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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28:18~20 2006-11-05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1:12~14)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늘 치중하는 부분은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할 것을 명령하고 계심에 대한 교훈이다. 물론 그것이 이 예수께서 주신 최고의 계명이지만 같은 말씀의 이 나머지 부분이 가볍게 여겨져도 역시 온전한 순종이 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지키게 하라!”는 말씀은 옛 언약인 구약성경에서 흔한 표현이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 없이 어떤 것을 지킴으로 거룩해 지거나 의로워 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지상최대의 명령을 주시면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삶고 세례를 줄 것을 명령하시면서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을 함께 주시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사실 에덴 이후 범죄 한 인류는 선한 율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성으로 인하여 도저히 그것을 지킬 수 없는 존재들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죄의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은혜를 믿음을 통해서 받아들이게 하신 후에도 이 “지키게 하라!”는 명령은 계속 구원의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세의 율법 자체를 자연인은 절대로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 라는 야고보를 통한 가르침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해가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은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은 육신의 인간의 의지나 힘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함께 하심과 말씀의 역사로 가능하게 되는 입장에서 율법은 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완성됨을 깨닫게 된다.

주님께서 요한 복음에서 자신의 모범을 소개하시면서 이러한 순종과 지킴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8:5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14:23~24)

우리 모두 이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킴으로 그의 보호와 풍성함을 충만히 누리는 …



Ⅰ.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지켜져야 한다.(20f)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질 때 그 약속은 지키는 자에게만 유효하다.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므로 초라하고 부끄러운 연약함 뿐이다. 성경 시대와 우리 시대의 차이는 이것 뿐이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언제나 부분적으로 지킨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 한다.

마치 야곱이 애급의 바로 왕에게 예물을 준비케 하면서 그의 자녀들에게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을 삼을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비자와 파단행이니라”(창43:11)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렇게 드려서는 안 된다. 드림도 지킴도 분부하신 모든 것을 드리고 지켜야 한다.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해 경계하시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사28:10, 13) 하나님의 약속을 제한 적으로 지키면 하나님의 능력도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듣고 읽고 순종하여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교훈이다. 우리 말에 “부두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 라는 속담이 있다. 소금이 아무리 짠맛을 낸다고 하드라도 그것이 입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짠 맛을 내지 못한다는 말씀과 같다.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 아버지 법이 천천 금은보다 귀하다(시119:72)고 할지라도 결국 순종으로 지켜지지 않는 사람에게만은 말씀은 아무 능력도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묵묵히 말씀을 순종하고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주님의 은혜를 삶을 통해서 나타내고 삶으로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입으로 요란할 뿐이다. 사람은 행동을 즉 삶으로 말씀을 표현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입으로만 요란한 경우의 차이를 나타낼 수 밖에 없다. 남들에게 주님을 소개하고 전하는 실제적인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는 것이 이러한 것을 나타낸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분부는 가르쳐지고 그 가르쳐진 교훈은 반드시 지키도록 주어졌는데 그 가르침 받은 어느 부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

바리새인들처럼 “…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마23:24)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도들을 통해 분부하신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이 생명의 있고 없음을 판가름 나게 한다.

특히 여기 지키게 하는 방법은 “가르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침 받는 것은 지속적으로 있어야 할 지킴에 앞선 과제이다. 무엇보다도 사도들은 성령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사도들을 통해 기록된 말씀은 또한 지속적으로 주님의 백성들이라면 가르침을 받아야 지켜질 수 있다.

물론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진리 된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과제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살게 하는 모든 진리의 말씀을 지킴으로 복 받는 …



Ⅱ.바른 교훈과 아름다운 것을 본받아 지켜야 한다.(딤후1:13~14)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은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말하면서 중요한 신앙적 당부를 주고 있다. 아무 것이나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고 ①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②내게 들은 바(사도들을 통해 들려진 것들, ③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바른, 헬, 휘기아이노(hygiaino), to be healthy, sound; 건강하다, 타락하지 않다, 강건하다] [말, 헬, 로고스(logos), 요1:1 말씀-예수 그리스도] 잘못된 것을 지킨다면 거기에는 약속도 소망도 없다. 왜곡시키거나 다른 불순물을 섞지 않은 순수한 교훈을 받고 지키는 것은 생명과 영원과 연결되는 귀중한 교훈이다.

④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사람들에게 부탁한(맡긴), ⑤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름다운, 헬, 칼로스(kalos), 선한, 가치 있는, 덕스러운, 보다 나은, 공정한, 좋은, 정직한, 충족한] 하나님께서 주신 그대로는 모두가 “보시기에 좋았더라” 거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것들 뿐이다. 거기에다 다른 것을 섞었을 때 일그러지고 못쓰게 되고 마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교회론인 에베소서에서도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고 당부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변함없이 지키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성령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디모데전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6:14)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선하고 아름다운 말씀을 지켜왔다면 그것은 대단히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명령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요한계시록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2:10)는 말씀을 이런 입장에서도 같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말씀을 지킨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생명의 언약을 지키지 않아서 늘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심지어 저주를 받는 역사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무수한 것을 본다. 그 만큼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다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3:1~3) 그럼에도 그것은 지킴에 있어서는 쉽지 않음을 계시록에서 읽는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10:9~10)

예수 그리스도를 시작으로 바울을 비롯한 많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지켰던 모범을 본받아 신앙의 역사 속에 다음 세대의 찬란한 빛으로 존재하는 …



Ⅲ.그럴 때 우리가 보호를 받으며 함께 하신다.(20b)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약속은 물론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전도의 현장에 함께 해 주실 약속이면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는 말씀의 열매이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1:12에서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고백하는 내용이다. 주님과 이런 신뢰의 관계가 되지 못하면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아니다.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이사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속에서도 이 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것을 경험한다. 시간 약속이든지 다른 어떤 것이든지 생각과 입에서 말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데는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것을 경험한다.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는 주님의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킬 때만 유효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며 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약속을 세상 끝날까지 지키려고 한다면 우리의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해 주심으로 가능하고 이것은 각자의 의지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이러한 약속의 이행을 머리 속에서만 기억하고 실제적인 삶에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는 되는데 실제적인 삶에서는 안 되는 현상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관념적이라고 생각해서 머리 속에 있는 것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14:21f) 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주 단순하면서 귀중한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 됨의 간격이다. 성경 속에서 많은 부분에서 이것을 말씀하고 있다. 심지어 주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21:28~31)

표현되어지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실천되지 않는 지켜지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2:17~26) 오늘날 신앙 하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진정한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지 못하고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연약함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관념적으로만 믿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거기에는 세상과 비교될 수 없는 아니 세상 속에서 맛볼 수 없는 놀라운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담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더 강하게 의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오히려 더 두려워하는 안타까움 때문에 천둥번개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성냥불을 키는 것 정도로 밖에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참된 믿음의 소유자는 어떤 입장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려는 의지를 성령께서 아시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약속에 견고히 설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역사 속의 수많은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에 철저하게 자신을 온전히 드렸던 사람들이라고 이해하면 옳을 것이다.

이 시대가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 넘치는 사랑을 힘입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많이 들 깨닫고 알고 있다. 이런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눅10:28)

우리 모두 가르침 받은 진리만큼만 생명의 약속을 지킴으로 생명과 능력이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복되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