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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2:12~27 2006-11-19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성경은 남녀가 결혼을 하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가르친다.(마19:6; 막10:8)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결혼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라고 역시 말씀하신다. 그것이 세상의 인종이나 계급이나 貧富貴賤을 막론하고 사죄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위치와 가치를 가지게 되는데 거룩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교회를 여러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 몸에 비유한 이 본문의 비유야말로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역사 속의 진리를 바탕 한 모든 교회의 가장 구체적인 비유일 것이다.

오늘 제목을 비롯한 본문의 여러 곳에서 이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이렇게 한 몸으로서의 많은 지체를 가졌다고 하면서 우리 몸을 비유하고 있다.



Ⅰ.다 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12~1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한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를 이루는 출발을 하나로 만드셨다.

본래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한 혈통에서 나왔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17:26)

그러나 아담이 범죄하고 난 후에 번성하면서 창세기 11장의 인위적으로 흩어짐을 면하기 위하여 인간의 힘과 능력을 과신하려고 바벨탑을 쌓은 결과는 오히려 흩어짐의 이유가 되어 버렸고, 각 족속과 민족과 언어는 서로의 갈등과 반목으로 싸우고 헐뜯는 비극이 이 역사 속에 계속 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흩어짐의 비극이 비로소 하나가 되는 역사를 이 땅의 최초의 성령이 오신 오순절 날에 보게 되고 이것은 적어도 인류가 진정으로 하나되는 방법이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해 짐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2:8~11)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진정한 통일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이루실 것을 알게 하셨다.

사람이 가장 일반적으로 하나일 수 있는 이유는 같은 혈통을 타고 한 가문에 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모두 다른 피를 타고 나기 때문에 다른 생각과 다른 정서를 가지고 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에서 인류가 하나되게 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한 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거듭남을 마련하신 것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13f)

바울은 이 사실을 갈라디아서에서 다시 확인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7~28)

사실 흩어짐의 원인이 죄였다면 역(逆)으로 그 흩어짐을 하나되게 하는 원리는 당연히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육으로 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의 십자가와 함께 죽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분쟁은 죄악이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는 당부를 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엡4:4~5)

이런 원리에서 인류평등이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장소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밖에 없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약1:9~10)

2.한 성령으로 호흡하여야 현재와 미래의 하나됨이 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13) 어떤 것들이 시작은 바로 되었는데도 점점 시간이 가면서 시작의 정신이 흐려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음에도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감정이나 능력으로 불가능하고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시므로” 가능하게 될 것임을 덧붙여 말씀하고 있다. 사람은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건강이 변해 가게 마련이다.

사람이 계속 산소를 마시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거듭난 하늘의 사람도 지속적으로 말씀과 더불어 성령을 마시지 않으면 영적인 건강을 오늘의 주제처럼 그리스도의 지체의식을 갖지 못하게 된다. 신령한 것을 지속적으로 마셔야 성령의 사람 말씀으로 사람으로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7:37~38)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성령으로 호흡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갈라디아 교회가 바른 진리를 외면하고 복음을 외곡 시킨 것이 바로 그렇지 못한 연고라고 바울은 한탄한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Ⅱ.서로는 부정할 수 없는 각지체이다.(14~21)

어떤 경우에는 심하게 고통스러운 지체를 떼어내 버렸으면 할 정도로 한 지체로 인하여 온 육체가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옛날에 생손가락을 앓거나 이가 앓게 되면 밤새껏 잠을 못자고 끙끙대던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1.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다. 우리 몸의 구조이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구성이든 필요 없는 지체는 한가지도 없다. 몸이 건강치 못하면 지체간에 부조화를 나타내게 된다. 이것 역시 우리 육체나 교회에 있어서 마찬가지이다.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15~16)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21)

V18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어떤 사람이든지 우리 교회에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심지어 가시노릇을 하는 교우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교회에 그런 역할이 필요해서 주셨다고 하는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도 교회의 구성원들 중에 필요 없는 지체는 없는 것이다.

