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욥 1:6~12 2018-05-20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  
믿음의 사람들, 심지어는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들까지도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간교한 술책은 우리 주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경계하신바 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24; 막13:22)

그럼에도 욥의 예뿐만 아니라 어떤 시험에서도 또 바울의 경계처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11:14)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대적 사탄은 비교될 수 없다는 확신이다.

그럼에도 최초의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희락의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고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망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부리시던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유1:6)의 일단의 무리들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알고 방비할 필요를 성경에서 수없이 경계해 주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말씀을 순종하는 백성들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명령에도 순종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될 것이고 욥과 같은 고난 속에서도 최종적으로는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늘 축복할 것을 당부하셨다. 심지어 어느 곳을 방문하더라도 축복함으로 부지중에 그들에게 빈 평안이나 복이 합당하지 않으면 빈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경우까지도 말씀하셨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10:12~13)

바울까지도 이런 주님의 교훈을 교회들에게 선포하고 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12:20) 사실 우리의 궁극적인 원수는 사람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사람들 뒤에서 역사하는 어두운 악의 세력인 사탄이다.

어떤 사람의 별명은 이름보다도 그의 속성을 더 잘 표현하고 경우들이 있다.[밤낮 참소하는 자] 우리 믿음의 사람들 각자는 개인의 이름과 함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고 그의 소유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귀, 귀신을 거느린 사탄은 그 별명조차도 오늘 제목처럼 “…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계12:10b)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한 존재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역시 같은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빛의 자녀라고 하는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별명들을 받기에 부족됨이 없는 복된 사람들이기를 바란다.

“진실한 사람, 진리의 사람, 사랑의 사람, 거룩한 사람, 빛의 자녀, 성도, 하나님의 백성, 긍휼의 사람, 용서의 사람, 희생의 사람, 하늘의 사람, 인내의 사람” 등등

우리가 사탄이나 마귀, 귀신이 어떤 존재인지 그 실체를 아는 것부터 중요하다. 언제나 마귀나 사탄은 사실 자신들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탄은 에덴에서부터 ‘속이는 자’로 나타나고 그런 이유에서 사람들을 부추겨서 역시 같은 짓들을 하게 하는 것도 그들의 특징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구원의 일을 시작하시려고 할 때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주님을 시험하고 얼마 동안 떠난 마귀(눅4:13)는 주님의 최후 십자가 앞에서도 대속의 십자가를 피할 것을 유혹하였을 것이고 오늘 본문의 욥과 같은 신실한 사람들에게도 끊임없이 나타나 시험하고 넘어뜨리려는 그의 간교한 속임이나 참소는 그의 완전한 멸망의 때인 세상 끝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바울도 이 간교한 존재의 역할에 붙잡혀 어둠의 종노릇 하는 존재들에게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3:13)라고 안타까워 한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 있음을 증거한다.

사탄은 자신의 실체를 아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항상 자신이 정체가 들어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오늘날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사탄이나 마귀 귀신을 잘 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늘 속이며 역사하는 악의 존재인 사탄을 바로 아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이를 바로 알지 못하면 사탄이 속이기 위하여 하는 역사조차도 하나님의 역사로 착각할 수도 있다.



Ⅰ. 사탄의 활동 범위,(6~8)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사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희생으로 머리가 짓이겨져서 과거 복음이전 시대보다는 힘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하나님의 경배를 자신이 받으려는 어리석고 사악한 흉계는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능력을 무조건 동경하고 사모하다가는 이 사악한 존재의 도구 노릇을 할 수 있음도 바울 사도를 통해서 경계를 주고 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2:9~10)

이런 이유로 영적인 세계 속에서도 빛과 어두움의 간격을 바르게 구분해야 함을 요한이나 바울 사도를 통해서도 가르치고 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요일2: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엡5:9, 11~12)

오늘 첫 번째의 말씀들은 사탄의 활동범위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7f) 물으시자 사탄은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7b)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 앞에서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탄의 고백은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노라고 답변하고 있나. 여기 표현대로 땅의 ‘두루, 여기저기’라는 표현으로 볼 때 땅의 어느 곳에도 다니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이 세상 어디든지 사탄은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

이런 입장에서 베드로 사도의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라는 경계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본다. 영적인 존재인 사탄의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탄의 활동범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은 바로 앞의 6절이 더 두려운 경계를 주고 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도 나아가는 존재로 나타난다.[교회에서도 당연히 가능]

무엇 하러 하나님 앞에 사탄이 나아갈까! 그것은 오늘 제목과 더불어 생각할 수 있다. “참소하던 자[κατηγορέω, 비난하다, 고소하다, 반대하다, κατήγορος]” 사탄은 오늘 우리가 보는 욥과 같은 의로운 사람도 할 수만 있으면 비난하려고 애쓰는 행동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고 있는 우리의 고발자이다.

