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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막 1:14~20 2006-10-22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우리는 죄진 인간과 그 인간의 죄를 벗기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복음의 수용을 증거 하는 음성으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5)는 선포를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셔서 이 땅에 교회를 탄생시킨 후부터 계속 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순종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유쾌한 인생을 사는 많은 사람들도 역사 속에서 보게 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 역사를 소개하는 복음서들의 시작과 끝이 또한 이 선포로 이루어져 있음을 읽게 된다. 복음서 마다 특징이 있긴 하지만 능력의 복음을 가장 집약해서 증거 하는 이 마가복음만 해도 그렇고 다른 복음서들도 역시 다르지 않다.

이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는 마가는 그의 복음의 서두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해서 이땅에 온 세례요한을 소개한 후 곧바로 주님의 활동을 소개 하시는 데 그 내용이 바로 오늘 우리가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사실 이 말씀은 대단히 초보적이게 들리면서도 또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며 시험을 받으신 후 갈릴리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외쳤던 첫마디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고 이 복음서를 닫는 마무리에서도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는 당부로 끝내셨다.

사실 ‘이 말씀이 복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불신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면 믿음의 사람들에게 또다시 부연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라고 반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늘 복음 속에 있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주님의 첫번째의 선언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한마디로 이해한다면 주님께서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당부하셨고 거기에 가장 첫째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제자들의 모범을 이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내용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복음 속에 산다고 말하고 신앙 하는 이 말씀을 듣는 모두는 이 선언의 의미를 이해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확신과 기쁨으로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



Ⅰ.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다.(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세례요한 이후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전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통하여 살 수 있는 교훈을 수없이 주셨고 사랑하셨지만 정작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조차 하나님의 주신 그대로의 말씀보다는 인간의 입장에서 편리할 대로 바꾼 인간의 계명을 행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만족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주님께 신랄한 책망을 받고 저주까지 들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대로의 교훈이 아니면 사실 생명이 되지 못하고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의 편리와 생각을 적당히 섞은 종교는 진리를 대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복음≒인간의 변조된 복음(사탄의 복음)

그런 마지막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복음이 아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이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복음은 인간의 생각에 늘 합리적이지 않고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육신을 입고 사는 사람은 늘 육신을 기준으로 영원을 생각하고 복을 생각하기 때문이고 이것을 가장 교활하게 이용하는 것은 바로 마귀 사탄이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 수 있는 법을 주시는 대도 이것에 온 갓 것들을 뒤섞어 못쓰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철저히 자신에게 굴복시키고 경배 받으려는 마귀 사단의 간교한 역사였다.

이러한 거짓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거절 되었고 목숨을 걸어놓고 진리를 외치던 선지자들은 배척을 당했다. 언제나 죄에 익숙해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진리는 기쁘게 들리지 않았고 거절 된 것이 사실이다. 예수께서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고 증거 하셨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겔2:7)라고 당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을 증거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바로 주님께서 이 복음의 주체이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복음이 기쁘게 들려져서 이 구원의 진리를 순종하여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는 복된 모두가 …



Ⅱ.복음을 믿으라!(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누릴 수 있는 복음의 순종자의 모습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가장 큰 대가를 치르시고 이루신 복음, 사람에게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주어진 이 복음, 그럼에도 그 복음을 선물로 받아 누릴 사람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①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때, 헬, 카이로스(kairos), 기회, 정해진 때, 또는 적당한 때] [찾고, 헬, 플레오오(plero-o-), to fill up, to fulfill, complete, 꽉 채우다, 미치다, 확증하다, 성취하다, 완성하다, 만기 되다.] ⓐ어떤 일을 하기로 작정된 시간의 임박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마지막 때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바로 여기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서 그 수많은 사람들과 역사를 진행시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까지 온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이 온 인류의 역사의 화살표가 도착하는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성취의 때이다. 그래서 역사는 바로 그의 이야기인 History가 되는 것이고 그 역사를 기록한 성경이 또한 주님을 향하여 기록된 것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5:39)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천국 행 마지막 수단 즉, 막차가 되신다는 의미이다. 이 예수를 놓지면 더 이상 다른 기회가 없다는 의미에서 ‘때가 찼다’고 말씀하고 있는 의미이다.

②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순종하기 이전의 전제로 반드시 거처야 할 삶의 자세이다.

오늘 많은 신앙 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 반드시 회개를 전제하여 복음 속에 들어와야 함에도 회개를 거치지 않은 상태로 복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구원된 모습을 볼 수가 없고 거듭난 모습도 없고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은 모습을 가지고 교회당을 들락거릴 뿐이다.

그리고 회개 없이 교회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사탄이 들락 거리고 세상의 냄새를 피운다. 회개하여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에게는 마귀 사탄은 절대로 범접하지 못한다.

신앙에 있어서 참으로 귀중한 과제가 바로 이 [회개이다.] [회개하라, 헬, 메타노에오(metanoeo), to change one’s mind; 자신의 마음이나 목적을 바꾸다, 원칙과 관습을 바꾸다] 회개는 단순한 탄식도 아니며 안타까움이나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을 180˚도 전향하는 결단이다. 이 회개 없이 교회 속에 세상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 바로 AD313년 그리스도의 교회 박해가 중지되고 정부에 요직을 그리스도인들로 채우면서부터 였다.

