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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딤후 4:1~4 2006-10-29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지난 시간에는 복음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신앙적인 부분을 나눴다. 반드시 세상과 죄악으로 가던 길을 돌이키고 복음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하는 안타까운 현실의 상황을 생각했었다.

오늘은 주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고 제자들에게 이 복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끼치도록 명령하신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하고 긴박한 당부의 명령과 복음으로 회개한 바울을 통해서 우리 모든 신앙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계명을 나누면서 오늘 우리가 가진 복음의 변계 시킬 수 없는 귀중성과 그것을 자신만 누리려는 독선의 모습을 경계하면서 은혜 받은 우리 각자의 사명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면 한다.

이 시대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마케팅 전략의 치밀성을 본다.[보험, 다단계, sales part 등등] 잠시 사용할 상품에 대한 확신도 그렇게 무섭다면 영원히 가치가 있는 생명의 복음에는 더욱 확신과 충성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Ⅰ.이것은 적어도 명령이다.(1) 왜 전해야 하는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바울 사도께서 이만큼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말씀하면서 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명령이다. 우리는 어떤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늘 [하나님 앞에서] 라는 전제를 달게 된다. 그만큼 중요한 과제임을 인식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을 심판하실 영원한 심판자로 이 땅에 재림하실 그리스도앞에서 당부하는 명령이요, 그 다음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힘써야 되는 기관인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두고 주는 당부라는 데 무게가 있다.

바울 사도께서 자신의 민족을 두고 안타까워 하는 가운데 오늘의 내용과 더불어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4~17)

주님 십자가의 피를 힘입어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의무 중 하나는 “너가 구원 받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증거 하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구원 받은 경험이 없으면 구원의 주님을 증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①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경험과 확신이 중요하다. 아무리 조용한 처녀라도 이성에 눈을 뜨고 남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 다소곳할 수 없게 된다. 사랑에 대한 감정은 감출 수 없고 죄진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의 감격을 제대로 한번 경험하고 나면 결코 자랑하지 않고 배겨날 강심장(强心臟)은 없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6~8)

②나 자신의 변화를 체험해야 확신을 갖고 전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전한다고 해도 자신의 변화를 보여 주는 것 보다 큰 호소력은 없다. 그러므로 가장 효과적인 전도는 자신의 변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거라사인의 지방 무덤 사이에 거처하던 군대 귀신들려 광기를 부리던 주님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막5:19~20)

③내가 가진 복음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다.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완악하고 사악한 자신을 변화시킨 복음의 능력을 체험 한 사람이라면 그 복음으로 어떤 사람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다른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방에 숨어 벌벌 떨던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비로소 변화 받은 후에 그들을 예전처럼 위협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고 증거 하는 것을 본다.

④내가 속한 교회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절대로 물량공세에 기죽어서는 안된다. 교회의 외형적인 규모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진리, 명령)을 행하는 것으로 자랑해야 한다. 죄악의 세상에서 의롭게 살려고 투쟁하면서도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시는 주님의 위로를 최고의 격려로 삶고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결코 힘겨운 계명이 아니다. 바로 자신을 변화시킨 복음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변화가 없다면 복음의 증거는 어렵고 힘겹기만 하다. 복음증거는 자신의 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변화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약속을 주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Ⅱ.말씀을 전파해야 한다.(2)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언제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부분만을 강조하고 앞뒤의 더 중요한 교훈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하십시오.-표준 새]

사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만 인류의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신 후에 복음을 증거 할 것을 가장 간곡히 당부 하셨다.(마28:19~20; 막16:15; 눅24:47~48; 행1:8 등등)

복음을 전파 하라! = 말씀을 전파하라!

구원의 능력은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에 “말씀을 전파하라!” 당부하고 계시는 것이다.

뒤에서도 언급되지만 참으로 이 시대가 말씀을 전하기 보다는 사탕발림의 달콤한 듣기 좋은 것들을 전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진정한 복음은 [십자가]이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희생을 믿고 순종함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죄 사함을 얻고 죄에서 자유 하여 유쾌한 인생이 되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라는 베드로 사도의 선포가 바로 복음의 핵심이다. 그리고 죄 용서를 받은 하늘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다시 오실 영광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 되어야 정상적인 하늘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 난 사람들은 늘 소망을 이 땅에 두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에 두는 사람들이다. 역시 바울 사도께서 이 사실을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1~4)

연이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5~6) 하늘로부터 거듭났다고 하면서 땅의 지체가 주동적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아니라 진노가 임할 것이라는 경계를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격려는 죄악가운데서도 의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주고 어두움 속에서도 빛을 사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이어야만 한다.

