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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막 14:37~40 2013-11-17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본문의 배경은 안타깝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고민하고 슬퍼하시면 하나님 아버지께 땀이 핏방울처럼 힘겹게 기도하시는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로 응원할 것을 부탁하시고 기도를 하시고 돌아오셨을 때 있었던 안타까운 상황에서 있었던 모습이다.

오늘도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는 동일한 당부를 주고 계시다. 어두워가는 역사의 황혼녁에 신앙에 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안타까워하시며 같은 말씀을 주고 계신다고 믿는다. 바울 사도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1~12)

오늘 이 말씀은 믿음을 삶에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거나 위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 그대로를 합리화 하지 말고 하나님의 허락하신 은혜를 인하여 깨어있는 신앙을 격려하기 위해서이다.

주님께서는 경계의 교훈을 주셨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막13:22) 베드로 사도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라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날 온 갓 건전치 못한 거짓교훈들이 우리를 자신들에게로 끌어들이기 위해 血眼이 되어 있다.[여호와의 증인들의 혼란] 주님께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려는 시점에 제자들을 경계하고 교훈 하셨던 것처럼 오늘 같은 경계로 교훈을 삼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는 …



Ⅰ. 본래는 영의 지배를 받게 지어졌다.(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것은 사람의 구조와 움직임의 원리를 가르치는 귀중한 교훈의 말씀이다. 땅의 흙으로, 히, aphar(마른 흙, 먼지, 티끌) min adamah, - [땅의 티끌(먼지)]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9)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창18:27)

創造時부터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지어진 것이 사람이다. [불어넣다, 히, naphach, 훅 불다, 불을 붙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 (창1:26f)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7)

창조의 목적도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b)

사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인 사람은 작은 우주요 거대한 화학공장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심에는 전혀 하자가 없으셨고 그만큼 기대도 크셨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31절에 보는 대로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는 말씀과 함께 창조의 사역이 마무리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로 성경은 어느 곳에도 사람을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곳이 없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전7:29)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14:2~3)하였고 바울 사도는 이를 그대로 로마서에서 인용하고 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롬3:10~18)

결국 하나님의 지배를 떠나 독립하려고 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온 이류에게 비극을 가져왔고 거기에는 하나님을 거역한 악의 세력이 개입되어 있다.

이 작은 우주요 거대한 화학공장인 사람 각자는 이것을 가장 적절하게 운행하는 지침서인 하나님의 말씀의 manual(사용법) 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면 또 하나의 위험한 동물에 불과할 뿐이다.[도심출몰 멧돼지보다 위험한 것은 바른 지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는 동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원리를 안다고 하는 신앙하는 사람들조차 과거 에덴에서 선악과를 지키지 못하고 거역한 하와와 아담처럼 영적인 지침인 말씀을 거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사람 되게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주님의 약속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Ⅱ.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37~38)

(37)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신앙 안에 있어 잔다고 하는 것을 성경은 주로 죽은 것을 의미한다.(살전4:13~15) 당시에 주님께서 세 사람을 따로 선택하셔서 데리고 가셨고 이 사람들은 평소에도 중요한 일에는 늘 주님께서 함께 하셨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였다.

특히 어떤 일에나 늘 앞서고 적극적인 首使徒라고 하는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안타까움으로 물으신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37b) 신앙인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자게 되는 가장 구체적인 예는 주님의 만찬과 더불어 경계되어지고 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11:29~30) 예배의 중심이 주님 희생의 기념인 주의 만찬이지만 귀중성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먹고 마실 경우는 오히려 영적으로 병들고 잠자게 된다는 두려운 경계를 주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마지막을 말씀하시면서도 잠자는 신앙이 많을 것을 아셨는지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눅12:37)고 귀한 경계를 주셨다.

교회를 중심 한 교훈인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5:14) 주님의 빛은 지속적으로 비춰주고 계시는데 거울이 되어야 할 우리가 죽은 자들 가운데 있다면 역시 깨어야 할 것이다.

본문이 그렇듯이 신앙의 사람의 깨어있음은 주로 기도와 연결 되어 지고 있는 것도 독특한 이치이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그런가 하면 마지막 주님의 재림을 증거하시면서도 깨어 있을 것을 당부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5:6) 마지막 우리에게 입혀주신 성결의 옷을 지키는 것도 역시 깨어 있어야 가능함을 경계한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16:15)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38f) 하셨는데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깨어 기도해야 하며[시험거리는 우리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바울 사도를 통해 말씀을 듣고 있던 청년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던 예도 우리에게 두려운 경계이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행20:9)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38b) 한 것은 결국 영혼의 소원을 육신이 가로막고 있는 영이 육에 지배를 당하는 비극적인 상태를 이름이다.

주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깨어 기도하셨다면 오늘 우리는 거저 주신 구원의 은혜를 지키기 위해서 옆의 지체를 위하여 복음을 끼치기 위하여 기도로 깨어있어야만 할 것이다.



Ⅲ. 영혼이 피곤해서는 안된다.(39~40)

(39)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제자들에게 부탁을 계속 해 보지만 그들은 결국 도움을 줄 수 없었고 예수께서는 아직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못하는 이러한 제자들을 원망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자신의 십자가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세 번씩이나 아버지께 간구 드리셨다.(히5:7)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40f) 했는데 당시에 바쁘게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이 피곤한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인 이해를 해 주시면서 권면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주님은 더욱 피곤하셨을 것임에도 주님은 깨어 기도 하셨더니 이러한 주님을 천사가 도왔음을 읽을 수 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눅22:43)

“…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40b) 어쩌면 이 말씀이 미래 역사의 더 두려운 마지막을 생각하게 하여 안타깝다. 이번에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으로 계면쩍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혼인예식에 청함을 받았음에도 예복을 입지 않고 참여한 사람과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마22:12)

우리가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움에도 여전히 영적인 잠에 빠져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면 제자들의 이러한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영적인 운동을 함으로 영혼이 육신에게 져서 파리한 모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주님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육신에 살 수 밖에 없지만 그 육신에 잡혀서 영혼이 맥을 못 추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승리케 하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으므로 영으로 육신을 지배해 가는 영의 사람들로 주님의 재림을 맞을 수 있는 …

그럴 때 비로소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는 약속을 주님께서도 지키실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