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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욥 23:10~14 2018-02-18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나오리라!  
이 역사 속에서 주님 다음으로 가장 큰 시험으로 단련을 받은 사람을 꼽으라면 욥일 것이다. 이 욥은 하나님께서 단련하시기 전에도 이미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들 하나님께서 직접 선언하셨다.

“…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1:8) “…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2:3)

하나님의 욥의 인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으신다. 범죄한 나라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20)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욥은 범죄하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어쩌면 사단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사탄에게 놀림을 당하실 일은 절대로 하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욥의 흔듦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이 바뀌시지 않으실 것이고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이러한 원리는 바뀌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보실 때나 사람들 보기에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시험 당할 확률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오늘 고통 중에 역시 시험과 고통을 당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같은 이유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우리의 고백으로 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Ⅰ.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단련하신다.(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혹독한 시련을 당하는 단련을 허락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너무나 우리 자신들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감당치 못할 사람을 시험과 환란에 내주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 이 고백은 하나님을 신뢰는 모든 참된 하늘의 백성들의 고백이다. 이런 확신 때문에 어떤 시련과 아픔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시작과 갈 길을 아시는 우리 주님은 ①주님은 우리가 가는 길을 이미 알고 계신다고 기록하신다.

욥의 이 고백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우리 각자의 인간됨을 너무나 잘 아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삶의 길이와 삶의 방법과 삶의 목표를 이미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의 고백은 욥처럼 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 라는 고백에는 나의 믿음의 분량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②믿음의 분량대로 단련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백은 바울의 선언과 다르지 않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그러므로 믿음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려고 하는 대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당한다면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 나의 믿음을 크게 인정하셔서 이렇게 단련하심을 감사 드립니다.”라는 고백을 드릴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히브리서 기자도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12:6~8)

그러면 왜 그렇게 충성되게 사랑하려고 하는 자신의 백성에게 힘겨운 고난을 겪게 하시는가 하는 의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욥은 모범 답안을 가지고 있다. “…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아무리 귀한 보석도 다듬지 않으면 가치를 높일 수가 없다.

아무리 크고 영롱한 다이아몬드도 겉의 돌을 갈아내지 않으면 빛나지 않기 때문에 보석공의 세심한 세공의 과정을 거쳐야 영롱한 광채를 볼 수 있다. [단련, ּבָּחַן, (금속들을) 검사하다, 조사하다, 증명하다, 유혹하다, 시험하다] 물론 원석(原石)이 중요한데 사람을 하늘의 보석으로 다듬을 수 있는 좋은 원석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믿음’ 즉, 충성됨(딤후2:2) 이다.

우리가 금보다 귀한 충성된 믿음만 품고 있다면 우리 하나님이야말로 사람의 육신적인 부분을 다 갈아내시고 영롱한 빛의 사람으로 다듬으실 수 있는 최고의 보석공이시다.

그러므로 “…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고백은 ③더욱 아름답게 하시려고 단련하신다는 확신으로 맡겨드릴 필요가 있다.

또 다른 “…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고백은 ④최종적으로는 빛으로 나타나게 하실 것이다. 본래의 사람은 죄로 인하여 어두움에 익숙해 있고 영광스럽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단련하심을 따라 하나님과 같은 빛의 사람으로 다듬어져 갈 수 있다.

우리를 빛으로 단련하는 도구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서 주님과 같은 보배를 만드시는 것이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9)

베드로 사도의 격려를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6~7)

어떤 시험과 고통의 단련을 받고 있을지라도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욥과 같은 고백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선언할 수 있는 …



Ⅱ. 순종하는 경건한 자를 단련하신다.(11~12)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앞에서도 약간 그런 말을 했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아무나 단련하시지 않으신다. 하늘의 보석이 될만한 사람이라야 세공을 시작하시는 분이다. 욥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고백을 하면서 자신의 삶의 자세를 그대로 고백하고 있는데 이것이 두 번째로 다룰 우리의 주제이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11f) 이것이 욥의 일상적인 고백이었음은 시험 당하기 이전의 그의 삶에서 증거되고 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1:5)

이러한 그의 삶은 바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성결의 삶을 지켜가기 위한 최선의 자세였으므로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11f)라는 고백이 결코 말에 그친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대로 주님을 본 받는 삶을 이름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11:29f) 하신 명령을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라면 순종하여야 하고 이것은 가능할 때 뿐만 아니라 어떤 시간이나 조건 속에서 그래야만 한다. 바울도 격려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고 당부한 바 있다.

“…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11b) 그를 본 받을 뿐 아니라 그의 명령하신 곳에서 어그러짐이 없었음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앞에 둔 요단강 동편에서 이스라엘에게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신5:32)라고 명령하신 바 있다.

지혜의 왕인 솔로몬을 통하여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4:27)고 같은 경계를 준 바 있다. 바울은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2:15) 라고 당부하였다.

모세의 시대의 사람인 욥은 이미 율법시대에 “…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11b)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 11절은 삶의 방법에 있어 주님을 본 받는 삶을 이름이다.