사실 이 땅에서 잘되는 것은 불신의 사람들도 가능하고 성경에서도 이것을 말하고 있다. [소발에 대한 욥의 대답]“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 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 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욥21:7~13)

[아삽의 노래]“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시73:2~7)

그러나 이들의 형통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있을 때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으로 전하고 듣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2)는 말씀도 중요한 것은 “네 영혼이 잘 됨 같이”를 지나쳐서는 안된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하나님의 진리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는 세상의 모든 방법을 다 거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자주 말하지만 보이는 현상들이 형통하는 사람들이 신앙이 올바른 사람이고 육신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믿음생활이 잘못된 사람들이라면 오늘 본문의 가르침을 주고 있느 ㄴ바울 사도를 비롯해서 히브리서 10장 말미에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은 다 잘못된 사람들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원의 이야기 십자가의 이야기 생명의 이야기 영원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Ⅲ.거짓된 복음이 범람할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증거 하는 것이 더욱 긴요하다.(3~4) 증거의 긴박성과 경계이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때가 이르리니” “때가 올 것입니다.” 진리를 거절하고 좋아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어두움 속에서는 흔한 이야기이다. 결국 진리의 복음이 아닌 사람들의 귀에 달콤하기만 한 말들은 말세가 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를 것이라는 경계와 함께 말씀을 전해야 할 당위성을 더욱 분명히 한다.

이런 사람들의 첫째 되는 특성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않게 된다. [바른, 헬, 휘기아니노(hygiaino), 건강을 갖다, 타락하지 않다, 교리에 있어 진실한, 바르다, to be healthy, sound] [교훈, 헬, 디다스칼리아(didaskalia), 교훈, 지식, 교리, 학문, 가르침, teaching] 건강한 신앙은 건전한 신앙에서 나온다. 그러나 건전한 신앙의 가르침을 거절하는 것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미 바로 앞에서 디모데에게 이러한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이 모든 현상은 건전한 신앙에서 떠난 세상의 모습들로 절대로 교회 속에서 있어서는 안될 모습들이다.

둘째 특성은 ‘귀가 가려워서’ 라는 것이다. 결국 범죄 한 하와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것보다는 사단의 꾸민 이야기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b~5)는 부추김에 빠져 범죄하게 된 것처럼, 에덴 이후의 많은 사람들이 음담패설 같은 귀를 간지럽게 하는 “꾸며 낸 이야기에 마음을 팔 것입니다.”[공동] 이런 이유에서 말씀 앞에서의 흥미 보다는 꾸며낸 연속극을 보는데 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예배당 보다는 극장에 사람이 더 많은 것도 꼭 같은 원리이다.

[사욕, 헬, 이디오스 에피뒤미아(idios epithymia), 자기 자신의, 사적인 - 금지된 것을, 정욕, 욕망, 갈망]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지는 언제나 주님의 선하신 뜻을 순종하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바른 가치가 이미 상실되면 오로지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허탄한, 헬, 뮈도스(mythos), 우화, 신화, 허구, 거짓, 전설] 이것은 결국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되는 꾸며낸 이야기를 의미한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지불하신 역사 속의 진실된 사랑의 이야기는 점점 멀어지고 사람들이 교묘하게 꾸민 이야기들에 더 관심을 갖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꾸며낸 이야기에는 흥미는 있어도 생명은 없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진리를 듣는 데서 귀를 돌이켜 허탄한 만든 이야기에 기울이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생명과 영원을 보지 못할 것이다. 듣기에 솔깃하고 즐겁게 하는 이야기에 생명을 맡겨서는 안된다. 그것은 속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끌어들일 것입니다.”[표준 새]

이 내용은 반복이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교회나 교회의 구성원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택의 항목이 아니라 필수 과제이다. ①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경험과 확신이 중요하고 ②나 자신의 변화를 체험해야 확신을 갖고 전할 수 있고 ③내가 가진 복음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며 ④내가 속한 교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증거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의 영광과 사라질 것들에 대한 약속보다는 영생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죄성을 가진 사람들이 마지막 때가 될수록 바른 구원의 가르침 보다는, 비록 허황되고 꾸며진 이야기일지라도 자신의 귀를 즐겁게 하고, 들어서 기분이 좋은 것들을 더 좋아 하는 때가 되고 그럴수록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교훈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