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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롬 13:8~14 2007-11-0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  
그리스도인의 국가에 대한 의무는 자 뭇 수동적이다. 정치에 있어서 앞서고 선동하는 것보다는 권력에 순종하라고 하는 소극적인 면이지만 그것은 어떤 권력이든지 하나님께로 오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교훈을 생각했었다.

왜 성경은 권력에 순종하라고 하면서 정치에 적극적인 자세를 권하지 않을까? “네가 권력자가 되도록 힘쓰라!”고 하지 않으실까? 모르긴 해도 정치에 맛을 들이다 보면 하마터면 천국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통치에 더 빠질 것 같아서 경계하시는 것 같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모든 것을 쏟아 붇고 계속 높은 것을 넘보는 모습 자체가 신앙적 겸손과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오늘의 주제는 사회의 통치 기반인 권력을 넘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모든 대상으로 확대하면서 그 힘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이것이 바로 구약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셨던 계명의 근본이며 완성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구약성경의 성문화된 율법은 하나님께 대한 자세에서부터 사람관계 속에서의 자세를 대표로 열 가지로 함축한 것이 율법의 기준을 이뤘던 소위 말하는 十誡命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께 대한 네 계명은 거론하지 않고 사람관계의 계명조차도 두 계명은 거론되지 않는다. 제 5계명과 제9계명이 그것이다.

그것은 이 말씀이 이미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것이고 율법의 순서나 조항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보여진다. 이미 바울은 율법 자체가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로마서를 비롯해서 그의 여러 서신들 속에서 강조한 바 있다.

두 군데만 예를 들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갈3:11)

사실 율법은 범죄 한 인간 스스로 는 절대로 지킬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죄인 됨을 더욱 들어내는 것임을 신약성경에서 수없이 말씀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람이 죽고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의지로 불가능하던 율법이 성령의 의지를 힘입어 지켜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로마서에서 조차 이야기 했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1~4)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사랑으로 이 율법의 완성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흠 없이 서기 위해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입고 어두워 가는 이 역사의 새벽에 서서 빛으로 살고 완성될 구원을 성취하는 것에 최종적인 목표가 있음을 이 말씀은 강조하고 있다.

오늘 이 귀한 생명의 교훈을 모두 자신의 말씀으로 받아 이 미움이 팽배한 세상 속에서 사랑으로 살고 이 역사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영광의 아버지를 흐리지 않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마련하신 새벽의 빛의 잔치에 참여하는 …



Ⅰ.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예수께서는 “…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눅10:27) 라고 말하는 율법사의 말을 “네 대답이 옳도다” 라고 인정하셨고 다시 요한을 통해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하였지만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요일2:7) 라고 확인한다.

그러므로 율법도 한 마디로 함축하면 [사랑]일 뿐이다. 구약의 율법과 복음을 논하는 갈라디아서도 마찬가지를 가르친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5:14)

성경에서 늘 권하는 사랑은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에 관한한은 늘 받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함을 강조한다.

1.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이 말씀의 중요한 요지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즉, ‘누구에게든지 어떤 빚도 져서는 안된다.’ 이다. 그럼에도 이 말씀은 또한 질수록 좋은 빚을 말씀하고 있는데 “사랑의 빚은 져라!”고 권면 한다. 사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채무자들이다. 일평생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고 믿음이 깊어 갈수록 이 빚의 중대함을 깨닫는다.

마찬가지로 이 빚을 하나님께 갚아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갚아 가도록 주님은 가르치고 계시고 바울은 이 사실을 이미 로마서에서 증거 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곧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귀중한 논리를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8절을 공동번역은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라고 번역하고 있다.

야고보는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2:8)

여기서 [남] 이라는 것은 동료가 아니라 자기와 관계가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일반적인 것이다. 주님께서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47)

세상도 자기의 것을 사랑한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여러분 모두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는 것을 깨달아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하여 율법을 다 이루는 …

2.모든 계명은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다.(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이 말씀은 출애굽기20:13~17 그리고 신명기5:17~21에 같이 기록된 말씀과 레위기19:18의 인간관계의 계명의 인용이다. 다만 순서나 누락된 부분이 있는 것 뿐이다. 제7, 제6, 제8, 제10 계명이고 제5, 제9계명이 빠져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다.

9절의 말미에서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했다면 이 10절의 끝부분은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는 것이다. ‘사랑 안에 다 이루어지고 다 들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 귀중한 것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이유이다.

3.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한다.(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어찌 보면 이 말씀은 사랑의 소극적인 면이다. 불신자들조차도 즐겨 인용하는 사랑의 성경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 4~6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 라는 사랑의 소극적인 면을 증거 한다.

여기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에서 [악, 헬, 카코스(kakos), 무가치한, 나쁜, 해로운, 아픈, 소란한] 등등의 뜻을 가지는 낱말이다.

