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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2:1~11 2010-09-26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  
바울 사도는 예배의 중심인 주의 만찬을 가볍게 여기는 것에 대해 경계를 준 후에 분파심이 많고 지체의식을 제대로 갖지 못하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신앙 안에서 서로를 지체로서 인정하고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것도 영적인 존재들이 되어야 가능함을 가르치는 내용이 이 12장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과거 죄의 사람 그대로는 불가능하고 새로운 영의 사람으로서만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미 2:14에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했듯이 신앙은 모두가 육적인 기준에서는 바로 볼 수 없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영적으로만 바른 판단과 관계가 가능한 것이다.

교회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서로가 육신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대부분이 친척도 아닌 남남의 관계일 뿐이지만 물과 피로 거듭난 사람들이라면 역시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육신의 관계보다 더 영원한 귀중한 관계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이기에서도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하신 거듭남의 중요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

특히 오늘 본문은 교우들의 관계에 관한 교훈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자주 사용되고 있는 표현이 “신령한 것에 대하여, 영으로 말하는 자, 성령으로, 성령은 같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따라, 같은 성령으로, 한 성령으로, 한 성령이 행하사” 등등 그야말로 영적인 역사와 영적인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모두가 같은 성령의 인도와 보호와 주동적인 교통으로 영의 관계, 천국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영원의 세계에 까지 이끌려가는 관계와 신앙적 삶이 되시기를 …



Ⅰ. 어리석은 우리에게 신령한 것을 알게 하셨다.(1~3)

여기서 바울의 표현은 고린도 교우들이 아직 신령한 것과 육적인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한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바울의 간절한 소망은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꼭 알기를 원한다”는 표현을 더 강하게 권면하려고 부정의 부정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은 모든 상태나 관계를 영적인 관계가 아니라 육신적으로만 이해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렇게 안타까운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1)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언제나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고 당부 하신다. [호6: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육체적 욕망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을 뜨기를 원하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신적인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도 아는데, 영적인 것은 손에다 쥐어줘도 알지 못하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제발 우리의 관계가 그냥 세상 기준에서 아는 관계가 아니라 영원에까지 가는 영원의 친척관계임을 알기를 소원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신령한 것 즉, 영적인 세계를 알기를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냥 肉的으로만 안다면 일반 죄인의 죽음이고 로마정부의 반란자로, 죄수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자체를 영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랬고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눈을 뜨고 알아지는 것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다”는 것뿐이다. 이제 ‘말 못하는 우상에 끌려갔다’는 것을 겨우 깨닫는다고 해도 그것은 영적인 쪽에서는 아직 어린아이 수준이다.

아직 신령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 못하는, 그래서 죄악과 어두움에 끌려가면서도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라고 조심스럽게 가르침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알게 함에도 알지 못한다면 더 이상 구제책이 없다.

사실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으로 저주를 받아 사형을 당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어두움의 영들에게 잡힌 자들만이 자신의 죄를 위하여 대신 저주를 받은바 되신 그리스도를 까닭 없이 저주하고 “예수” 소리만 들어도 비상처럼 싫어하는 것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어떤 사람도 성령의 인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도마처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라고 고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관계도 우리의 목표도 사업도 공부도 육체대로 알지 않고 영적으로 성령을 통해서 이해하기를 원하신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5:16)고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관계하는 …



Ⅱ. 여러 가지 영적인 것들은 한 주님으로부터 주어졌다.(4~7)

은사, 직분, 사역은 여러 사람이 각각 다르게 감당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만 온다.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대로 직분을 나눠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동참한다. 또 이렇게 은사대로 맡겨진 직분과 사역이라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다. 결국 여기에 [여러 가지]와 [모든 사람, 같으며, 모든 것]이 대조되고 비교된다.

은사, 직분, 사역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에 자랑해서도 안되고 세속적인 것이나 肉的인 유익을 위해서 써서도 안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받은 것에 불만을 갖거나 과신할 것이 아니라 주심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3~5)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6) 사람들 가운데 거듭난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은 분이기 때문에 비록 사람이 다르고 생각과 모양이 달라도 행하는 일은 통일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우리는 성경의 기록의 통일성에서 이 신비를 경험한다.

무엇보다도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7)고 증거하고 있다. 주어진 모든 은사들이나 직분이 주신이의 의향대로 사용되므로 먼저는 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 영광이 돌아가 유익이 되어야 하고, 이렇게 분명한 질서를 따라 사역하므로 합력하여 교회에 유익이 되고, 모든 사역자들 또한 서로 덕을 세워서 서로에게 유익한 사역이 되는 것이다.

은사나 하나님의 일을 성령의 주도로 감당한다고 믿고 확신하는 꼭 같은 고백으로 유익하게 하는 것 역시 주님의 분명한 지시이다.



Ⅲ. 모든 은혜들은 주님의 뜻대로 나눠 주신 것들이다.(8~11)

하나님의 나라에서 은사와 사역의 다양성은 유익을 위해서 이고, 하나님의 주도와 뜻으로 주어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나중 이 뒤 부분에서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29~30)고 화합과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이 역시 바울 사도께서 자신에게 맡겨진 것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로마서12:6~8에서도 비슷한 권면을 주고 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우리 몸의 많은 지체들의 역할의 차이만큼이나 다름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으로 발 노릇을 한다면 잠깐은 몰라도 계속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물구나무)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계속해서 “어떤 사람에게(7회), 다른 사람에게(2회)” 이것은 어쩌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도 관련되어 있는 듯이 이해된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11) 이모든 것은 ⓐ한 성령의 주도와 ⓑ하나님의 뜻대로 ⓒ나누어 주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원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받은 은사에 대해서 감사할지언정 불만은 없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최용덕 : 주님 왜 저를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주님 저를 버리신 겁니까? 주님 왜 저 사람을 더 사랑하십니까?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까? 그날 밤 주님께 나는 울며 따졌었네, 그러나 주님 내게 고요한 음성으로 말씀해주셨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공평하단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모두 다 사랑한다. 공평하게 사랑한단다. 내겐 누구나 소중한 자녀(보석) 나의 피로 값 주고 구원했으니, 어느 누구라도 내가 버릴 수 있으며 외면할 수 있으랴 영원히 영원히]

주님은 우리가 모든 것들을 신령한 눈으로 볼 수 있기를 소원하신다. 여러 영적인 은사나 사역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진다. 이모든 것을 주시는 것은 유익하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주어졌으므로 거기에 합당하게 쓰여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