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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13:12~17 2006-12-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성경에 표면적으로 나타난 부분들을 행하는 그런 일들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 본문의 배경이 되는 세족식(洗足式) 역시 여름 수련회나 기타 좀 특별한 신앙 훈련을 할 때 많이 행하는 항목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당부하시는 말씀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의례적으로 그런 행사를 수없이 반복한다고 해도 주님께서 의도하시는 진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행한다면 우리 삶에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평상시 늘 실천되는 모습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때의 과제로만 이러한 외향적인 가르침을 행하고 진정한 의미를 묵상하지 않는 결과들이 오늘 날과 같이 수없이 세족식을 행하지만 주님의 제자다운 모습을 찾아 보기 어려운 데서도 이해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신 말씀은 자신보다 낮은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발을 씻기듯 섬기는 것 뿐만 아니라 신앙의 모든 항목에서 되새겨야 할 귀중한 신앙의 교훈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어떤 것도 한 번으로 끝나는 것들은 없다. “순종하라!”는 명령 역시 성경에 끝임 없이 반복되어지는 당부이고 조건에 관계없이 지켜져야 할 주님의 계명이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 을 할만 하거든 해라!”는 식의 명령을 주지 않으신다. 다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23)고 말씀하실 뿐이고 “나의 명령하는 것은 세상의 조건에 관계없이 지켜져야만 할 명령이다.” 라고 명령하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왕이시고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종은 생명이고 불순종은 죽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건에 관계없이 순종해야 함을 믿음의 선진들이 영롱한 샛별처럼 증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뜻하신 바를 잘 이해하고 준행함이 복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도록 감춰 두시는 하나님은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사는 것을 원하신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우리 모두 어떤 여름 날에 산골자기에서 다른 사람들의 발을 한번 씻어 주는 의식으로 이 말씀을 실천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이 주님의 가르침의 의미를 알고 항상 삶에 행함으로 복된 …



Ⅰ.“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고 물으신다.(12~13)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물으신 것을 보면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 조차도 다른 제자들의 발을 씻으며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어색한 표정으로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6) 라고 물었고, 예수께서 답하시기를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7) 하시자 베드로는 다시 한번 “…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8m) 하였고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b) 하시자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9) 라고 내어 맡기는 것을 본다.

주님께서 육신으로는 제자들과 보내는 마지막 밤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러한 가르침 뒤에도 누가 크냐며 자리다툼을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주님의 이러한 가르침이 저들에게 그 때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눅22:24)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주님께서는 진정한 강함과 윗자리가 어떤 것임을 보여주시는데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이 일도 몸으로 산 교훈을 주고 계신 것이다.

1.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고 물으신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행하신 것을 알아야만 한다. 보이는 표면적인 모습 보다, 그 나타난 주님의 역사가 주고자 하는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모든 주님의 사역에 다 연결되어 진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4~5)

이것은 당시 종의 모습이었다. 식사의 예법은 이스라엘에서 더욱 분명하게 서열을 가리는 자리이다. 즉 주인과 종의 신분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자리이다. 제자들이 보기에는 전혀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을 하시고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묻고 계신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이스라엘의 풍습을 직접 예화로 사용하신 적이 있으시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눅17:7~8)

사실 주님께서 행하신 모든 행동들이 인간의 육신의 눈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행동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스러운 행동이 이해되고 수긍되는 사람들이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렇게 묻고 계시고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계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5:3~12에 나타나는 8복을 비롯해서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7~39)는 부분들이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말씀들이 아니다.

특히 여기 ‘허락하다, 느끼다, 알아차리다, 분석하다, 확신하다, 이해하다’ 라는 의미의 [아느냐, 헬, 기노스코(ginosko)]는 순간적으로 어떤 일을 알아 차리는 정도의 앎이 아니라, 경험하고 분석한 후에 알게 되는 깊은 앎을 의미하는 낱말이다. 영적인 것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들 뿐이다.

2.인간의 일반적인 윤리를 뒤집으셨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하고 대적했던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 하나가 선생으로서의 존엄성을 떨어뜨린 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폼 잡고 거드름을 피우고 존경을 받고자 했는데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러한 당시의 위계질서에 엄청난 반동세력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것들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막10:45) 시는 것처럼 천국은 섬기는 자가 큰 자임을 강조하시고 그 가르침을 몸소 보이신 것이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삶을 깨달아 알고 그 주님처럼 섬기는 삶으로 인간의 윤리를 초월하는 삶을 살아서 천국에서 큰 자들로 영화롭게 되시기를 …