또 여기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할 때 [완성, 헬, 플레로마(pleroma), 충만]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여진다. 사랑만이 인간의 힘으로 채울 수 없는 율법을 넘치도록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은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행위로 죄인 된 나(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Ⅱ.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11~12)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왜 사랑하고 하나님의 법을 채워야만 하는가 하는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현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세에 있다. 이런 세상에서의 윤리나 인간관계를 의무적으로 행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에 목표를 두는 사람들이라야 낙심치 않고 선을 행하고 변함없이 사랑할 수가 있다.

신약성경에 시기나 시간적인 개념의 단어가 주로 3개가 사용되고 있다. [호라(hora), hora- Qué hora es?] NT에 모두 108회 (제한된 부분의) 시간, 계절, 때, 한 시간, 짧은 시간, 싯 점, 시; [크로노스(Chronos)] NT에 모두 53회 시간, 기간, 때, (자연 법칙에 의한) 어떤 정해진 시간이나 계절; [카이로스(kairos)] NT에 모두 86회 시간의 척도, 시간의 많고 적음의 분량, 고정되거나 정해진 시간, 기간, 시기, 기회, 항상, 계절.

본문에 나타난 “이 시기”는 세 번째 단어인 [카이로스(kairos)]를 말한다. 유대인의 시간 개념은 두 가지이다. 그냥 의미 없어도 초침이 움직이며 가는 앞의 두 가지는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다. 다만 어떤 신앙적 사건 즉,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시간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인 [영생]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시간의 질이다.(요17:3)

시간의 길이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젊었다, 늙었다’ ‘오래 살았다, 짧게 살았다’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다. 우리 인생을 되돌아 보자! 과연 나의 인생에 하나님과 함께 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9백 몇 십 세를 산 시대에도 그 긴 세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세월의 ⅓을 살았어도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했기 때문에 9백년을 넘게 산 모든 사람들보다 더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11)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감지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어떤 과제보다도 중요하고 하나님께로 서 난 사랑의 사람이라면 이를 알 수 있다는 귀중한 가르침이다.

우리는 일세기에 목숨을 바쳐 복음을 지켰던 믿음의 선진들 보다도 더 주님의 재림의 새벽에 가까이 와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의 사람에게는 우리 인생의 늙어간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비교될 수 없이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의 다시 오심의 가까움을 의식하며 사는 경건이다.

그래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2)고 사랑하는 모두에게 권면 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 죄악의, 역사의 어두움은 짙었지만 동은 터오고 낮이 가까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불신의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그 광명한 새벽을 맞을 때까지 끊임없이 권면 해야 할 전도라는 것이다. 기회는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믿음의 눈으로 이 역사의 어두움을 하얗게 지새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11~12-공동)

“…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 (사21:11~12) 믿음의 사람들을 아침을 기다리며 밤의 어두움을 믿음의 뜬 눈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마치 질병에 걸린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든 밤의 시간을 견디며 새벽을 기다리는 것처럼 죄의 고통 속에서 온전히 광명한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새벽을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Ⅲ.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13~14)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러한 풍자는 당시 로마 사람들의 비도덕적이고 향락에 도취되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고 이 역사의 어둠이 짙어 가면서 같은 현상들이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랑의 사람들이란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에 그대로 묻혀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하셨고 다른 곳에서 차를 타고 오면서 “준비하고 있다가 집 앞에 차를 대면 바로 나오시오!” 한 것처럼 주님께서 “내가 데리러 갈 테니 천국잔치에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채비를 하고 있으라!” 하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문밖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하셨고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마25:6) 하실 때 준비된 모습으로 나설 수 있어야지 ‘잠시만 요, 이것만 좀 하고 …’ 라는 말은 역사의 아침에는 통할 수 없는 주문들이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 밤에 술 취한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도 모르고 정신을 잃고 길이 넓은지 좁은지도 모르고 바른걸음을 걷지 못하는 모습들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믿음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낮에와 같이 단정”함이란 어떤 것일까? 바로 다음절에 나타나고 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다른 옷은 영적으로 다 벌거벗은 모습일 뿐이다. 아무리 세상의 값비싼 의상으로 차려 입어도, 도덕과 윤리의 옷을 입어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일 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거듭남으로 입게 된 새로운 의의 옷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바로 이 14절과 꼭 같은 말씀이다.

이 두절 속에 나타나는 전반절은 모두 하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고 하반절의 말씀은 모두 땅의 사람들, 육신의 사람들의 묘사이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이것은 역사의 밤을 낮으로 사는 사람들의 자세이고 하늘의 사람들에게 합당치 않은 모습이기 때문에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당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 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13~14-공동)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라는 계명이 있고 또 그 밖에도 다른 계명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8~10)

이렇게 살아야 하는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11~12)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 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