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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행 10:34~48 2008-09-21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때를 따라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베드로는 자신은 이해되지 않고 내키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이끌리어 고넬료의 가정으로 가게 되었고, 여태껏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예들인 하나님의 유일하게 택하신 유대인들과 조금 진보하여 사마리아인 들에게 까지는 복음을 전했지만 전혀 이방인으로 복음을 듣기 위하여 준비된 고넬료의 친구들과 친족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은혜를 전하게 된다.

비록 억지로 끌려오긴 했지만 이들의 진지함과 존경심에 놀랐고 무엇보다도 베드로를 놀라게 한 것은 오순절 날 자신들에게 임하셨던 동일한 모습과 역사로 그들에게 내려오시는 성령의 능력이었다.

이제 베드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게 되었고 나중 이 일로 예루살렘의 다른 사도들로부터 문책과 힐난을 받지만 베드로 자신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이방인 구원에 대한 역사를 부정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이 고넬료의 가정에서의 복음 증거도 처음 오순절 날 예루살렘을 찾아왔던 동족들에게 전했던 복음과 다르지 않음을 본다. 비록 길이에 있어서는 간략해졌지만 그 내용면에서는 너무도 명료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과 구속의 십자가와 부할, 그리고 이 땅에 심판 주로 오실 것에 대한 분명한 구원의 증거를 나눠준다.

진실한 하나님 종들은 대상이 누구이든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구원의 역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임을 최초의 이방인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또 한번 배우는 것이다.

인류 구원의 영원한 주제, 모든 죄인을 생명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은혜와 그 은혜에 순종하는 자들은 출신과 가문과 지식 무식을 막론하고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때문에 우리는 세상적으로는 좀 부족해도 괜찮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는 세상에서 자랑하는 것보다 더 큰 순종과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Ⅰ. 인류구원을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34~38)

세상일들에는 통로가 여러 가지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안되면 사과 상자에 돈을 몇 상자 싣고 가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통로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을 부르시는 다른 통로는 없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만나시는 유일한 장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서 뿐이다.

왜냐하면 창세이전부터 하나님은 이것을 예정하셨고(엡1:3~14-교회예정) 범죄한 인류에게 이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창3:15)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 받았다는 유대인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고 성령의 사람 바울은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구원예정의 과정이라고 말씀하신다.(롬11:25b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1.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를 목적하셨다.(34~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여태껏 베드로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표면적인 사실만을 인정할 뿐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이방인에게까지 미치리라고는 결코 예상치 못하는 가운데 갇혀있다가 비로소 이 고넬료의 가정에 오기까지의 겨우 몇 일 사이에야 이것을 깨달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 하시고” 자신은 여태껏 외모로만 사람을 대해왔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잘 못 된 것인가를 이방인들 앞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미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롬2:11)고 고백했고, 하나님의 구원을 입었다고 말하면서도 사람을 외모로 대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야고보는 그것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하다.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약2:9f)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취하시지 않으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35) 외모나 출신 성분을 따져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인류는 고사하고 오늘 이 자리에 남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나님의 구원은 온 인류를 목표로 하신다. 각 나라 중에 하나님 두려워 할 줄 알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것을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할렐루야!

2. 이스라엘의 자손을 통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36~37)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이스라엘 즉, 택하신 백성을 통해서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것은 그들만 구원으로 택하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를 보내실 통로로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사실이다.(아브라함-단군)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만 이것 몰랐으니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두운 격이다.

하나님은 범죄하여 원수가 되어 있는 인류를 자기와 화목 시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라고 증거하고 있다. 먼저는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의 예언처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5) 하신 것처럼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37)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이방인들 조차 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3.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온 인류의 상태를 선언하시길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시14:1~3)

결국 이 지상에 많은 성현군자(聖賢君子)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는 허물투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는 누구도 구원될 수 없는 죄인들일 수 밖에 없었고, 죄의 결과로 죽음으로 갈 수 밖에 없지만 구약의 기름부음을 받은 세 가지의 직책의 완성 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는 성령을 넘치도록 부으심으로 비로소 오염되지 않은 온전한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그대로 가지신 유일한 분이셨다.

아버지께서 함께 계심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는 아름다운 결과들을 나타내심으로 서 그분이 이 인류를 구언하러 오신 메시야 이심을 친히 증거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 증거들은 사실 주님께서 이루실 최종적인 목적이었던 대속의 십자가에 비긴다면 지극히 작은 조각들에 불과했다. 육신으로 계실 때 만나는 사람들마다 질병과 마귀에게서 자유 하게 하셨지만, 사실 그것은 인류 모두를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죄에서 자유케 할 은혜의 역사에 비긴다면 국소적인 것에 불과 했다는 말씀이지만, 사실 이러한 이적과 능력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분이 인류의 메시야 이심을 증거하신 것은 사실이다.



Ⅱ.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39~43)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38) 죄에 잡힌 인간은 사실 착한 일을 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마귀가 지속적으로 인간이 착할 수 있도록 버려두지 않기 때문이고 죄인이 행하는 선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해 준다고 해도 그 사람의 착함으로 다른 사람의 운명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바꿔주진 못한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하신 것은 당시 주님을 육신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할 뿐이었기 때문에 제한적인 사역이셨다면 십자가의 희생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온 우주와 역사의 시작과 끝까지 미치는 놀라운 능력이 된다.