마찬 가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회개 없이 다른 종교와 습관 그대로 복음 속에 들어와 있음으로 인해서 신앙은 부패되고 세속화 되고 있는 것이다. 정한수 떠놓고 빌던 그 소원 그대로 장소만 예배당으로 바꾸고, 삼천 배를 올리던 법당을 다만 교회당으로 바꿨을 뿐 그 삶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 냄새로 진동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 헬, 에클레시아(ekklesia), 밖으로 불러낸 자들, 즉 회개한 자들로 구성된 무리] 임에도 회개하지 못한 교인들로 인하여 성결 해야 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습을 갖지 못하고 있다.

요한 사도를 통하여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 5)

회개하지 못한 사람들은 진정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언제나 세상의 보이는 것들로 천국을 비유하고 영혼이 잘 됨보다는 오로지 육신의 잘됨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천국의 거듭난 언어 대신에 세상의 언어를 그대로 쓰고 들을 귀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

그런 이유에서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육신에 거슬리는 영적인 말에는 분노하게 된다. 하나님의 분명한 진리가 기쁘게 들리지 않는다면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귀에 하나님 말씀은 그야말로 소 귀에 경읽기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것은 설교일 뿐이고 자신의 삶에는 적용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단순히 ‘듣기 좋은 소리’ 일 분이며 자신의 견해에 맞지 않으면 ‘이단’이라는 소리를 너무 쉽게 한다.

그런 까닭에 세상이야기 할 때는 귀를 쫑긋이 세우지만 성경말씀에는 [잠]으로 응답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양식이 섭취되지 않기 때문에 믿음은 자랄 수 없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③복음을 믿으라. 복음을 믿어야 한다고 주님은 당부하시는 데 [믿으라, 헬, 피스튜오(pisteuo), 맡기다, 믿다, 신뢰하다]는 동사이다. 결코 관념적인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같은 당부를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끝내면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고 확실히 하고 있다. 믿는 것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께 온전히 자신을 의탁하여 일치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주님의 귀한 초청을 가감 없이 자신의 말씀으로 받아 천국의 영광과 소망을 넘치도록 누리는 …



Ⅲ.제자들의 모범.(16~20)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16~18)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19~20)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가장 모범적으로 순종한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주님의 초청의 말씀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주님의 부르심에 가장 구체적으로 분명히 순종한 이 제자들을 통해서 그의 복음 속에 들어올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을 제시하시기 위해서 마가는 이 제자의 선택을 복으로의 초청 바로 다음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감이 들기조차 한다.

율법과 복음이 함께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으로 이 땅에 계실 때의 제자들은 후에 영원히 함께 하실 성령을 받기까지 물론 흔들리는 모습도 복음서 말미에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성령으로 임함으로 완전한 이 복음의 증거자로서의 삶을 감당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시몬과 안드레 이 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을 받고 그의 잔뼈가 굵고 평생의 삶의 터전으로 살았던 갈릴리와 한 올 한올의 그물 코에 자신들의 손길이 미지치 않은 곳이 없을 그 그물을 뒤로 남겨두고 주님을 따르는 결단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복음을 위한 부르심의 모델이라고 하는 것이 첫째이긴 하지만 분명히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회개의 모범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까지는 적어도 다시는 그 삶의 터전을 연연하거나 뒤 돌아보지않는 모습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과 헌신을 배우게 된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5~46)는 천국의 비유처럼 거듭나서 가지게 된 하나님의 나라가 너무나 귀중해서 다시는 떠나온 세상을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나라 보다는 세상이 좋고 영광의 주님과 함께 하는 것보다는 세상의 친구들이 더 좋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20) 이들은 삶의 터전은 물론이고 아버지를 등지는 데까지 주님을 순종한다. 참으로 거듭난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면 이 세상의 혈육의 정에 얽매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눔을 더 귀중하게 여기는 데까지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허약한 사람들은 도저히 불가능한 장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세상을 등지는 진정한 용기와 결단의 사람들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고 증거하시는 것이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세상 사람 날몰라 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 찬양은 회개하고 거듭난 천국 순례자들의 노래요 고백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다 싸 짊어지고 뛰어 들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진정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믿습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아직 하나님 나라는 가까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과거에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묵인해 주셨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17:30~31)

그리고 이제 이 역사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는 방주에 타라고 최후의 통첩을 하고 있다. 이 복음이야 말로 인류의 진정한 마지막 희망이며 다른 대안이 없다. 그럼에도 이 방주인 교회에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를 하고서야 가능하다.

세상모습 그대로 어떤 것도 포기하거나 버리지 못한 그대로 복음을 믿으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다. 오늘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는 제자들처럼 천국의 귀중한 가치를 확신하고 온전히 삶을 주님께 의탁하여 십자 희생의 온전한 보혈의 은혜의 넘치도록 누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