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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눅 21:34~36 2018-03-11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이 21장은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13장과 함께 예루살렘의 멸망과 이 역사의 마지막 즉, 주님의 재림을 다루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최후의 예언들이다. 이런 일련의 말씀들 뒤에 이 말씀이 주어지고 있는 것에도 많은 생각을 해야만 한다. 역시 마지막을 사는 주님의 백성들의 경성(警省)을 당부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역시 경계의 교훈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자연적이고 계속적이지만 그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각자의 책임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의 마지막인 최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데에서 시간을 그냥 흘리는 것 역시 모두에게 같은 길이의 시간을 주셨다는데 각자의 책임이 있다.

그런 이유에서 마지막이 가까워 올수록 시간을 더욱 합당하게 또 유용하게 사용해야 할 책임감도 가지게 된다. 그럼으로 오늘 이 당부의 말씀은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이 지구상에 임할 마지막을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명령하고 계시다.



Ⅰ.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다.(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주님께서 마지막까지 그를 따라 배우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당부를 주는 동시에 제자들과 같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 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같은 교훈을 주고 계시다.

‘너희는,’이라는 부르심은 하나님도 주님도 모르는 세상사람들에게 주시는 당부가 아니라 당연히 주님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당부임을 깨닫는다. 언제나 성경의 계명과 교훈의 말씀들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명령이다. 이렇게 ‘너희는’는 그의 백성들을 대상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덧붙여지는 ‘스스로’는 또 다른 의미로 생각하게 한다. 어떤 것이든지 남이 시키는 것도, 듣는 그 사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게 되는 입장에서 ‘너희는’ 보다는 범위가 좁아진다. 성경의 가르침은 각자에게 적용되어야 하고 거꾸로 말하면 순종하거나 복종하는 개인에게 유효한 약속이다.

그러므로 교회 속에서 주시는 주님의 당부이면서 각자에게 주시는 교훈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다른 많은 사람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 스스로의 선택과 순종이 중요하다. 같이 들은 말씀을 다른 누가 들어야 되는 말씀이기보다도 우리 각자 스스로가 듣고 순종해야 그 약속의 효력은 나에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사람 스스로에게만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

‘조심하라’ 역시 계단을 내려갈 때나 머리 위에 부딪힐 어떤 것들이 나타날 때 급하게 하는 말이다. “Watch out!” 밝은 대낮에 평탄한 길에서 건강한 사람에게는 조심하라는 당부를 사실 하지 않는다. 어두움이나 험한 상황에서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명령이 부모이든지 선생이든지 “조심하라!”이다.

가장 문명과 과학이 발달하여 최고의 편리를 누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계신 것이다. 육신의 온 갓 것들이 편리하고 풍요할 때 영적으로는 가장 안일하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어쩌면 믿음으로 살려고 각오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불편한 상황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당부하신다. 왜 이렇게 경계의 당부를 하실까에 대한 이유를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이 말씀을 앞의 말씀과 합쳐서 말하면 “너희가 스스로 조심하지 않는다면”이다.

그렇다, 믿음의 사람들이 “스스로 조심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를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방탕함과 술 취함과” 이것은 한 마디로 삶의 기준을 잃어버린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방탕[κραιπάλη, 술로 인한 메스꺼움, 술 취함]”과 “술 취함[μέθη, 중독, 과음] 같은 의미로 갈라디아5:21에서도 함께 나타나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므로 “방탕함과 술 취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잊어버리고 세상에 취하여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비유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세상일을 염려함으로 힘을 잃은 모습이다. “둔하여지다[βαρέω, 내리누르다, 짐을 지다]” 우리 주님께서는 언제나 어떤 형편에서든지 염려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이 중간 부분을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믿음의 사람이 주님의 이러한 당부를 잊어버리고 이 세상의 일에 너무 염려한 나머지 술 취함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 신앙의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쓸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세상의 염려를 해결해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어쩌면 이 말씀이 가장 핵심적인 경계의 내용이다. 짐승들도 덫은 주의하지 않도록 위장해서 놓을 때 걸리게 되어 있다.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잠1:17) 이라는 솔로몬의 교훈도 이것을 말하고 있다.

“뜻밖에”는 흔히 사용하는 말로 ‘갑자기, 홀연히, 예측하지 않은’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든지 주님의 재림이 예고되지 않은 체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럼에도 언제가 될지 준비하고 있는 유비무환의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성경은 가르친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5:4~5) 그런 이유에도 주님께서는 여러 번 “예비하고 있으라!”(마24:44; 눅12:40) 당부하신 바 있다.

은혜와 환희와 기쁨의 날이 주님의 뜻에 부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덫’이 된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지금 메시지는 불신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교훈이 아니라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데 더 큰 경각심이 있다.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완전한 구원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또한 두려운 덫에 치이는 것과 같은 비극이 될 수도 있음을 믿음의 사람들은 수시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4)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의 날을 기대하며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자가 스스로 조심하지 못하고 오직 세상의 염려로 믿음이 둔하여 주님이 아닌 술 취함과 같은 다른 쪽의 위로를 의지하는 믿음의 방탕함이 된다면 기대의 날은 오히려 비극의 날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이다. 이 말씀은 협박이나 위협이 아니기 때문에 이 순간부터 스스로를 점검하여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감격과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는 …



Ⅱ. 모든 사람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사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심이 믿음의 최고 절정이면서 복음의 완성이고 구원의 만료이다.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셔서 약 33년을 이 땅에 사시면서 죄인인 우리의 삶을 그대로 맛보시고 우리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희생되심으로 저주로 절망하는 죄인들에게 소망을 주셨다.

