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벧전 2:4~10 2018-04-22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오늘 제목인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는 전도자들이나 장로님들에게만 주신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하지만 두려움으로 제사를 드리고 종으로 섬겼던 OT의 율법과 다르게 율법 속에서 언약된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신 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다.

OT시대에는 성소에 들락거리며 제사를 드렸던 대제사장조차도 늘 죽음의 두려움으로 떨면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출28:35)

고핫 자손들이 성소의 도구들을 메기는 하였지만 그 일을 하면서도 그 성물들을 만지거나 성소를 보기만 해도 죽었고 실제로 웃사의 사건(삼하6:1~10)으로 더욱 두려워하였을 것이다.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민4:15, 20)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종에 관계없이 거듭난 각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복음 속에서는 더 이상 두려움으로나 종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OT에서 자기 백성을 하나님께 중보 했던 제사장들과 같은 귀중한 존재들이 되었다는 데서 큰 차이를 가진다.

이럼에도 오늘날 잘못 가르쳐진 복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하나님의 중보자인 제사장이 아니라 여전히 OT시대와 다르지 않게 ‘경외’라는 미명으로 두려워만 하고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제사장인 것처럼 잘 못 이해하는 경향이 더러 있다. 이런 잘못 이해된 교리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제물 삼아 그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제사장이 된 지위를 사용하지 못하고 여전히 종교에 종노릇 하는 제한된 은혜를 누릴 수 밖에 없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대제사장은 이제 이스라엘 레위가문에서 육신의 계보를 통해서 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뿐이고 그를 통해 거듭난 피조물들인 우리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제사장이 되어서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는 세상사람들을 구원하여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고백 속에서도 확인된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권리를 어떤 대상에게 맡겨두고 스스로 종노릇 하는 안타까움을 벗어버리고 온전한 제사장으로서 세상을 중보하고 구원하는 일에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Ⅰ. 믿음으로만 사실이 되는 모퉁잇돌,(6~8)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약속된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할 때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러한 사람에게만 이루어지고 유효함을 증거하고 있다. 먼저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6)

언제나 가장 확실한 근거의 표현은 “성경에 기록되었으되”이다. 사람의 경험이나 확신은 왜곡될 수 있지만 기록된 말씀은 절대로 없어지거나 변개될 수 없다. 그런 이유에서 경건한 사람들은 언제나 기록된 말씀에서 근거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6m) 이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은혜를 “보라”는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다. ‘보라’는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해서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이스라엘과 인류를 위하여 이루어 놓은 귀중한 역사를 관심을 가지고 눈 여겨봐야만 할 것이다.

그것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어떤 것인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언하시는 “내가 택한” 것이며 그것은 “모퉁잇돌”로 이사야28:16 본문은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모퉁잇돌, ἀκρογωνιαῖος, 건물 상하좌우를 연결하고 균형을 유지하는]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로 기록하고 있다.

결국 이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대한민국 사람이나 다 하나님의 은혜의 집인 교회의 구성원들이 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온에 두노니”라고 약속하셨다. ‘뉴욕’이나 ‘서울’이 아닌 ‘시온’ 즉, 예루살렘에 두신 것이다.

“…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6b)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언약이기 때문에 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죄가 해결되어 수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유효한 약속이다. 모든 사람은 죄의 결과로 정죄되어 수치를 당할 것이지만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이 방법을 의지하는 자는 수치가 아니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를 통하여 수치의 대가가 이미 지불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이 은혜 역사의 결과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반응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7) 이 말씀은 유명한 시편118:22~23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κεφαλή]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의 인용이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명령을 믿고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보배의 효과를 나타내겠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들과는 관계없는 귀중한 “머릿돌[κεφαλή, 머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8) 나와는 관계없는 귀중한 기초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걸려 넘어지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정하신 이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자신을 믿지 못하던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던 내용이다.(막12:10~11)

결국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실족하는 분명한 이유를 이 8절 하 반들은 지적해 주고 있다.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8m) 분명한 이유는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을 가리켜 “…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즉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이라고 증거한다. 그러나 이 말씀에 오해는 없어야 한다. “이렇게 정하신 것이” 그들을 대상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즉, 인종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들은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기록된 대로 ‘기촛돌’이요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걸려 넘어지게 하는 대상이 된다는 말씀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이루신 어떤 일이든지 이 원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루신 ‘구원의 복음’은 이 약속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보배로운 약속으로 이루어지므로 오늘 우리가 그 언약아래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며 감사해야 할 이유이다.



