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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후 10:12~18 2006-12-08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구르는 낙엽에도 슬픔이 있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이루는 자연 앞에 고개 숙여진다. 이렇게 죽음조차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희생하면서 말라 비틀어질지라도 더불어 황혼을 아름답게 라는 나뭇잎의 생애를 통해서 배운다.

우리는 지난 주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우리의 관계를 생각했었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내용도 여기에 무관하지 않다.

오늘 본문의 1차적인 목적은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변호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바울이 세운 고린도 교회 속에 들어와 바울의 수고와 공로를 자신의 것인 양 왜곡하고 바울에 대해서 곡해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바울의 역할과 사도권의 증거, 그리고 자신의 복음증거의 영역인 고린도 교회 속에서의 자신의 업적을 매도하려는 궤휼의 역군들에 대해 단호한 바울의 변명 속에는 오늘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려는 사람들의 자세가 나타나 있다.

우리는 가끔 드리는 찬양 속에서 [355:3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아멘~]라는 찬양을 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통해서나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는 일들에 대해서 자긍심을 갖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대가를 기대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懷疑)까지 가지는 경우가 이 세상의 교회 속에서는 더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역사의 현장 속에 있었다고 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칭찬 받기를 원하고, 이 땅에 그러한 흔적들을 남기기를 원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스스로 상급을 찾는 것에 대해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2, 5, 16)고 경계하시면서 그러한 상급들을 소멸되지 않는 하늘에 쌓아 둘 것을 권면 하신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6:20)고 말씀하신다.

기도도 금식도 선행도 이 세상에서 받는 칭찬과 상급보다는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칭찬에 비교될 수 없고, 나의 역할과 업적은 사실 사람들 속에서보다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중요하다. 그러한 비밀을 가진 자를 교회의 섬김의 직분의 조건으로 바울은 가르치고 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3:9)

바울의 모범이 이러한 신앙적 사실을 보다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을 바울의 서신에서 읽게 되는데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시는 종류는 다 다르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ei[te oJ parakalw'n ejn th'/ paraklhvsei],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6~8)

그럼에도 이 여러 가지 각기 다른 기능을 “한 성령으로”(고전12:9)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이나 재주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당하게 하기 때문에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b)는 고백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 제목과 더불어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하늘의 복된 섬김의 사람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섬기는 …



Ⅰ.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고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12~13)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믿음의 삶에 가장 치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앙의 기준을 자기 자신으로 삼는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있다. “…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가 만든 척도로 자기네 스스로를 재고, 자기네가 세운 표준에다가 자기네 스스로를 견주어 보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12b표준 새]

사실 이런 모습은 신앙 성장에 치명적이다. 하나님의 진리인 말씀의 빛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이 아니라 기준 자체를 자신이 스스로 만들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용하고 다른 지체들에 대해서는 전혀 융통성을 갖지 못하는 모습이다.[자신의 실수에 –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 믿는 사람이 그럴 수 있는가!; 자신의 작은 성취에도 – 나는 역시 대단하다!; 다른 사람의 성취에는 – 그 사람이 그것밖에 안되는가!≒사실 반대이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 지혜 없는 모습이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분량”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13)

특히 [자랑]이라는 것에는 분량이 지나치면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분량에 못 미치는 겸손은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Gag, comedy]

신앙의 사람들의 [분량]은 성경이 분명히 제시해 주고 있다. 자신의 신앙 기준은 지난 주에 말씀 드렸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주님과 비교한다면 자랑할 것이 결코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기준은 사람으로 비교하여 격려해야만 한다.[나보다는 훨씬 훌륭하다. 조금만 더 힘쓴다면 주님을 따라 미칠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질 못하고 늘 세속적이고 죄악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려 든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이방 세계를 향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고린도에 까지 복음으로 이르게 된 것이라고 고백한다.

스스로 만든 기준, 그것은 나를 타락시키는 기준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12:2~3)고 권면하고 있다.

바울 사도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푯대로 삼아 교만하지 않고 순종의 모습으로 달음질 하는 …



Ⅱ.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에 자랑해서는 안된다.(14~16)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 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는” 자기 기준의 한계를 스스로 만드는 것보다 더 심각한 오류는 남의 수고를 자신의 것인 양 자랑하는 죄악이다. 안타깝게도 고린도의 거짓 교사들은 이런 영광 도둑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이러한 안타까운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철학적인 학문으로 나아갔다면 고린도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지만 복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고린도에 까지 이르렀다고 감사하고 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자신의 일로 나타내려고 하는 행동은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으로 나타났고(사울-삼상15:12; 압살롬-삼하18:18) 경건한 사람들일지라도 이런 유혹에 빠지는 것들을 더러 더러 보게 된다.(다윗- 사무엘하24장=대상21:1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른 사람들의 수고에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 신앙의 자세 역시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고린도의 거짓 교사들처럼 바울의 수고를 자신들의 것인 양 위장하고 선전하고 도적질하는[명예 도둑질-지적소유권, 가짜 학위] 사람들을 바울은 지적하고 있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도 분명이 이방인이라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분량을 지켰고 이런 자세 때문에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15:20)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어떤 권세를 인간에게나 교회에 허락하셨을지라도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후10:8)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신 역사에 겸손하고, 남의 수고에 박수를 쳐주므로 하나님께 귀하고 진실한 존재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격려의 사람들로 영육의 귀중한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면서도 주님과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



Ⅲ.오직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자가 되어야 한다.(17~18)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자신의 세운 기준으로 자기를 헤아리고 자신으로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역사나 다른 사람의 공로나 수고를 도둑질하는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나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고 죄악으로 비릿내 나는 육신의 사람의 모양이었다면 마지막 주제는 가장 바람직한 칭찬의 모습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31에서도 본문 17절과 꼭 같은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을 더 쉽게 이해하면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공동] 라는 당부의 말씀이고 인용된 본문을 살펴보면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9:24)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안다고 하는 것이 자랑이 되어야 하겠고 어떤 조건에서도 결코 사람은 자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겸손이 자랑의 비결임을 말씀하는 곳은 성경에 더러 나타난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주님을 힘입어 최선을 다했다면 사람들에게 나타날 만큼 일하지 못하는 것에도 낙심할 것은 없다. 이럴 때 우리는 실패의 자리도 빨리 털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봉사와 섬김의 모범을 기쁨의 성경이라고 하는 빌립보서에 제시하기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3:3) ①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 ②그리스도 예수로 자랑 ③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이론이다.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높여봐야 자신도 주변의 사람들의 기분도 좋게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심을 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영광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인정받을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18-공동)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란 인간의 입장을 세워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손상을 끼쳐서는 안되는 곳이다. 바울은 자신의 권위가 지옥까지 내려간다고 해도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만족한다고 하는 자세를 가지고 일하고 섬겼고 이 땅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포기하고 헤쳐 모인 사람들이 사실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고 모든 권세와 영광을 포기한다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영광도 포기할 수 있는 십자가야 말로 최저의 겸손으로 내려 가는 것이고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게 될 때 하나님은 비로소 그런 사람을 높여 주실 것이다.

바울은 그의 만년의 로마 감옥 속에서 억울하게 갇혀있으면서 모함을 들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확산될 수만 있다면 기뻐한다는 고백을 드리고 있다.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7~18)

이런 신앙인격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 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15)는 자신 있는 고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모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3:3) 고백을 바울처럼 드릴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로 장성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