모든 사람과 다름을 증명하기 위하여 무덤에 장사 되었지만 3일만에 부활하시고 40일간 부활의 몸으로 그의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마침내 그를 순종하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승천하실 때의 천사들의 증거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하셨다.

그럴 뿐만 아니라 그의 다시 오심은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하였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복음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재림이 앞의 모든 복음 사역의 결론이고, 우리 믿음으로 복음을 순종하는 약속의 결과도 주님의 이 세상에 다시 오심이다.

그런데 그 재림이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이다.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라는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도 예외가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더 확실히 말하면 믿음의 사람이나 불신의 사람, 신앙이 바른 사람은 당연하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모든 사람이 당면하게 될 역사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역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시간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만나야만 할 사건이 될 것이란 말씀이다. 바울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공지하기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고 증거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눅17:24) 하셨고 다시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0~31; 막13:24~27

물론 이 역사의 마지막 두 번째 부활의 때는 ‘역사 속에 죽은 모든 사람들’의 형벌을 위한 부활을 말씀하시기도 하시는데 우리의 시간에서는 간격이 있다고 할지라도 동시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계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누구에게도 예고되지 않은 주님의 오심은 그야말로 홀연히 오시게 될 것이다. 우리 일상의 삶에서 맞게 될 이 재림은 어떤 사람의 사정 때문에 지체되거나 늦춰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다시 재림과 관련하여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0~41)고 영원한 운명의 갈림길을 말씀해 주고 계시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하셨지만 행여라도 신앙의 게으름으로 잠자는 믿음생활이 되지 말 것을 경계하셨다.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막13:36)

모든 사람이 바라건 바라지 않건 간에 맞게 될 주님의 이 땅에 다시 오심이라면 이왕에 기다림으로 준비된 만남이 되어서 최고의 감격과 기쁨의 순간과 영원으로 갈 수 있는 …



Ⅲ. 그런 이유에서 깨어 있어야 한다.(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이미 앞에서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막13:36)는 말씀을 인용한 바 있지만 여기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당부하심을 들을 수 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는 말씀에 이어지는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36f)이 지구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임할 일이기 때문에 사실 누구도 피할 수 없음에도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36m)라는 당부는 앞의 말씀과 모순이 되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맨 앞의 당부와 연결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34b) 즉, 이러한 당부를 마음에 두지 못하고 준비된 상태가 아닌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진”(34m) 상태에서 주님을 맞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경계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한 것처럼 주님의 재림은 이제는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오신다.

영광과 감격의 순간이고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인종이나 장소나 시간에 관계없이 최고 최종의 승리의 날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꼭 같은 이 사건이 비극과 절망과 좌절의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주님을 맞는 것을 피하라는 경계와 당부의 권면이다.

바울은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됨에 대해서도 이러한 경계를 고린도교회에 주고 있다.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고후12:20)

사람의 만남에도 서로의 안타까움과 원치 않는 모습으로 보게 되지 않기를 소원한다면 만물의 창조주요 구세주이시며 인류를 완전히 구원하시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뵙게 된다면 얼마나 더 비극이 되겠는가 하는 경계를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36m)라고 권면하고 있다는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자 앞에 서도록”이라는 다음 말씀은 칭찬받을 만한 신앙의 자세로 재림의 주님 앞에 나타나라는 당부이다. 정죄 받을 사람들은 이미 재림의 주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대로 두 번째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히9:28)시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아직도 이 일은 이루어질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그런 바람직한 자세가 되기 위해서 그 때까지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36b)

이것을 위한 특별한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의 모습처럼 어느 직장에 잘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학원을 등록하고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는 요령을 배우는 것은 적어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없다.

“…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36b) ‘항상[παντὶ καιρῷ, (모든) 시간, 순간, 늘]’은 신앙의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당부이다. 믿음 생활은 세상처럼 어떤 시간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늘 기도하는 것]이다. 같은 당부가 데살로니가전서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말씀과 꼭 같은 말씀이다.

함께 강조되는 한가지가 “깨어 있으라!”는 것인데 이 명령은 특히 주님의 재림과 함께 강조되고 있는 표현이다. 마태복음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에서 시작해서 공관복음의 재림과 더불어 계속 강조되고 있는 말씀이다. (재림의 내용에서만 마3, 막3 = 6)

“깨어 있으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표현 그대로 밤에도 ‘잠을 자지 말아라!’는 몰지각한 명령은 아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영적인 신앙의 잠을 자지 말라!’는 경계이고 이 경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경계임을 바울 서신들 속에서도 계속 당부하고 계시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우리 육신의 삶에만 집중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셔서 죽으시고 장사 지내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으로 올라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정해진 어느 시간에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 아버지의 변할 수 없는 약속이다.

우리 신앙하는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영원의 소망을 품고 오매불망 주님께서 다시 오실 약속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최종 약속이 바로 재림에 있다.

그럼에도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할 수 없는 삶이 된다면 안타깝고, 세상일에 너무 염려하여 마음이나 생각이 술 취한 것처럼 다른 것에 붙잡혀서 신앙의 잠을 자고 있다면 평생의 신앙의 삶의 최종 영광인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지 못하는 믿음을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격려하며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마지막 주님과의 만남은 1대1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고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될 주님 앞에 영광스럽게 서도록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절망과 슬픔을 피하고 영광의 무리 가운데 서도록 오늘부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