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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행 15:12~21 2008-12-21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길리기아 안디옥의 이방교회에서 발생한 복음 속의 율법문제는 사도들과 장로들을 비롯한 예루살렘교회의 신앙적 지도자들의 토론이 있은 후에 적어도 두 사람의 대표에 의해서 의견이 정리되는데 이방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임재를 직접 본 베드로 사도의 증언이 지난 주의 말씀이었다면 육신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였던 야고보에 의해서 구약의 예언이 인용되고 복음과 율법의 문제는 마무리 됨을 본다.

특히 이 회합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복음과 함께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연거푸 증거하고 있다.

지난 주의 말씀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4) 라는 내용을 보았고 베드로의 의견을 들은 후 다시 바나바와 바울의 이방세계에서 복음과 함께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듣는 내용으로부터 오늘 말씀이 시작되고 있다.

야고보를 통해서 인용되는 구약성경에서 이미 주신 교훈은 오늘의 복음 속에서도 혼란을 잠재우고 구원의 섭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사랑의 언약임을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적어도 어떤 것도 헛점이 없이 완벽하다. 하나님은 벌써 몇 백 년 전에 이미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아시고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해답을 두셨던 것이다.[성경 속의 해답은 보물섬 지도와 같지 않다.]

오늘 우리 시대의 모든 혼란과 무질서의 해답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해결책이 있다. 그런 이유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적어도 없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언제나 세상 속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알량한 인간의 지혜로 풀어보려고 하는 데서 한계를 느끼게 될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말씀과 성령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우리의 문제를 완전히 맡긴다면 능히 해결되지 못할 문제가 없음을 이 말씀을 통해서도 말씀하고 계신다. 적어도 하나님께 가지고 가지 말아야 문제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영역에 아무것도 없다. 비단 여기에 나타나는 신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가 다 주님 앞에 맡겨야 할 과제들이고 그럴 때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이다.

바울을 통해서 주신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말씀을 뒤집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하다.

우리 각자의 삶의 문제이든지 신년도 교회의 계획이든지 기도와 함께 말씀 앞에 맡기고 그 응답이 무엇이든지 순종하여 더욱 확신에 찬 인생이 되고 하나님의 간섭을 받는 삶이 되시기를…



Ⅰ. 이방인 중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야고보의 답변.(12~14)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구구한 이론이나 교리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미 이루신 역사가 더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베드로를 통한 교훈도 물론 성령을 통해서 주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바나바와 바울로 말미암아 복음과 함께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야말로 하나님께서 저들을 받으셨다는 분명한 증거일 것이기 때문에 많은 토론이 있는 중에도 바나바와 바울을 통하여 이방세계에 이루신 구원의 역사야말로 저들의 수만은 논쟁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증거였다.

때문에 12절의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라는 모습은 보다 진지한 예루살렘 교회 토론자 모두의 모습을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또 한번의 보고가 있은 후, 구약성경에 능숙한 야고보를 통하여 이 문제의 해결책을 구약의 예언서들 중에서 찾는 진지함을 나타내고 있는 모습이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13)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야고보는 내 말을 들으라 했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14) 앞에서 고넬료의 가정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한 베드로의 간증이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을 받으심의 시작이라는 이론이다.

이러한 자세는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한 후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베드로를 대하던 다른 사도들과는 상당히 다르고 진지하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헬, 디아크리노(diakrino), 철저하게 분리하다, 반대하다, 다투다, 구별하다, 의심하다, 판단하다]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행11:2~3) 前後左右를 들어보기도 전에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먹었다는 사실만을 공격했지만 오늘 본문의 야고보는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14) 라고 바나바와 바울을 통한 보고와 베드로 사도의 권고에 귀를 기울일 것을 당부하고 있다.

언제나 일을 망치는 것은 사람들의 다급함이나 진리를 따른 판단이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얽힌 실타래도 조금씩 펼쳐두고 찾으려 한다면 능히 끝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예루살렘교회는 이방세계 속에서 있었던 전도의 현장보고를 자주자주 듣고 있는 것이다.

또 야고보는 자신의 의견을 내기 전에 먼저 베드로 사도의 의견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 속에서도 깊은 신앙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믿음의 사람들의 회합조차도 난장판이 되는 이유는 모두 자신을 세우려고 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을 본다. 결국 신앙적 모임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높이고 세우려 한다면 그 아래에서 섬겨야 할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고백하고 주님을 높이는 사람을 역시 존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모습 속에서 바나바와 바울의 보고를 듣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과 베드로를 세워주는 야고보의 모습은 오늘 우리시대의 귀감이다.



Ⅱ. 이미 구약에서 주신 이 문제의 해답.(15~18)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두 번째로 생각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 사건에 대하여 야고보가 인용하는 구약성경의 말씀이다.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15) 구약의 말씀이 이방세계에서 있었던 구원을 보고하는 바나바와 바울의 보고와 시므온이라고 말하는 베드로의 생각과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모스가 예언한 ‘그 날’이 바로 지금임을 뜻하는 말이다.

이 16~17절의 말씀은 아모스9:11~12의 인용이다. 그대로 읽으면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키고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미 바울은 13:22~23에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증거한바 있다.