Ⅱ. 주님께 순종하는 자들을 제사장들로 삼으셨다.(9~10)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제 하나님의 약속 안에 순종으로 들어온 자들에게는 좀더 크고 확실할 약속을 확인해 주고 있는 부분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기촛돌로 받아드린 자들은 과거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통해서 사죄와 용서의 제사를 드리는 일반적인 백성이 아니라 특별히 선택하여 하나님을 그들의 기업으로 정하시고 이스라엘의 바치는 화목제물을 먹으며 살게 하셨던 제사장의 신분으로 택하시고 부르셨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제사장 된 우리도 다르지 않다.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수13:33; 민18:20; 신10:9, 18:2)는 약속과 같이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언약되고 있다.

사실 OT에서 레위가문의 사람들이 제사장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었다. 구원의 여정 속에 나타난 레위가문의 행동들이나 아론의 행동들은 주님을 가까이 섬길 무엇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때문이었음을 율법에서 읽어볼 수 있다.

창세기 34장에서는 자신들의 여동생 디나와 하몰의 아들 세겜과의 문제에서 행한 행동[34:25~26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이나, 출애굽기32:2~4[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금송아지 우상 사건들로 보면 제사장으로 다른 형제들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중보자로 레위지파와 아론의 후예들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 외에는 설명한 근거가 없다. 이것은 오늘 동일하게 우리를 그보다 더 나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의 모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놀라운 신분으로 우리를 부르셨음을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9f)라고 하신 것이다. 물론 앞의 예수 그리스도를 시온에 두시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요긴한 모퉁이 돌이 되게 하셨지만 거절하는 자들은 넘어지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다.

먼저 “택하신 족속”은 본래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씀이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이 약속은 새로운 언약 속에 세움을 받은 우리에게도 다르지 않은 말씀이다.

무엇보다도 성별 된 제사장들만이 거룩한 제사를 드린 후에 성전에서 제물을 먹을 수 있는 권한을 주셨는데 우리는 짐승의 고기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특권을 거듭난 사람이면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리게 되었다.

“왕 같은 제사장”은 메시야의 삼중직 중 선지자의 지위가 빠진 그리스도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다. 사실 율법 속에서는 제사장이 왕의 자리를 대신하는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질병의 유무까지 판단하는 역할을 하였다.(레13장) 그러나 복음 속에 제사장 된 성도는 장차 천사들을 심판할 권한까지 주신 것으로 이해된다.[고전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

왕은 그리스도 한 분이시지만 왕 같은 제사장이면서 더불어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라는 놀라운 지위를 주셨다.

그럼에도 우리의 과거는 사실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이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서 2장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특히 오늘의 표현과 다르지 않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오늘 본문에도 다시 확인하기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10) 하였다.

그러나 우리를 이렇게 어둠 속에서 불어내신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9b) 죄와 절망의 어둠 속에 있던 우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불가능한 영광의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나타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는 확인이다. 우리는 참으로 이 은혜를 헤아릴 수 있어야만 한다.



Ⅲ. 이제는 합당한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4~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우리는 앞에서 우리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해 주신 놀라운 은혜를 살펴 봤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그냥 하나님의 백성삼아 주시는 것도 놀랄만한 일인데 우리를 하나님과 세상을 중보 하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을 OT의 약속들을 인용하면서 확인시켜 주시는 베드로를 통한 말씀들을 살펴보았다.

다만 이 엄청난 은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OT시대처럼 어떤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놀라운 지위를 맡겨두고 여전히 종노릇 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소시키는 것이고 어쩌면 절대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편해서 권리를 포기하는 유교적인 관습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룰 이 말씀이 이러한 은혜의 이유와 목적이기 때문에 글의 위치에서는 맨 앞이지만 결론적으로 상고해보고자 한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4) 이 말씀은 다시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말씀이다. 창조주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선택하신 자기 백성에게서 조차도 외면을 당하셨음을 성경은 증언해 주고 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1:11)

그러나 어쩌면 그렇게 하심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방법이었음도 연이어 증거해 주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2~13)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5f) 여기에서 산 돌은 앞의 말씀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을 중보 하는 거룩한 제사장의 목표는 역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 이유에서 “산 돌 같이”이며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는 죄악 된 세상과 구별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완성되어 가야만 한다. 여기에 대해 바울의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는 말씀과 더불어 이해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5m) 명목상으로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대속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신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 믿음 생활은 우리의 육신의 생애가 다할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일 수밖에 없다. 바울은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함 같이 베드로 사도도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벧전4:11m)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도 역시 “…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5b)는 권면을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만의 좋은 예배나 섬김은 의미가 없다. 영과 진리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아직도 이 엄청난 사랑을 알지 못하고 짐승처럼 본능에 의해서만 사는 불신의 사람들을 복음으로 변화시켜 함께 참여시키는 일을 해야만 한다.

오늘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는 주님의 인정은 교회의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치는 몇몇 직분자들에게만 주신 칭호가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이 놀라운 지위를 주셨으니 더 이상 사람이 시키는 일에 종노릇 하는 종교생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는 당부에 ‘아멘!’으로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 우편에 계신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