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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엡 3:5~9 2018-04-08
제목 : 함께 함께 함께 …  
모든 주님의 백성들은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면 예외 없이 복음을 위한 사역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꼭 같은 역할을 요구하시지 않으시고 각자에게 은혜주신대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하게 하신다. 처음부터 경계되는 것은 대부분의 구원받았다는 사람들조차 ‘은혜’나 ‘은사’를 말하면 꼭 신비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그런 것과 자신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잘못된 인식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 사도는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7)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게 되겠지만 이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구원받은 감격을 어떻게 감당하고 주님의 백성 된 역할을 행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특히 여기서 ‘은혜의 선물’이라고 할 때 ‘은혜[χάρις, 호의, 선물, 자비, 너그러움, 기쁨]’는 사람의 선행은 물론 어떤 자질이나 행위에 관계없이 주어진 ‘선물’을 의미하는 데서 바른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이 갖지 않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재주나 기술 그리고 소양을 말할 때는 ‘은혜, 은사’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이런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면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당연하겠지만 은사와는 분명히 다르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은혜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죄인이었던 사람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순종하여 거듭남으로 복음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각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이차적인 자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이것이 꼭 신비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교회의 직책에 이런 은사들이 사용됨을 롬12:3~8에 기록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롭게 창조된 거듭난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그것이 믿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타고난 재주이건 복음을 받아 들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차적인 선물인 ‘은사’이든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불쌍한 생명들에게 자신과 같은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데 합력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볼 때 일이나 소질이나 가진 어떤 것이든지 제한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의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자신의 보이는 것이든지 보이지 않는 것이든지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 각자가 가진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찾아내고 개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Ⅰ. 인류를 구원으로 부르시려 복음을 주셨다.(5~6)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첫 번째로 우리에게 감격적이고 찬양해야 할 사실을 듣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범죄 직후부터 아니, 창세전부터 사람이 범죄할 것을 아시고 그 죄에 고통 하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 받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예정하시고 시행해 오셨지만 수 많은 역사 속에서 복음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신 것은 적어도 OT 속에서는 볼 수 없다.

그러한 사실을 마음에 두고 오늘의 말씀은 시작된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5)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우리들은 서로 끌어안고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다.

심지어 예수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눅10:24)고 말씀하시고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고 말씀하심으로써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조차도 이 복음의 때 보기를 기대하며 즐거워했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다.

베드로 사도 역시 같은 증거를 하고 있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2)

온 구원의 역사 속에서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보고자 했던 그 복음의 역사를 나타내시고 그 혜택을 우리가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격할 만하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고,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던,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었던” 복음을 아브라함과는 전혀 상관도 없었던 이방인 중의 이방인이었던 이 대한민국의 오늘 우리가 이 은혜에 참여할 수 있게 됨이 감격 중에 감사가 될만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긍휼이었음을 연이어 증거해 주고 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6)

선택은 우상의 땅 갈데아 우르의 아브라함부터였지만 하나님의 신비한 지혜는 결국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고루 고루 미치게 하시려는 깊은 사랑과 세심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증거한다.

대상은 아직도 은혜 밖에 있는 모든 이방인들을 복음으로 부르시고 방법은 바로 “복음으로 말미암아”이고 은혜와 약속의 장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이며 목적은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마련하신 하늘의 기업에 상속자로 참여하게 하시려는 의도였음을 증거한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여기 “함께 함께 함께”이다. 적어도 여기에서 제외된 인류는 없다. 물론 육신적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은 이것을 알지 못했고 그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신비라고 감격으로 고백하고 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요한 사도는 이것을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1:3)고 감격하고 있다.

오늘 주님을 순종하는 모든 자들과 함께 차별 없이 같은 구원을 누리는 우리 모두도 이러한 감격과 사명을 가져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복음 속에 부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구원 밖의 영혼들을 불러 그들도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Ⅱ. 모든 지체들에게 섬김의 선물을 주셨다.(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바로 앞 6절에서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는 계획의 성취로 이 “함께” 속에 들어온 우리 모두의 사명을 이 7절에서 당부하고 있다.

우리 구원에 참여한 개개인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은 더 높은 뜻인 하나님의 영광과 목적을 위하여 참여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이 복음을 위하여 …”가 먼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셔서 인류의 모든 비극의 원인인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형벌 당하시고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셨고 다시 오실 이 역사의 최고의 사건(event)이 바로 복음이다.

우리는 쉽게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조차 자신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성경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놀라운 역사에 나 자신이 함께 하지 못하면 그것은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를 이 은혜에 참여시킨 것은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아직도 이 복음 속에 되도록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 각자가 중심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생명에 참여하는 자들을 위하여 이 복음이라는 귀중한 도구가 계속적으로 유효한 것이고 그 복음을 위하여 우리 각자를 먼저 부르셨다는 말이다.

