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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8:1~11 2011-09-18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성경 속의 어떤 이야기보다도 유명하고 귀한 말씀이면서 언제나 은혜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고 비극적인 죄의 인생들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이면서 심판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의 시작은 언제나 그러셨듯이 감람 산에 기도하러 가셨던 주님께서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오셔서 가르치시는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데 상징성을 두게 된다.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오르셔서 만 인류의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 하시고 계신 주님께서 이 역사의 죄악의 어두움이 끝나고 광명의 아침에 심판의 자리에 앉으셨을 때 죄인을 정죄하시고 성도들을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게 하실 구원 사역의 완성의 시간을 바라보게 하신다.

오늘 현재는 정죄 당해도 괜찮고 죽을 사람으로 내몰려도 괜찮지만 광명한 그 아침에 재판장이신 주님께 정죄를 당한다면 영원히 소망이 없는 비극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 여인과 같은 경험을 통하여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Ⅰ. 정죄를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3~6f)

①죄인들은 자신의 죄의 무서움을 모른다.(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바리새인들도 여인도 죄의 두려움을 몰랐다.

②주께서 오시기까지 의 거룩한 문서인 율법은 죄인을 정죄할 뿐이었다.(4~5)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고후3:6~7)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

막가는 이 여인의 인생을 자세히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이면서 불쌍한 인생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이 여인은 바로 온 인류를 상징하고 있다. 아니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우리 자신들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이 여인은 자신이 주님을 죽이는 올무로 사용된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③간악한 인간군상들은 하나님의 아들조차도 죽이려고 다구친다. (5b~6)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Ⅱ. 돌을 들어 던질 만큼 의로운 사람은 없다.(6b~9f)

①죽일 죄인 앞에서도 죄에 대해 침묵하시는 주님을 본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6b),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8) 그것은 정죄보다도 자신이 담당해야 함을 각오하시는 것이다. 어쩌면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하여 죽이고자 하는 간악한 무리들은 기회를 잘 잡았다는 양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그치고 있지만 아무일 아니라는 듯 주님께서는 땅에 무엇인가를 쓰시고 계셨다.

②땅에서 끝날 인생들 자신들도 정죄 받아 마땅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정죄하기를 끝이지 않는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7f) 이들이야말로 저주로 흙에 기록할 자들이고 밀려오는 파도 앞의 모래사장에나 기록될 허무한 인생들일 뿐이다.

땅에 비석을 남기고 가는 것은 영원 속에 아무 의미도 없다. 생명록 책에 반드시 이름이 기록되어야만 한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렘17:13)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4:4)

③인간은 누구나 주님 앞에서는 정죄의 돌을 던져버릴 수 밖에 없다.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7b)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9)



Ⅲ. 주님과 일 대 일의 만남이 필요한 것이 죄인다.(9b~11)

죽을 것을 각오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이 여인의 옆에는 의인인체하는 바리새인들도 돌을 들고 왔던 군중들도 다 떠나고 오로지 눈물과 머리카락에 가려 희미한 주님의 모습뿐이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의 큰소리지는 사람들의 소리도 요란한 군중들도 없는 내 모습 이대로의 자신과 불쌍히 여기시는 연민에 찬 눈으로 나를 보시는 주님의 고요한 만남이 필요할 것이다.

비록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오가고 친구들을 따라 교회를 오가는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만남은 반드시 있어야만 할 것이다.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죄의 비극에 심각하게 노출되었던 이 이름없는 여인, 죄에 대한 심각한 위기감과 함께 눈을 감아 버렸던 이 여인 그러나 그 절망 뒤에는 다행히 주님께서 홀로 서 계셨다.

①한 순간이나마 자신의 죄의 비극을 완벽하게 볼 수 있었던 여인이 있다.(3~7)   ②죄의 고발자들을 물으셨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10b)   ③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의 용서의 은총을 경험한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11m) 어쩌면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로 우리를 정죄하는 자들을 영원히 쫓아버리셨다.   ④그러나 구원 받은 삶을 살라는 주님의 당부를 듣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b)

이 사건은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사건이다.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절망을 보고, 주님을 만나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는 귀중한 은혜 체험의 모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