수 없고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인생은 두려움과 염려와 좌절 뿐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불구덩이 일지라도, 마귀의 소굴일지라도 평안을 누리고 감격과 확신에 찬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에게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시느냐 아니냐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