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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롬 14:13~23 2007-11-18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사과나 많은 과일들은 생명의 씨앗을 발아시키고 키우기 위하여 맛있는 과육을 풍성히 만든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려고 주님은 과일의 과육과 같은 사랑이라는 따뜻하고 달콤한 것들로 우리를 진리로 이끄신다.

지난 시간에는 신앙 때문에 먹는 문제와 날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형제의 관계 속에서 약한 자를 업신여기거나 강한 자를 비판하는 일을 삼가 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이 모두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조금은 부정적인 당부를 한 바 있다.

오늘은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좀더 적극적인 면을 격려하는 내용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믿음이 약한 자들 못지않게 중요한 권면은 강한 자의 자유나 담대함이 약한 자들을 실족시킬 수 있고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근본 정신인 사랑으로 행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서 오는 병패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의 중요한 주안점은 비록 약할지라도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고 세우셨기 때문에 구원의 주체가 그 약한 형제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지나치지 말라는 경계였다면 오늘 말씀의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는 두려운 책망이다.

물론 이러한 권면은 약한 자보다는 강한 자로 자신의 신앙의 확신으로 약한 자들을 고려하지 않는 과도한 자유의 사용 때문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는 주님의 사랑의 정신을 역행하는 처사이므로 그러한 자기 중심적인 독선보다는 사랑을 따라 행해야 할 당위성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말씀 속에는 중요한 두 주제가 포함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정의와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라는 신앙인의 삶의 대주제에 대한 증거이다.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성경과 함께 하나님을 오래 섬겨왔다고 하는 것이 자긍심이 되어서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당시의 불우한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이고 정죄했던 것처럼 자신은 온전히 믿음을 좇아 하지 않으면서 교만한 오랜 신앙의 연륜을 우리 자신들의 모습에서 같은 양상을 보게 되는데 역시 그렇게 교회를 들락거린다면 다시 21세기의 바리새인으로 정죄 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의 자유나 담대함 보다는 약한 자를 배려하여 자신의 자유로울 수 있는 행동도 자제하는 사랑으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서 하나님께는 영광을 우리 자신들에게는 희생으로 오는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



Ⅰ.사랑으로 행하라!(13~16)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우리는 이미 앞에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는 말씀을 들은바 있다. 사랑하는 대상 앞에 올무를 두어서 넘어지게 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도 없다. 그러나 어두움의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막13:22)는 경고를 듣는다. 그러므로 ‘형제 앞에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두는’ 사람은 사랑의 사람들로서의 행동이 아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고 하여 자신의 자유를 형제를 위하여 희생하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최초의 이방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실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를 보내시기 위하여 준비시키신다. 제 육시 기도시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행10:11~13)

그러나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던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14) 했더니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행10:15)는 주님의 말씀을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를 청하러 사람을 보낼 때까지도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였다.

이때까지도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 조차 구약에 금지된 음식들이 복음시대에도 여전히 금지되었다고 단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사도인 베드로가 그 정도라면 오늘 연약한 우리들이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복음시대의 사람들은 율법에서 금한 것들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이 확실하다. 다만 덕을 위하거나 양심의 문제나 무엇보다도 형제들의 관계를 해치는 문제가 아니라면 거의 금하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먹는 문제를 자신이 해결 받았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신앙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면 자제하는 것이 사랑의 삶이라는 말씀이다. 앞에서도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2)고 한 것처럼 신앙의 깊이나 경륜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어떤 대상이든지 늘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배려하라는 것이 성경의 명령이다.[술 한잔]

주님께서는 그 약한 자를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는데 우리는 먹는 문제 하나를 절제하지 못해서 실족 시킨다면 분명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15)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도 같은 경계를 주고 있다.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전8:11)

비록 우리가 자유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16)는 말씀과 함께 그 자유를 사용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5:13)고 당부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형제나 자매를 넘어지게 하고 실망시킨다면 그것도 오래 신앙을 했다고 하면서 그렇다면 아직도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며 그를 위해 고난 당하신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약한 자녀들을 서로 견고히 서도록 붙들어 주고 격려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를 세우고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다.

귀한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무엇보다도 우리 육신의 기준으로 영혼의 사람을 실족 시키는 어리석음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자유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서로 종노릇하여 사랑의 법을 성취하는 …



Ⅱ.하나님 나라를 바로 이해할 것을 일깨우신다.(18~2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이 귀한 교훈은 우리 모두가 지향하고 있는 영광의 나라가 어떤 것임을 교훈 하는 중요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7) 이 부분을 좀 특이하게 번역하는 곳이 있어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우리가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예수의 평화를 이룩하며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롬14:17-현대어)