그렇게 살 수 있었던 원인을 연이어 고백하기를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12) 했는데 삶의 경계와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고 귀하게 여긴 결과였음을 말하고 있다.

먼저는 조금은 소극적인 자세이지만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12f) 라고 한 것인데 솔로몬은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6:23)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3가지로 풀어 증거하고 있다. 욥이 고백하는 “그의 입술의 명령”은 어려워할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이해하게 된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12b)했는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때 이렇게 “그의 입의 말씀”을 귀중히 여길 때 영적인 삶이 바로 서게 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신앙의 사실이다. 혼란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데서 발생하게 된다.

같은 절 속에 “그의 입술의 명령” 또는 “그의 입의 말씀”은 우리를 빛 가운데도 인도하는 말씀이요 계명이며 인생을 지혜로 이끄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지키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교훈을 삶에 적용하려고 힘쓰는 삶을 이르는 것이고 이런 자세가 될 때 하늘가는 길이 밝은 길이 되며 어떤 단련도 기쁘게 여겨 거기에 자신의 삶을 기꺼이 드리는 자가 받을 평강을 누리게 될 것이다.



Ⅲ. 뜻을 이루는데 쓰시려고 단련하신다.(13~14)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많은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는 욥과 같이 인정받는 사람을 단련하실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귀중한 믿음의 영웅들은 한결같이 시험을 당한 것을 성경에서 보는데 그것도 욥과 같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시험들이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창22:1)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신실하셔서 믿음의 성장을 원하시고 단계를 거쳐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다고 확인 될 때 다음 과제를 맡기시는 분임을 아브라함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b)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시험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우리를 단련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임을 욥에게서도 보게 된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13) 이 역사 속에 그분의 계획을 이루시는 분으로 고백한다. 우리가 경배하고 섬기며 순종하는 하나님께서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변덕이 심한 부모나 선생도 안타까울 수 있는데 다행히도 우리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확인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계획이나 약속은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다고 욥은 고백하는 것이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13) 수 천 년이 지난 후에 세워진 교회도 이미 창세전부터 즉,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예정하신 것임을 성령의 사람 바울은 증거하고 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엡1:4, 5)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13b)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 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 사람은 아무리 좋은 계획도 상황이 바뀌고 시간이 바뀌면 바꿀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시고야 만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눅16:17) 하나님의 계획이 바뀌는 것보다 이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쉽다는 말이다.

이제 욥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좀더 자신에게 가까이 가져온다.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14f)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구세주로 오심을 계획하셨던 것을 이루심이라면 그런 구체적인 계획들이 모든 믿음의 사람들 각자에게 있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고백을 욥은 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이 역사에 뜻을 이루시기 위한 도구로 자신을 사용하기 위해서 귀하게 단련함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같은 고백으로 주님의 뜻을 받들어야만 한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이 21세기 대한민국 부산도성에 살고 있는 나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과 이루고자 하는 뜻을 아는 것 이것이 어쩌면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림 받은 우리 각자에게 가장 귀중한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귀중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계심에도 오늘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자신의 뜻과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고 영적인 허송세월을 보낸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인인가!

오늘 마지막으로 욥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다. “…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14b) 욥이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고 증거한 후에 다시 그러한 인생 개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님을 증거한다.

“…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14b) 이런 일은 하나님께 속한 모든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이유에서 욥은 우리 각자에게 단련 받는 나에게 ‘너를 향한 하나님의 일이 있다.’ 라고 일깨워 주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느 누구든지 그를 향한 주님의 계획이나 뜻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맡기신, 또 욥을 통한 뜻과 일을 가지고 계시다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나(우리)를 향한 일이 있다고 도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헛되게 듣고 나를 향한 일을 나를 통한 일을 모르고 인생을 살고 마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생이겠는가!

결국 하나님께서는 욥에게나 오늘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나 각자를 통한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단련하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신다.

훈련되지 않은 군대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없고 갈고 다듬지 않은 보석은 아름다움을 들어낼 수 없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단련을 당하는 욥은 고통이었고 어려움이었지만 이 사실을 깨닫고 난 욥은 오리려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단련시키심을 감격할 수 있었고 오늘 같은 입장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도 욥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보나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천국에 귀한 보화가 되게 하시려고 모양 없는 원석 같은 나를 단련시키셔서 불순물을 걸러내시고 마침내 천국에서도 귀한 가치를 가진 순금 같은 보화로 다듬어 가시는 것이 우리 각자의 신앙의 삶이다.

하나님은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을 귀한 음식보다 귀하게 여겨, 어기지 않으며 치우침이 없이 바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을 단련하신다.

이렇게 우리 각자에게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은 변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단련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통해 이루시려는 작정된 일들을 어떤 것에도 영향 받음이 없이 이루실 분이시기 때문에 오늘 나를 위해 작정된 일을 이루심에 상황과 시간에 관계없이 감사로 기꺼이 맡겨 드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