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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수 1:5~9 2009-11-08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모든 지구촌의 사람들이 온통 신종플루로 공포를 겪고 있다. 그렇다고 믿음의 사람들은 질병이 피해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땅 위에 발을 디딘 체로 육신을 입고 사는 신앙의 사람들도 피해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하늘에 속한 사람들의 다른 점은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약속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면 불신의 사람들처럼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바울의 확신을 같이 가지고 고백하게 되는데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 질병과 고통과 비극을 향하여 감히 선언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바로 앞 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7)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쉼 없이 본문의 말씀으로 용기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 어느 순간엔가 세상에 묻혀 살다 보면 이 엄청난 약속을 송두리 체 잊어버리고 불신의 사람들처럼 함께 두려워하고 걱정하는데 말려 들어가 있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하곤 한다.

또 하늘의 순례자요 이 땅의 나그네들인 우리는 이 세상에서만 하나님의 복을 받고 안전하고 형통하는 것으로만 곧잘 가르침을 받고 있다. 하늘의 영광에 이르도록 주신 힘과 능력을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얻고 지키는데 모두 소진해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의 안전만을 자랑하고 보장하고 없어질 복에 너무 집중하여 신령한 하늘의 복에는 너무나 무감각해져 있지 않는가 하는 안타까움도 가지게 된다.

야고보는 이에 대하여 분명한 증거를 주고 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6~17)는 당부를 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에 가져올 온전한 복은 아직도 하늘에 있다고 베드로 사도는 증거한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1:4~5)

우리가 마지막으로 받을 상급은 아직 우리가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고 그것을 주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사주신 것이요, 주님께서 이 역사의 마지막에 온전히 가지고 오실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시 우리에게 당부하기를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1:13) 라고 격려하고 다.

그럼에도 하늘의 시민인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어느 곳에든지 주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누리고 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그래서 신앙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전혀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나그네로 거쳐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가나안에 아직 들어가 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게처럼 미지의 세계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기 때문에 오늘 읽은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은 과거에 모세게 주셨던 약속인 동시에 오늘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약속이다.



Ⅰ.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보호 없이 인생을 사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것이다.(오늘의 운세) 어떻게 하나님의 보호 없는 삶을 사는가! 주님의 보호를 누리고 사는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깝기조차 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십자가의 희생을 치르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올라가시면서도 여호수아에게 주신 같은 약속을 주셨는데 어찌 보면 더 영원한 약속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이 주님의 언약은 어쩌면 오늘 우리가 읽은 여호수아를 통하여 주신 말씀과 그렇게도 같은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9b)

하나님은 그의 보호에 대한 약속이 한번도 지켜지지 않은 적이 없다. 어떤 조건이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입으로 내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셨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그의 충성된 사람들이 증거하고 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두려워 외삼촌 집으로 도망하던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창28:15)셨던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 약속을 지키셔서 나중에 “…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창32:10) 라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느부갓네살의 어명을 거역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정절을 지켜낸 유대 청년 세 사람은 자신을 불순종의 형벌로 평소보다 일곱 배를 뜨겁게 달군 풀무 불에 집어 던지겠다고 협박하는 왕을 향하여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7) 라는 고백처럼 “…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단3:27b)는 결과를 볼 수 있다.

자신을 모함하여 죽이려는 법령이 선포되었음에도 자신의 믿음을 굴하지 않다가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 역시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단6:23b)는 기록을 볼 수 있고 성경에 나타난 이런 일들을 다 말하면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처럼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히11:32)

여기서 우리가 취할 중요한 약속은 이렇게 믿음의 선진들에게 함께 하셨던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즉,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또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던 그 주님께서 오늘 나와 함께 하실 주님이시다. 믿습니까?



Ⅱ. 그러나 이 약속에도 단서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이 엄청난 약속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 조건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이거나 사람이 받기에 전혀 불가능한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신 것을 받아 들이는 자세라는 데서 인간의 일이나 공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약속은 분명히 인간 측에서 무엇을 해서 받는 것은 조건이 없기 때문에 은혜라고 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기뻐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약속은 결코 힘겨운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30:11~14)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것과 순종하겠다는 자세에 달려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모든 사람이 다 받지 못하는 것일까! 원리는 복잡하지 않고 너무나 단순하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4:6)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7b~8)

“곁눈질 할 필요가 없고,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니, 형통하리라”는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

역시 이것과 더불어 함께 주어지는 명령은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6f)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7f)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9) 세 번씩이나 강조되고 있다.

앞에서도 인용한 바 있지만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약속에도 이 조건은 분명히 주어지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우리가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한다면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할 대상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자연을 두려워하고, 환경과 처지를 두려워하고, 경재와 경기를 두려워하고, 질병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의식하지 못하면 우리를 둘러친 모든 것들이 두려움투성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은 믿음을 수행하는 데 결코 장애가 될 수 없는 것들이다.



Ⅲ. 주님과 더불어 걷는 인생길은 안전하다.

왜 주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모든 믿음의 선진들과 우리들에게 이런 약속을 주실까! 그것은 인생이 만만치 않음을 말씀하고, 특히 신앙의 삶은 더욱 스스로의 힘으로는 감당치 못할 것임을 전제로 말씀하고 계시다.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함께 하지 않으셔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텐데, 왜 요단 강만 건너면 바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에 두고 이런 약속을 여호수아에게 확인하시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마찬가지인 것은 신앙의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 쉽지 않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우리 스스로 힘들어 하고, 괴로워하고, 엎어지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그야말로 별 쇼를 다하는 경우가 만은 데, 사실 그런 모든 것은 이런 약속을 주신 주님을 임마누엘로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와 “왜 너 홀로 감당하려고 고생하느냐 그 문제를 나에게 맡겨라!” 말씀하시지만 세상을 향한 두려움에 귀가 막혀버려서 그러한 주님의 음성도 듣지 못하고 괴로움을 스스로 감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하셨음에도 우리의 짐, 특히 신앙하는 것으로 인하여 오는 짐까지도 우리 스스로 지고 끙끙거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늘 이 약속이 여호수아에게만 주어진 약속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주신 약속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하여 당부하시기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이 약속이 그냥 듣기에 좋으라고만 주신 말씀인가! 그렇지 않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처녀로서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전할 때 도무지 가당치가 않아서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34) 할 때도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 말씀하신 주님의 약속은 모든 믿는 자에게 역시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오늘도 꼭 집고 지나가야 할 것은 “형통하리니, 형통하리라”는 약속은 어려움을 전혀 만나지 않는다는 약속이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광야를 거치지 않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 아니라 광야를 거치더라도, 그 전갈과 불뱀이 우글거리는 그곳에 함께 하셔서 광야를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원리는 오늘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시는데 장애가 되지 못하고 천국을 위한 일에 방해가 되지 못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늘 장애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적인 기준에서 판단하고 재는 우리 인간의 하찮은 믿음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부정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한 [네 하나님, 너의 하나님]이 되셔야 그 사람의 인생에 역사하실 수 있고 은혜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각자에게 네 하나님이셔야 나 여호와로 역사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