1.하나님의 나라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극락]이니 [천당]이니 하는 것들은 육신의 좋은 것들이 아니다. 그곳은 영적인 것이고 무엇보다도 신령한 것이다. 때로 이 천국을 차지하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은 도리어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즉, 육신의 것들을 절제하며 싸우는 삶을 산 사람들이 역사 속에 많이 있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모든 육신의 누릴 수 있는 것들까지도 포기하는 그야말로 천국을 목표하고 사는 사람들과, 또 다른 하나는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와 능력과 약속을 이 땅에다 실현하려고 온 갓 방법과 수완, 심지어는 영적인 것들까지도 동원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나 영생은 아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5)

2.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이 말씀은 일단 ‘천국은 영적이다’ 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천국은 먼 것도 아니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쉽게 말하면 삶의 질의 차이일 뿐이다. 영생과 천국은 같이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 인들이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지 못하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오해하고 있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요한 복음의 두 군데에서 주님께서는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요12:50f) 하시고 다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이러한 천국의 바른 이해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8)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적인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 누가는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고 기록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부터 바르게 가질 필요가 있다.

어찌 보면 오늘의 그리스도 인들끼리는 물론이고 세상과의 많은 싸움들은 거룩함이나 의를 위한 것들보다는 이 땅에서 더 좋은 것을 먹고 마시고자 하는 일들의 경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태반이다. 여기에 태연한 사람들이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게” 되고 형제를 위하여 자매를 위하여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21)

이 땅에서 좋은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다 누리려고 발버둥치지 맙시다. 그것은 하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세속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바울은 다시 디모데에게 이 사실에 대해 경계를 주고 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3~5)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영광은 아직 미래적이며 현재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7) 오늘 우리 안에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지를 점검합시다!

천국의 바른 이해만이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21)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회복할 것이다.



Ⅲ.모든 것을 믿음을 좇아 행하라!(22~23)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우리 모두는 [죄]를 생각할 때는 세상의 윤리나 도덕 규범을 어기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렇다. 물론 일반적인 죄의 양상은 그렇게 나타난다. 그러나 신앙 속에서 죄로 다루어지는 것들은 보다 더 근본적이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4:17)

엄밀히 말하면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해야 된다는 의식을 가지면서도 하지 않는 것조차 죄라고 규정을 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사랑하라, 기도하라, 전도하라, 예배하라, 기뻐하라, 감사하라!”는 명령이 지켜지지 않는 것 즉 적극적이지 못한 것들도 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하나님께는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없다고 하는 입장에서 더 큰 감사를 갖게 된다.

결국 사람에게 있어서 의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한 십자가의 희생을 자신의 것으로 믿고 최종적으로는 그 희생의 십자가에 자신을 함께 죽이고 거듭나는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를 힘입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참소하는 마귀를 향하여서나 세상을 향하여 주님의 성령과 더불어 의를 위한 하나님을 위한 선한 싸움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의 가진 확신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그 영향으로 다른 신앙의 사람들을 상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자책하게 되고 힘겨운 때를 지내기도 하는 경우가 믿음이 깊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가끔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믿음을 과신하고 겸손하지 못한 경우에 있게 되는 일들이다. 그러나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22) 라는 의미는 좀 다르다. 자신이 약한 형제를 위하여 먹을 것을 절제하고 마실 것을 금한다고 그 가진 확신에 손상을 입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담대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4~5)는 확신으로 만물을 자신으로서는 거리낌없이 취하지만 그것으로 믿음이 약한 자들을 상하지 않기 위하여 잠시 소신을 접어둔다고 해서 자신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확신이 흐트러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감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믿음을 좇아 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또 그럴 때만 지속적으로 담대할 수 있다. 요한 사도도 같은 격려를 주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요일3:21)

그러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자들은 먼저 된 자들이 믿음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바른 판단이나 확신도 없이 강한 자들의 행동을 모방하게 될 것인데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같은 권고를 본다.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고전8:10) 물론 이것도 먼저 된 자들의 책임이다.

그리고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23m)고 말하고 결론적인 말씀을 증거 한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23b) 신앙의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따르거나 감정을 따르거나 이성을 따르는 것 보다는 믿음을 따라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미쁘신 교훈을 따라 행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광과 믿음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모든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굳게 만들고 그 “하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상호간에 까지도 경계를 갖게 되어 관계를 얼어붙게 만들기 때문에 “업신여기지 말라!” 거나 “비판하지 말라!”를 관계의 틈을 만드는 주문조차 별다른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사랑으로 행하라!”는 적극적인 당부를 주면서 사랑이 미치는 빛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 나라를 바로 이해할 것을 당부한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닌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영적인 가치를 바로 누릴 때, 이로써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게 되고 화평과 덕을 세우는데 힘쓰게 되며 오히려 형제를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희생하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사랑 때문에 권리를 양보하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니며 신령한 하나님 아버지와 희생의 십자가를 근거한 믿음을 본 삼지 않고 행하는 모든 것들 그것이 인간 사회에서는 좋게 보이는 것들조차 죄라는 깊은 경계의 말씀을 주고 계신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1~2)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모두를 강권하시는 음성을 믿음으로 듣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