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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시 42:5~11 2012-12-23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가?  
이 찬송은 찬송을 전담했던 고라의 자손들이 지은 시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막에서 섬기는 사람들이고 철저한 신앙의 사람들이다. [고라의 증손 에비아삽의 손자 고레의 아들 살룸과 그의 종족 형제 곧 고라의 자손이 수종 드는 일을 맡아 성막 문들을 지켰으니 그들의 조상들도 여호와의 진영을 맡고 출입문을 지켰으며(대상9:19)] 이렇게 신앙의 사람들도 위로가 필요하고 낙심할 수 있음을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찬양하는 사람들인데 이들도 낙심할 수 있다는 것을 본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도 신앙에 있어서는 만족과 기대보다는 사실 안타까움과 서운함이 더 많고 기대와 설렘 보다는 오늘 시편의 본문처럼 오로지 주님의 더 큰 격려와 역사를 기대하게 된다.

오늘 v5의 내용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5)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11)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43:5)는 차이뿐이고 나머지는 다르지 않다.

주변의 사람들과 자연만물 그리고 흥에 겨운 음악소리조차도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는 음악이 오히려 귀찮고 듣기 힘겨울 때가 있다. 지금 이 시편기자가 그런 안타까운 상태에 있고 이런 것 때문에 자연의 화답조차도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런 이유에서 솔로몬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잠25:20)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함에도 신앙의 사람이었던 고라의 자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를 기억하나이다!” 라는 고백이다.

오늘 우리 각자도 바울의 고백처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3:16)는 것처럼 현실에서 만족하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최선의 해결책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상황과 형편이 안정되지 못하면 낙심하고 불안해할 수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될 때 여전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Ⅰ. 낙심이 되면 모든 것들이 다 힘겹게 하는 것 같다.(6~8)

(6)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라고 주님을 부르는 것으로 봐서 분명 주님과 가까운 관계 속에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히, shahah, 가라앉다, 풀이 죽다, 낙담되다.] 되므로” 라고 절망하는 것을 연이어 보게 된다.

지혜의 사람 솔로몬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고 기록함으로써 사람의 심령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거해 주고 있다.

1. 약속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를 기억하는 것 외에는 안타까움 뿐이었다.(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2. 자연이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니다.(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3. 낮에도 인자하심을 바라고 밤에도 기도할 수 밖에 없이 긍휼을 구하게 된다.(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Ⅱ. 탄식 속에서는 대적들조차 비방하는 것처럼 보인다.(9~10)

(9)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주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 같고 대적들조차 비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한번 약속하시면 손해가 날지라도 지키시는 불변하시는 반석이신 하나님을 믿고 맡기고 산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잊으신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9f) 우리의 삶이 세상에 치우치고 고단해지면 우리는 하나님을 마치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당한다.’고 푸념할 때가 많다.

그러나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다만 세상이 변하고 나의 감정이 변하고 우리의 상황이 변할 뿐이지 우리 주님은 결코 변치 않으시는 분이시다.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9b) 이 탄식 역시 우리의 상한 감정 때문일 뿐이지 하나님께는 어울리지 않는 투정이다. 욥이 시험을 당하고 3친구들의 힐난을 받으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때도 주님은 욥의 곁에 변함없이 함께 하셨던 주님이시다.

다윗은 시편 두 곳에서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시138: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될 뿐이지 하나님의 약속과 원칙은 불변하신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서도 여기에 분명한 확신을 주고 계신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10) 우리가 가장 힘겨울 때 뼈가 쑤신다고 표현한다. 우리가 건강하고 잘 될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마치 어두움의 권세자들이 비웃는 것처럼 느끼고 그것이 신앙하는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이 된다.

언제나 영적인 대적자들이 우리를 비웃는 표현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욥의 아내) 결국 이 말의 좀더 직접적인 이해는 대적자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네가 그런 일을 당하게 버려 두시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것이다.” 라는 것인데 결국 이것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편에는 이러한 표현이 더러 나타나고 있는데 “하나님은 없다.”(10:4, 14:1, 53:1)는 형식으로 비아냥거린다. 그나마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결국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된다는 생각이 더욱 견디기 어려워 뼈가 쑤시는 것 같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대적들이 비방하는 것으로 나 자신이 느끼는 것에서 역시 이런 시험에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가 주님 앞에 믿음으로만 산다면 어떤 어려움과 아픔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확신으로 서야만 할 것이다.

주님의 사랑하시는 자도 어려움 당할 수 있고 고난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이 최종적으로 선을 이룬다(롬8:28)는 것이 우리 바른 믿음의 사람들의 확신이다.



Ⅲ.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찬송하게 될 것을 기대하라.(5, 11, 43:5)

(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1)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3:5)

결국 이런 시험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와 기대를 가져야 하는 가가 오늘 말씀의 핵심이자 결론이다.

우리가 낙심하고 불안한들 사람을 창조하시고 교제하시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잃어진 것만큼 아플까! 독생자를 십자가에 그 범죄한 인류를 위해 죽이시는 것만큼 아플까!(참아 보실 수 없으셔서 3시간 동안 어둠이 임했던)

여기 “영혼[히, nehfesh]”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사용되는 낱말이다. 생물, 혼령, 마음, 심령, 갈망, 정신, 숨, 동물, 신체, 사람, 욕망, 식욕 등등.

우리의 마음은 세상 속에서 언제나 갈등하고 또 어려움을 당할 때 낙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다른 점은 낙심하고 불안해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1. 그럴 때 더욱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2. 주님을 바라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타나 주실 것이다. “그가 나타나”

3. 도우실 것이다.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4. 여전히 찬양하게 될 것이다.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5. 여기에 반드시 “나는, 내”가 순종 되어져야 하고, 드려져야 나의 낙심이, 불안이 여전한 찬양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분량만큼 허락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