하나님은 북쪽 이스라엘과 연합하여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 범죄하는 여호람 왕 때에도 다윗의 위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등불을 끄지 않으실 것도 예언한 바 있다.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저와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왕하8:19)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다윗에게 남쪽 유다의 왕통을 이을 자식을 계속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마침내 다윗의 후손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고 그 약속은 후대로 갈수록 희미하게 무너져가고 만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한번 주신 언약은 버려지지 않고 보다 큰 이스라엘 즉, 유다가 아닌 세계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을 위하여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16) 라는 예언을 주셨던 것이고 우리 개역성경에 인용된 신약성경의 내용과 구약본문의 내용이 조금 차이가 있는 것은 LXX역과 야고보가 구약 아람어나 히브리어 본문을 인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은 완벽한 약속의 장막을 지으셨지만 불순종하는 백성들이 틈을 내었고 법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그 법을 받은 범죄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율법이었기 때문에 새로 일으키는 약속된 다윗의 장막을 통해서 인간의 불완전한 틈까지도 하나님께서 완전히 틈을 막으셔서 이제 율법 아래 나지 않은 모든 인류가 다 믿음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여호와의 허락하신 기업을 얻도록 하겠다면 약속이다.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9:12)는 말씀은 하나님의 거룩한 복의 약속을 가볍게 여겨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고 子子孫孫이 하나님의 복의 울타리를 떠나버린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물론이고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약속 때문에 사실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다.

만국백성 즉, 세계모든 민족과 종족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구원의 장막에 들어 올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로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면서 베드로의 고넬료 가정을 비롯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 복음에 돌아온 이방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18) 이러한 언약이 이들의 시대에 갑자기 있어진 것이 아니라 옛 선지자의 때로부터 이미 알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이시라는 확인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이미 과거의 율법 속에서 선지서들을 비롯한 구약성경 속에서 이미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다만 바울의 고백처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고후3:15) 라고 깨닫지 못하는 이유를 말한 다음에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후3:16)고 증거한다.

이것은 성경을 대하는 모든 불신자들의 모습의 비유이기도 하다. 그들이 성경을 읽어도 그들의 기존에 가진 것이 진리를 가리기 때문에 성경 속에서 생명의 주님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이왕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진 수건과 같은 진리와 생명을 가리는 모든 불신을 벗어버리고 이왕에 다시 세우는 다윗의 장막,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생긴 틈을 막고 누추하게 된 것을 완전히 수리한 복음 속의 귀한 약속을 풍성히 누리고 나누는 …



Ⅲ.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의 결론.(19~21)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세상의 모든 종교는 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자유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진리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거하는 것으로부터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주님의 혈육의 형제였던 야고보는 권위적인 명령보다는 의견을 표현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19) 히브리서 기자는 복음 속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권면하기를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12:1) 라고 당부한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20) 그러나 자유 한다고 무질서가 아니다. 분명히 절제할 것은 있으나 그것은 현 사회 속에서도 비 도덕적이고 비 위생적으로 건강을 해치는 것들이다.

나중에 이를 전하면서 다음 주에 보게 되겠지만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행15:28~29)는 당부를 전한다.

요즘 어떤 사람들은 이것조차도 이젠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까지 하지만 분명히 이것은 오늘도 여전히 복음 속에 있는 자들에게 요긴한 것들임을 알아야 한다. 구약성경의 많은 금지법령이 있지만 적어도 할례를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고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을 못 먹는 것도 아니고, 강과 바다의 생선들 중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만을 먹는 것도 아니고 오직 이것만 요긴하다고 부탁한다. 다음 이시간에 ‘요긴한’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도록 하자.

우리는 오순절 날 천하각국으로부터 오순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모여든 유대인들을 봤지만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는 마치 중국의 화교들처럼 천하 각국에 유대인들은 흩어져 있었고 유대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었고 이를 잘 알고 있던 야고보는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21)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Conclusions :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전부터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고 바울은 이방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게 선언하기를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1:4, 11) 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도구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사람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려고 이 선택된 민족을 통하여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 받았다는 한가지로 교만하고 자신의 종족이 아닌 사람들을 개처럼 취급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자존심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것 자체도 사실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오묘한 주님의 섭리라고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고백한다.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맛보고 감격하는 것을 인하여 유대인들의 시샘으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트집으로 인하여 사실 예루살렘 회합은 이루어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성령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이방세계의 구원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리고 그들에게 자신들도 감당치 못했던 율법을 강요하지 말 것을 결의하여 전하게 한다.

나아가서 바울은 율법적인 절기에 따라 믿음생활을 하려고 하는 이방인들조차 이러한 관습에 돌아가려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탄식하기를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9~11)고 안타까워 함을 듣는다.

이방인의 구원은 이미 이스라엘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기 전, 물론 아브라함에게도 이 약속은 확인하셨고(창12:3…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아니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약속된 것이고 오늘 인용하고 있는 아모스를 비롯하여 많은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했던 사실이고 무엇보다도 고넬료로부터 시작된 이방인들을 받으시고 유대인들과 꼭 같이 성령을 주심으로 이를 확인해 보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구원 속에 돌아오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는 자들에게 이 예루살렘에서 가결한 요긴한 것 외에는 어떤 종교적 짐을 지워도 안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는 약속처럼 그리스도 안에 이왕에 허락된 영육의 자유 풍성히 누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