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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10~15 2013-12-29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가장 강한 결집은 같은 사상과 같은 목표 그리고 같은 동력 즉, 같은 힘에서 가능하다.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교회는 여기에 철저했고 이것을 방해하려는 어두움의 세력을 철저하게 응징하는 것에서도 하나를 지켜가는 모습을 잃지 않았음을 배운다.

주님께서 육신으로 살아 계실 때부터 강조하셨던 교훈이셨지만 유대인들은 물론 인류를 위한 십자가의 희생을 삶의 바탕으로 삶고 그 희생을 통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것이 교회의 목표였고 그 힘은 사람의 처세술이나 정치적인 힘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해 가는 거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시는 역사를 사도행전 속에 배운다.

그러므로 승천 직전에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당부하신 마지막 당부도 역시 이러한 말씀이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이후 사도들은 당시의 헬라 철학이나 로마의 정치행정력 보다는 주님의 이러한 당부를 철저하게 순종함으로써 교회는 어디에서나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은 확산되는 역사가 적어도 이 원리가 깨어질 때까지는 지속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은 쉽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슬로건을 자주 말하면서 하나를 지켜가려 하지만 이 말만으로는 공동체는 변함없이 움직여 갈 수 없다. 이유가 무언인가! 이 구호에는 먼저 같은 생각, 즉 思想의 일치가 전제되지 않으면 모인다고 해도 모래무더기에 불과한 것이 오늘 정치판도를 봐도 이러한 이치는 쉽게 나타나고 있다.

환원의 교회는 철저하게 ‘그리스도(말씀)로의 그리스도(말씀)에 의한 그리스도(말씀)를 위한’ 모습이어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 속에서 화원운동은 이런 면에서 실패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리스도에 의한’ 자세로부터 떠나 여러 가지 다른 방법들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방향조차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고린도 교회가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이러한 부분을 철저하게 지적하고 있다. 고린도전서를 열면서 각 분파를 지적한 다음에 인간의 지혜로 교회를 운용하려는 것들을 2장까지 지적해 가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은 적어도 인간의 최고의 지혜인 똑똑함에 있지 않고 어리석은 것 같지만 성령과 말씀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 원리는 과학의 최첨단을 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바뀌지 않았다.

고린도 교회의 이러한 인간 지혜로 신앙과 교회를 움직여가려는 시도는 당시의 사회적이나 문화적으로는 당연했던 이유는 헬라 철학이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추앙 받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바울의 말이 당시로서는 더 호소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이 역사의 황혼녁에 선 우리 대한민국의 환원운동을 하는 교회들이 차별화를 잃어버린 이유는 말씀을 순종하고 주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이단이라고 하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같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사람들의 요구를 하나님의 명령보다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오늘 날 구세군 교회는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상으로부터도 인정되고 있고 비길 바는 아니지만, 분명히 누가 보아도 건전치 못한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들은 이단이라는 평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그들의 세력을 넓혀가면서 세계로 나가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오늘은 말씀을 읽은 순서대로보다는 당시의 고린도 교회로부터 들려오는 분열의 사실과 거기에 대한 바울의 당부를 생각하는 것으로 상고해 보도록 하자. 이래서 제목을 잡은 10절을 맨 마지막에 다루고자 한다.



Ⅰ. 어떤 경우도 분파는 곧 분쟁이다.(11~12)

(11)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대개의 경우 분쟁은 겸손한 모습보다는 우월감에서 나타난다. 자신을 언제나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구별하려는 데서 발생한다. “나(우리)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다.” 세상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세상과 구별된 교회 속에서는 이런 일은 겸손의 모델이 되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가 되어야 자신을 다른 죄인들과 차별화를 선언 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 조차도 “아버지 나는 저런 죄인들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내가 어찌 저런 더럽고 못난 것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하나요!” 하셨다면 오늘 이 세상에 소망이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빌2:6~7)다고 기록되고 있다.

자신의 기도와 헌신으로 세워진 교회로부터 좋은 소식이 아니라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은 참담한 심정으로 그들의 분파심이 결코 신앙에서 온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글로에의 집 편으로” 라는 소식통이 교회일수도 있고 집안일수도 있겠지만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는 내용은 바울로 하여금 슬프게 하였을 것이다.

여기 “분쟁[헬, eris, 언쟁, 투쟁, 불일치, 다툼(롬13:13)]”은 하나되어야 할 교회의 가장 비극적인 모습이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의 나눠짐은 수가 많아서 나눠지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하나님나라의 대적들의 간교한 부추김 때문이지 성령의 역사는 절대로 아닐 것이다.

사탄은 인류 최초에도 하와를 이간질하여 하나님과 아담 사이를 나눠 놓았고 희락의 동산인 에덴에서 아담부부를 나눠 놓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교만한 사람들을 부추겨서 바벨탑을 쌓게 한 것으로 인류를 흩어지게 만들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회복된 오순절 이후에 성령의 역사로 하나되려는 교회를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있다.