그 참여의 크기나 방법은 “…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이다. 여기에 각자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 중요한 것이다. 항상 문제는 나에게 부여하신 은혜를 헤아리지 못하고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이다.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고전12:29)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모두가 선지자일 필요는 없다. 나에게 부여하신 은혜가 어떤 것이든지 “…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2:20~21)

그런 이유에서 다음의 말씀이 더욱 중요하다. “…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은 그 사람에게 가치가 있고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나의 과제이다. 쉽게 말하면 주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부러워하지 말고 나에게 주신 은혜만을 복음을 위하여 잘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4~5, 7)고 바울이 증거하는 것처럼 각 지체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교회 속에서도 저보다 훨씬 개인에게는 조리 있게 복음을 더 잘 전하는 사람도 있고 기도도 더 하나님께서 들으심직하게 하는 지체가 있는가 하면 성경의 이해도 어떤 부분에서는 저보다 더 멋지게 이해하는 지체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바울의 고백처럼 “…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는 것이다. 지금 이 역사 속에 나를 복음에 부르시고 구원하신 이유는 나를 일꾼 삼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을 따라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구원의 감격과 함께 이런 분명한 사명의식을 깨닫는 …



Ⅲ. 선물을 주신 것은 복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8~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마지막 부분에서의 앞에서 나눈 내용을 다시 한번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8f) 바울과 같이 위대한 일꾼이 이렇게 겸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낮아져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바울의 자기 표현은 항상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고 이것이 복음의 일꾼 된 구체적인 모습이다.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나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는 표현은 겉치레로 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또 한가지는 “모든 성도 중에” 라는 범위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세워진 교회 속에 엄청난 수의 성도들이 있겠지만 사실 그 성도를 있게 한 바울이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은 하늘의 일꾼다운 기본이 갖춰져 있음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말째 자리라도 주신 이유가 바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라고 증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절대로 모자람이 없는 풍성한 분이시다. 인생의 텅 빈 허무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어떤 것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빈 자리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질 수 없는 허무는 없다.

바울은 이 사실을 자신의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한 사람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동족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있으면서 고백하기를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행22:3)고 최고의 학문의 수혜자라고 말한다.

다시 기쁨을 논하는 빌립보서에서는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 하였지만 그 때는 기쁨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 혹평하는 고린도교우들에게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고후11:22)라는 자신의 육신적인 태생에 대하여 자랑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부터는 다메섹에서 광주리를 타고 도망친 사실조차도 영광으로 고백함을 듣게 된다.(고후11:33)

“…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8b) 이러한 과제는 바울뿐만 아니라 오늘의 교회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만 할 과제이다. 그 대상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복음밖에 있는 이방인들이다.

아직도 인생의 가치를 모르며 무엇으로 삶의 가치를 채워야 될지를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죄를 해결하고 충만으로 채울 수 있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사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에 충만하게 채움을 받은 사람들만이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놀라운 비밀은 어느 때 아무 사람들에게나 나타난 것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 속에 감춰 두었던 귀한 것임을 마지막으로 증거하고 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9) 시간을 헤아리기 전부터 이 우주와 지구가 생기기 전부터 계셨던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어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만이 깊이 감추고 계셨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에서 이 세상의 흐름을 가장 빨리 감지하고 처신하는 사람들인 ‘통치자들’조차도 알지 못했던 것이라고 증거한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8) 세상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어떤 학자나 똑똑하다는 사람들보다도 다음의 세대에 어찌될 줄 모르지만 처신을 가장 지혜롭게 하는 통치자들을 예로 들었을 것이다.

여기 “비밀의 경륜”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을 말하는 것으로 무리가 없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로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려는 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드러내는 신비의 일이면서 귀중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지금 이 비밀의 경륜을 먼저 알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영원한 구원의 경륜의 도구로 주님 오실 때까지 사용 받는 감격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으로 무시간 속에 영원히 감춰져 있던 이 신비한 구원의 섭리를 들어내는 것이 바로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데서 이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단순하고 가치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신비한 것이요 하나님의 뜻이면 일이다.

수 천 년의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던 하나님께서 전혀 이방인 중에 이방인인 오늘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셔서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게 하셨다.

이제 이 은혜에 동참하게 된 우리는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함께 더불어 힘을 모아 일꾼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우리의 교회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본래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신비를 아직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드러내도록 부르셨으므로 나 하나의 구원의 감격으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 시켜서 함께 함께 함께 나누고 즐기고 감사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