1. 나무에 달리셔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39~40)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신” 것을 친히 목격하였을 뿐 아니라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하였고 무엇보다도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즉, 인류를 위한 대속적 죽음에 대한 증인이라는 사실이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3b) 주님께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십자가 형에 달리셨든지 아니면 다른 나무 형틀이든지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대신 우리 모두의 저주를 당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죽음에 매여 있을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40일 동안을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내심으로 저주를 정복하신 주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2:24) 역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에게 친히 사심을 나타내셨다. 그것도 항상 안식 후 첫날에 부활의 몸을 친히 보이셨다.

2. 죽고 사심의 증인들을 통해서 전파되신 예수.(41~42f)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무분별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심을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 미리 택하신 충성된 그의 종들에게 보이실 뿐 아니라 부활한 몸으로 친히 식물을 드심으로써 부활 된 몸의 신비를 확인케 하셨다.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눅24:41~43)

이런 큰 확신을 주신 후에 비로소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42) 저 유명한 至上最大命令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f) 이 사도행전 서두에서 주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 하신 당부도 역시 같은 명령이셨다.

그리고 오늘은 그러한 같은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신 우리들을 통해서 이 귀중한 역사는 세상 끝날까지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는 자긍심과 감사를 바울처럼 거질 필요가 있다.

바울 못지 않게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던 우리에게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라는 감격을 함께 가지는 …

3. 믿는 자를 구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42b~43)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이렇게 나무에 달리심으로 저주를 받은 바 되셨다가 부화하여 우리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고 그의 충성된 증인들을 통하여 그때부터 지금과 그리고 이 세상 끝날까지 전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 역사에 꼭 한번 다시 오시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히브리서 기자의 증거처럼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이러한 내용을 누가도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하여 동일하게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42b) 이 말씀은 역사 속의 귀중한 믿음의 증거이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심판할 때의 육신적인 의미도 물론 있겠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는 증거처럼 믿음으로 산 자들과 생명을 갖지 못한 죽은 자의 심판자로 나타나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무엇보다는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43)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가문에 낫기 때문이거나 잘 생겨서이거나 재주가 좋아서이거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할렐루야!



Ⅲ. 듣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이루심.(44~48)

앞에까지의 증거된 복음은 베드로 사도가 어디에서나, 어느 때 증거한 다른 메시지와 다르지 않은 중심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과 부활, 그리고 이 역사에 심판주로 다시 오실 복음의 핵심을 증거한 것이었다면 이 부분은 증거된 진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진리에 응답하는 사람들에게 내리시는 은혜의 역사로 이것은 적어도 베드로 사도가 오순절 날 받은 성령의 은혜와 꼭 같은 것이었다.

다음 시간에 이 부분을 다시 보게 되겠지만 베드로 사도는 이 상황을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행11:15)고 증거하고 있다. 즉 베드로 사도가 말씀을 증거할 때 고넬료의 가정에 내려주신 성령의 선물은 처음 오순절 날 사도들이 받은 성령과 다름이 없었고, 이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주님을 모시고 섬기던 성령을 약속 받은 사도들 즉, 이스라엘에서 그것도 선택된 사람들과, 최초로 이방인으로서 구원에 들어가는 고넬료의 친구와 가족들이 조금도 다르게 취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 듣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는 주님이시다.(44~46)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즉,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과 그리고 심판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여기는 적어도 성령께서 인격적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또다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는 바울의 가르침을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방법은 전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그것은 꼭 사람들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주시는 분께서는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한 기존의 약속의 백성인 유대인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45~46) 그야말로 예상 밖의 광경에 넋을 잃고 마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마치 ‘아니 하나님께서 어쩌면 이렇게 하실 수 있는가!’ 라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 이유는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때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처음 믿음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 사람들처럼 놀랄 때가 있다.

사람으로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특히 그것은 자신들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신비한 하늘의 언어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 상황을 접하면서 아마도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던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6)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짐승처럼 취급하던 이방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짐승처럼 살던 사람이 변화를 받아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베드로 사도가 말했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34b~35) 라는 고백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2.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한 순종으로 완성된다.(47~48)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오늘날 우리는 이 사건을 확대해석하기도 하고 또 계속 되는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교회의 역사에 귀중한 하나의 분기점을 찍으면서 유대인들의 생각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이 차별치 않는 사람이면 우리도 차별치 말아야 하지 않느냐’는 모습이다.

또 사람들은 ‘이러면 다 되지 않았겠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충성된 말씀의 순종자들은 순서가 바뀌었어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48)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경우에도 이루어지고 지켜져야 함을 배운다.

어떤 경우 하나님은 차별치 않으시는데 사람들이 차별하는 경우가 있고 신앙의 어떤 것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것에 묻혀서 지나치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순종되어야 하고 그럴 때 주님의 약속도 분명히 그의 것이 될 수 있다.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48b) 이것은 구원 받은 감격을 쉽게 놓지 못하는 은혜 입은 자들의 모습이다. 여기에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처음 교회의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인류구원을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이시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를 목적 하셨다. 그러나 그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통해서 오셨다. 그리고 이 땅에 오셔서 범죄하지 않는 사람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나무에 달리셔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죽고 사심의 증인들을 통해서 전파되신 예수. 믿는 자를 구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것은 언제나 복음의 핵심이다.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이루심. 듣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는 주님이시다.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한 순종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