고린도 교회 속에서는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12) 라는 나름대로 고린도 교회에 영향력을 많이 끼쳤다고 생각하는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 하려는 잘못된 생각이 교우들 사이를 내고 각각 다른 말을 하게 되는 원인을 만들게 되었음을 본다.

이 내용은 어찌 보면 바울과 아볼로를 먼저 거론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순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에 함께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수사도 격인 베드로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까지 들먹이고 있음을 본다.

오늘 날 세계 속의 모든 교파들이 성경 그대로 같은 말과 가르침을 가졌다면 오늘 수백 개의 교파는 있지 않았을 것이다.[for Ex. 밥티즈마] 그러나 이런 넓은 범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같은 가르침과 주장을 해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이고 오늘 대한민국에 덩그런 히 남은 우리우리 교회이다.

모든 분쟁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음을 확신한다면 우리 교회 안에서라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같은 말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것이 나를 살리려면 불가능하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내가 죽으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Ⅱ. 세례조차도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되기 위한 출발이다.(13~15)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역설적으로 세례 자체가 바로 새로운 의의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나라에 시민이 되는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하면서 그 세례가 자신으로 인해서 행해지지 않았음에도 왜 분열이 있어야만 하는가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14절에 바울 사도 자신이 세례를 베푼 사람들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 문맥의 중요성은 13b절과 15절이다.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즉 바울이라는 이름이 거듭남에 남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죄의 대속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남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훌륭하다는 사람이나 요단강에서 담아온 물에 세례를 받았음을 자랑하기도 하는데 바로 된 세례라면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감격하고 기뻐하는 자세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흩어짐에서 완전히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이 되게 하는 방법이 세례라는 방법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가르치신 방법 그대로가 중요함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성경의 말씀 그대로가 아닌 것은 다 사람의 생각이나 편리에서 나온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교만이라는 죄성 때문이다. 사람들은 ‘뭐 방법이 중요해!’ 하는데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Ⅲ. 같은 말은 같은 사상에서만 나온다.(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사랑하시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진지한 부탁을 하고 있다. 비록 자신의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향하여 호소하고 있다. “형제들아!” 어쩌면 바울의 가장 애절한 요청을 할 때마다 이런 명칭으로 부르고 있음을 본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한 피로 맺어진 사랑과 우정을 담고 마음의 가장 바닥에서부터 겸손으로 요청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권면에 있어서도 가장 높은 권위에 의지하여 당부하고 있다. 이것은 적어도 바울 사도 자신의 바램이나 호소가 아닌 믿음의 절대적인 이름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헬, parakaleo, 격려하다, 권고하다, 간청하다, 탄원하다]” 단순한 주님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죄인을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구속을 이루실 뿐만 아니라 하늘에 오르신 절대적인 고린도 교회와 바울 사도 자신과 우리 모두의 구주가 되시는 즉, 우리를 우리 되게 하신 거룩한 이름으로 권면하고 당부하는 것이다.

또 한 곳의 이러한 당부는 데살로니가후서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헬, paraggello, 전언하다, 선언하다]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는 명령이 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사람의 생각은 다 다르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것을 아는 바울이 왜 이런 권면을 하고 있는가! 바울이 그만큼 사람들의 특성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두 사람은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이면 같은 말을 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논리에서는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불가능한 이치는 다음의 표현에서 가능하게 된다. “♡같은 마음과”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행하셨다. 거기에 따라 바울 사도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고 빌립보 교회에 당부하고 있다.

“♡같은 뜻으로” 이 말씀 역시 우리 주님께로부터 배운다. 물위를 걸으실 수 있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며 문둥병을 낫게 하실 수 있고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으신 주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30) 하신 고백이다.

거기에다 “♡온전히 합하라”[헬, katartizo, 완성하다, 수리하다, 조정하다, 맞추다, 회복하다] 하였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살전3:10)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완전히 하나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말씀 사이에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 “분쟁[헬, achisma, 틈, 간격, 분할, 갈라진 틈]”이다.

주님과 나 사이에 결코 틈이 생겨서도 안되고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도 역시 틈이 생겨서는 안된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7)고 할 때 비슷한 말을 하고 있고 있다.

새해에는 모두 같은 말을 합시다. 전도자와 교우들이 형제와 자매들이 집사와 직분자들이 모두가 같은 말을 해야 호소력이 있다. 같은 주님 같은 하나님 아버지 같은 성령 같은 성경을 기준 삼아 섬긴다면 같은 말이 나와야 한다.

이만희나 안상홍씨는 성경이 아닌 말을 함에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앵무새같이 그들의 교주의 말을 흉내내기에 바쁘다. 그렇다면 진리를 순종하는 우리 모두는 더욱 그래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온전히 비우고 교우들 간에 틈을 가져서는 안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뜻으로 온전히 합할 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