그러한 고발자요 모함하는 존재인 사단에게 우리 하나님은 충성된 욥을 자랑하심을 본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8)

이러한 하나님의 선언은 욥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바로 가지고 있을 것을 내다보시는 하나님의 全知全能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그런 지혜나 확신이 없으셨다면 이 고발자에게 섣불리 욥을 자랑하시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사탄이나 귀신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분명한 인격(人格)이라는 사실이다. 가끔 언급한바 있지만 술이나 담배는 마귀나 사탄의 도구는 될 수 있어도 그것 자체를 사탄이라거나 마귀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사탄이나 마귀의 역사는 오늘도 흉측한 괴물의 모습이나 뿔 달린 괴상한 모습의 형태가 아니라 각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경계에서도 하나님보다 자신의 사랑하는 것이 이루어짐을 바라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빠져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악의 도구로 역할 수 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베드로를 향해 책망하시기를 “…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마16:23b; 막8:33b)라고 명하신다. 보이지 않은 사악한 사탄은 항상 보이는 매체를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탄의 활동범위는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까지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어디에서다 사람을 넘어뜨리려는 시도는 주님 오실 때까지는 어느 시간과 어느 공간 속에든지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계해야만 한다. 특히 사탄의 참소나 시험은 긴장을 풀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쉽게 역사할 수 있다.



Ⅱ. 사탄의 참소,(9~11)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하나님 앞에 온 사탄은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증거하시는 욥을 그의 속성대로 역시 참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참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을 참소하고 있다는데 우리의 경각심을 갖게 한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9)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만큼 대가가 주어졌기 때문이란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요한 사도의 가르침처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사탄이 하나님께 참소하는 이유는 이것을 두고 말하지 않는 이유를 다음에서 계속 항변하고 있다.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10)

사탄이 주장하는 욥의 하나님 경외의 이유는 3가지 정도로 나타난다. ①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 이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모든 것을 지켜 보호해주시기 때문이다.’라는 이유이다. ②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욥이 손으로 하는 모든 일 즉, 사업에 복 주셨기 때문이다. ③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그의 소유물로 온 땅에 널리도록 많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모든 것들은 땅에 속한 것들로 변화무쌍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사탄은 이런 부유와 건강과 존귀와 땅의 아름다운 것들로 풍성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꼭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런 땅의 풍성한 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세상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는 이유 때문이어야 한다.

사탄의 지혜는 여기까지 뿐이었기 때문에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11)고 하나님을 충동질 한다. 두 번째 사탄이 욥을 참소할 때도 물론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2:3) 라고 이 사실을 인정하시지만 하나님은 이미 욥이 이런 변화무쌍한 세상적인 것들 때문에 자신을 경외하는 것이 아님을 아신 것에서 사탄과 비교될 수 없는 지혜자이시다.

우리 각자 또한 세상의 보이는 물질을 기준해서 신앙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은 죄인 된 나(우리)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제물 삼아주신 절대적인 사랑 때문이 된다면 사탄의 간교한 시험에나 참소에도 바른 믿음을 지킬 수 있다.



Ⅲ. 사탄의 한계,(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사탄은 의인인 욥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고 멸망시키려고 그의 주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의 믿음의 순결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고, 모든 것을 잃고도 지속적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돌아서지 않을 것을 이미 아신 하나님은 욥의 소유를 그에게서 빼앗는 것을 사탄에게 허락하셨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참소에 빠지셔서 의인 욥에게 모든 것을 잃게 하셨나!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큰 확신 하나가 있다. 그것은 아무리 사악한 사탄이라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함부로 역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우리 주님의 분명한 방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와 함께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는 소극적인 방법도 알게 하셨다.

또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일반적이면서도 가장 큰 확신을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이러한 확신에 의하면 이미 하나님은 욥이 그의 모든 좋은 것들과 사랑스러운 것들을 다 잃는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계셨기 때문임을 확신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12f) 어쩌면 우리가 땅에서 풍족하게 누리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순간적으로 욥처럼 사탄의 역사로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가 더욱 그런 것을 감당해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는 이미 이 욥의 경우를 보면서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음을 배웠기 때문이다.

“…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12b) 결국 우리가 가진 재산에나 건강에 사탄이 손을 댈 수 있는 것도 우리 사랑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함을 확인시키는 확신이다.

앞에서도 거론했지만 여기에 빠뜨리지 말아야 할 사실은 역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시험과 환란은 우리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 안에서라는 약속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그것이 질병이든 물질이든 명예에 대한 손상이든지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으리라 확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믿고 허락하셨는데 오히려 우리 각자가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육신의 삶을 끝마치기까지 사탄의 활동영역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갖지 않고 활동할 수 있음을 배웠다. 그럼에도 사탄은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완전한 멸망을 당할 때가 있을 것이다.

사탄의 참소하는 대상은 연약한 믿음의 사람이든 다니엘과 세 친구들과 오늘 욥과 같은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늘 거기에 대한 방어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시험과 환란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하심 속에서만 있을 수 있고 반드시 감당할 정도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고 시험하는 마귀 사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신 분이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이것을 위해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의뢰할 필요가 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