좀더 심하게 표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가룟 유다도 필요했기 때문에 거기에 적절한 사람을 사용하셨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마26:24; 막14:21) 라고 받아들이시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 우리 교회의 지체 모두를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두셨다고 하는 확신과 함께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2.서로의 역할을 인정해야만 한다. 아무리 스스로만 온전하다고 생각하면서 너를 부정해 버리면 주님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당연히 나도 부정될 수 밖에 없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오늘 우리의 교회의 지체는 주님께서 그렇게 두셨다고 믿는 데서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한 방법을 통해서 지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는 베드로의 주님을 부정해 버리는 사실 속에서 누가복음 22장의 독특한 기록을 보는데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57)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58)”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60) 이 내용을 정리해보면 너를 부정하고 저를 부정해 버린 상황에서는 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나 자신과 조화가 어렵다고 할지라도 서로의 역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이런 입장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3.경쟁의 체제가 아니라 공존의 조직이다. 지체가 함께 공존하는 것은 요즘 쉽게 말하는 共生의 관계이다. 즉 함께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나의 눈이 너무 못생겨서 사람들에게 지적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나의 눈이 없다면 나는 시각 장애자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괴로움을 주는 지체일지라도 그 지체가 나에게 없다면 나는 불구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지체간에 서로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21)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늘의 시대에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서의 지체 간에서나 심지어는 부부간에서 까지 주도권 다툼을 한다고 하는 것인데 참으로 비극이고 유치(幼稚)한 모습이다. 사람들이 어릴 때는 어떤 질병을 견디는 것도 힘들어 하지만 나이가 들게 되면 관절염도 친구로 여기게 된다. 성숙할수록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 속에서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한 몸에 지체는 절대로 경쟁의 체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공생의 관계로 가야 하고 그런 입장에서 지체간에 서로를 향해 감사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평생을 가고 영원히 가야 할 존재라면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 중요함에도 끊임없이 주도권 다툼을 하며 귀한 시간을 낭비해 버리고 초라한 모습으로 인생의 말미에 서서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 라고 후회 한다면 참으로 불쌍한 존재들이다.

그리스도의 한 몸 된 교회라면 지체들 간에는 경쟁이나 투쟁의식을 부추겨서 일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신령한 지체라는 감격 나 자신이 최선을 다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어야 하고 열심을 다해 경쟁하려면 대상을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바울 사도처럼 그리스도를 목표해야 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빌3:12~15)

주님처럼 겸손하고 주님처럼 기도하고 주님처럼 사랑하는 경쟁의 모습이라면 절대적으로 겸손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다. 모든 지체는 자신의 역할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감당하려는 자세야말로 참으로 귀중하다.

신앙에서 나의 경쟁의 대상은 함께 신앙 하는 지체인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옆의 같은 지체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함께 가는 존재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관계로 갈 수 있는 …

그래서 이 문제는 다음의 연결되어지는 내용에서 해결해야만 한다.



Ⅲ.존귀영광을 함께 나눌 운명체이다.(22~27)

지체나 가족이 아닌 남과는 이런 나눔이 쉽지 않다. 영광도 시기 나고 고통도 나눌 수가 없다. 그러나 가족은 다르다.

1.어느 지체가 더 귀하고 덜 귀하지 않다. 다만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역할의 차이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평가해야 하는데 사람은 주님처럼 완전히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가령 가장 초라한 기관으로 보이는 항문이 없다면 온 몸이 더욱 추하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욱 귀하게 여길 것이다.

때문에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22~23) 라는 사실이다.

2.분쟁이 없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늘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24~25)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사실 사람의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견디지 못하는 데서 방황하고 갈등 한다. 요즘 성형술이 유행하고 있지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은 인간의 판단이고 기준일 뿐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바울은 교회의 관계에 대해서 가르치기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9~13)고 당부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롬12:14~16)고 부탁한다.

3.이런 자세가 될 때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하는 영원한 지체의 감격을 누릴 수 있다.(26~27)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가장 아름다운 조화는 한 지체의 고통을 모든 지체가 골고루 나눠 감당하는 것이다. 또 한 지체의 영광을 모두가 영화롭게 여기는 의식이다. 이럴 때만 지체라는 의식이 가치를 갖는다.

머리가 좋아서 기발할 창의력을 갖든지 발이 축구를 잘하든지 손으로 탁구를 잘하든 각 지체가 했고 다른 지체가 협력했으므로 그 지체만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지체를 가진 온 몸 즉 그 사람의 이름이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지체간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지체로 귀중히 여기는 자세와 관계는 하나님의 원함이고 교회의 가장 교회 된 모습일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교회의 지체의 고통은 모두 함께 기도로 감당하고 영광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때 비로소 지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숙하지 못한 지체는 아직도 경쟁과 반목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바울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는 당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처럼 영적인 가르침에도 육적으로 이해하는 인간적으로 유치한 모습에서 장성하여 육신의 혈육이기 때문에 더 귀중하고 육신으로는 관계없다는 생각에서 영적인 관계에 방해가 된다면 또 다른 책망 받는 니고데모가 될 것이다. 영적인 관계는 영원에까지 관계된다는 귀중한 지체 의식으로 모두가 사랑하고 귀중히 여길 때 참으로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서로의 몸 된 지체의식이 어느 때보다도 귀중히 여겨져야 할 마지막 시대요, 사명을 감당해야 할 시기이다. 마귀 사탄은 되도록이면 강한 결속을 깨뜨리고 지체의식을 희미하게 해서 경쟁하게 하고 다투게 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래서 종국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찢으려는 시도를 수없이 감행한다.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나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서로에게 흐르는 지체의식으로 지속적으로 생명의 성령을 마심으로 영적으로 외적으로 지속적으로 성숙해 가는 거룩한 공동체의 지체로 이 땅에서의 고난도 함께 당하고 다가올 주님의 다시 오심의 영광도 함께 누리는 거룩한 각자 지체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신령한 지체역할을 감당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