Ⅱ.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14~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발을 씻으시려는 것 때문에 두려워 하고 송구스러워하는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면서 이 교훈을 주셨다.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14m) 주인으로 가르치는 자로서 사람들의 가장 천하게 여기는 먼지 투성이의 발을 씻기시면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날 서로의 발을 씻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여기서 [발]을 씻긴다고 하는 의미도 중요한데 발이 더러워 지는 것은 먼지 투성이의 땅바닥을 계속 걸어 다니기 때문에 더러워지는 것처럼,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범한 죄로 인하여 더러워지고 죽을 수 밖에 없고 그러한 더러움을 씻는다는 의미도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1.예수(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씻기실 수 있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 주님이시기 때문에 제자들과 우리 모두의 발을 씻기실 수 있으셨고 이러한 주님의 사랑은 우리 모두의 관계 속에서 성취되어야만 한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b)하신 말씀은 실로 깊은 의미를 가지는 앎으로 우리 모두의 가치가 되어야만 한다.

주님의 십자가의 피에 씻김을 받지 않은 사람은 결코 주님과 관계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만 위대한 스승으로만 대하는 사람들은 사실 주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주님은 우리의 평생의 죄의 저주와 수치를 모두 씻어 주셨고 이러한 씻김 받은 사실을 헤아린다면 어느 누구의 수치인들, 특히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의 수치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씻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소게 하면서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고 오늘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씻기심을 아직 누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보혈의 귀중한 사용을 위해서도 또한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차제에 요즘 우리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세상에서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을 사람들은 두려워 하면서도 영원한 세계에서, 또는 하나님아버지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두려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비극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왕따를 당하는 것은 길어야 6년이고 3년이지만 이러한 소외감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간이 없는 영원한 세계 속에서의 왕따 당하는 것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한번 심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우리도 같은 모범을 따라야 한다.(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주님의 제자들의 발 씻기심의 모범을 오늘 우리 사이에 적용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바로 서로의 허물과 수치를 가려주고 씻어주는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들로서의 사역이다.

이러한 원리들은 주님께서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막11:25)하신 가르침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수치를 씻어주고 깨끗이 도말 할 수 있는 거룩한 삶의 관계를 가르친다고 이해한다.

야고보는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약5:16f)는 사뭇 신기한 교훈을 기도의 가르침 끝에 주고 있다. 형제나 자매의 죄와 허물을 입으로 흉보고 남에게 옮기기에 바쁜 죄의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을 나누고 용서를 누리게 하는 영적인 원리가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후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신 주님의 가르침의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실제적인 교훈이다.



Ⅲ.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6~1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이 말씀은 여러 가지로 이해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과 비슷한 가르침을 이 역사의 마지막의 교훈에서도 주고 계시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마10:24~25) ‘말세에 아무리 어려움과 핍박을 당한다고 한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시련을 당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비유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바알세불이라고 매도했던 사람들이 그분의 제자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같은 시련을 가하지 않겠는가 하는 예언이기도 하다.

1.발을 씻어 준다고 해서 상전과 사자의 자리를 잃는 것을 결코 아니다.

이런 섬김 때문에 정말로 위계질서가 허물어지고 윤리가 손상을 받지 않을 것에 대하 가르침을 연이어 교훈하심이 바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16) 하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아무리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해도 우리의 영원한 상전이요 선생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잡을 수는 없고 아무리 능력이 충만하다고 해도 우리를 세상에 내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스승인 바울조차도 그리스도를 푯대 삼았지만 고백하기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빌3:12~15f) 라고 고백함을 듣는다.

실제로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기 때문에 스승의 자리를 잃지 않으셨고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님처럼 겸손으로 섬긴다고 해서 낮아지고 천해지지 않음을 가르치는 표현이다.

2.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지난 한해도 그리고 아마도 내년에도 어떤 교회들이나 신앙의 단체들은 프로그램에 세족식(洗足式)을 포함하고 그 예식을 행하면서 더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주님께서는 같은 당부를 주고 계신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말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그것이 일회적인 행사나 전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의 진정한 의미는 선생과 주인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찮게 여겨지는 제자와 종들의 허물과 수치를 씻어주는 거룩한 삶을 실천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계시는 것이다.

한 순간만 눈물을 흘리고 감격하는 행사적인 세족식이 아니라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서로의 허물과 죄를 그것도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수치조차도 깨끗이 씻길 수 있는 사죄와 용서의 기쁨을 기도와 교제를 통해서 나눌 것을 당부하고 계신다.

만약에 그런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행사로서의 세족식만 행한다면 그리스도의 희생을 가르치는 것도 교사로서의 역할도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은 되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서는 죄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섬김이 어렵기 때문에 때로 의도적으로 이런 세족식을 행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주님의 사죄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나누고 확대해서 왕 같은 제사장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