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요 1:9~13 2019-01-13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신 로고스 즉, 말씀이신 창조주께서 그 영원한 존재로서도 귀하고 영광스러우시지만 그분의 형상 대로 지음을 받고 그의 다스림을 위임 받아 시간과 공간 속에 숨을 쉬며 살면서 이 세상을 관리해가지만 죄에 빠져 의의 다스림에서 쫓겨나 이 창조주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관련이 없으셨다면 적어도 사람들에게는 유익도 영광도 주시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바울의 표현대로 “… 그분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7b) 한 것처럼 끊임없이 사람을 찾아와 주시고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려고 계시를 지속적으로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아담(사람) 스스로 창조주를 거역하고 잃어버렸지만 언제나 본래의 창조의 자리에 회복을 원하시고 끊임없이 그의 선지자들과 천사들을 보내시고 그것도 온전치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사람과 꼭 같은 모양으로 이 역사 속에 내려오셔서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구속의 역사를 자신의 희생으로 십자가에서 이루 셔서 창조주뿐만 아니라 구세주가 되어 주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것을 다 하시고도 사람들이 혹 이러한 자신의 사랑의 초청을 찾지 못하거나 오해할까 봐서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자신을 빛으로 나타내심을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 죄악의 어두움을 향한 끊임없는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 스스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된 죄인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회복되는 가를 보다 분명히 교훈 해 주고 있다.



Ⅰ. 참 빛이 각 사람에게 비치고 있다.(9~10)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오늘날 빛은 LED(light emitting diode)라는 새로운 고효율 빛의 도구가 개발되어 도시이건 시골이건 구별없이 가로등을 밝히고 여러가지 형태로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이 역사야말로 빛의 시대이고 어두움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인위적인 광명체들은 참 빛이 아니다. 아니 참 빛이 될 수 없다. 사람의 편리에 의해서 끄고 키는 빛은 참 빛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리 에너지를 적게 쓰는 빛일지라도 그것은 에너지가 없다면 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육안(肉眼)으로 많이 밝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겨우 보이는 세계를 비출 수 있을 뿐이지 영적(靈的)인 세계를 비춰주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칠흑 같은 어두움이 도사리고 있고 이 영혼의 암흑은 끊임없는 어두움의 일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세상의 빛이 밝아졌음에도 범죄는 점점 지능화하고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9)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는 끊어진 적이 없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이 영혼의 빛 이야말로 참 빛이며 죄로 가려진 사람들의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빛이기 때문에 세상에 와서 비추는 빛이다.

이 빛의 특징은 전체가 아니라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우리는 빛 아래 모여들면 함께 그 빛을 볼 수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비추는 빛은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라는 데서 영혼의 빛 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각각 비추는 것이다. 이 빛 앞에 자신의 어두움을 보는 자들은 통곡하고 회개하며 탄식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모두가 각각 할 것이라고 OT의 스가랴 선지자는 예언하고 있다.(슥12:10~11)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12~14)

이것은 복음 속에서 선언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그럼에도 그 빛을 지속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두움에 익숙해 있는 죄성 때문에 회개하거나 통곡하는 일이 쉽지 않다. 지난 시간에도 v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였던 것처럼 바람직한 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0) 앞에서는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그 빛은 이미 세상에 계셨고 이 세상은 그 빛 때문에 지음을 받았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것이 곧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라는 지적이다.

하늘에 비치는 빛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하늘의 영광의 빛이 세상에 오셨고 그것은 세상이 그 빛 때문에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인 빛을 알지 못하고 부정해 버리는 안타까움을 선언하고 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지금도 그 빛은 각 사람의 영혼에게 비치고 있고 그것은 빛 되신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이 하나님을 위해서 지어졌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은 왜, 아직까지 존재하는가 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와 비치는 빛을 받아 정상적인 하나님의 빛의 세계로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Ⅱ. 영접하는 자는 하늘의 권세가 주어진다.(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두번째로 나눠야 할 내용은 이 빛을 환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신앙하면서도 이 부분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사실을 꼭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11) 빛은 남의 땅에 온 것이 아니라 자기 땅에 오셨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거절당하셨다는 일차적인 이해는 당연하지만 “자기 땅에 오매”는 단순히 그렇게만 이해할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3)거나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10) 특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6~17)는 말씀들로 볼 때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다 빛이신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자기 땅’을 단순히 이스라엘로 제한 할 수 없다.

이런 이해에서 ‘자기 백성’ 역시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 빛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모든 백성이고 그런 이유에서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19~20)는 말씀들을 볼 때 역시 그분의 형상을 가진 모든 인류를 향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안타까워한다. 우리의 바른 이해가 필요한 것은 이 두 절 속에 모두 “영접”이라는 말이 쓰여 있고 본래적인 낱말은 다르지만 역시 어근(語根)은 같다. 또 우리는 대개의 경우 신앙 속에서 “영접” 이라는 말을 대단히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접[λαμβάνω(v12), 붙잡다, 취하다, 꽉 잡다(쥐다), 권세가 주어지다→ παραλαμβάνω(v11)] 이라는 낱말은 절대로 관념적으로만 이해야 할 단어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우리의 결단을 요구하는 의미의 동사(動詞)임을 이 기회에 꼭 알았으면 한다. 즉, 가만히 앉아서 ‘내 마음에 들어 오셔요’ 정도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찾아온 은혜를 자신이 적극적으로 붙잡고 놓지 않는 어떤 것’이다.

세상적인 기회도 찾아 왔을 때 꽉 붙들고 놓지 않아야 잃지 않을 수 있고, 나의 운명을 쥐고 있는 대상이 있다면 어떤 경우라도 그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틀어 잡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다는 의미가 바로 그런 의미임을 알아야 한다.

결국 영접하지 않는 것은 놓치는 것이고 그분을 내 모든 힘을 다해서 틀어 잡고 놓지 않는 것이 “영접하는 것”으로 얍복강 가에서 야곱이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만 “…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b) 야곱은 단순히 천사를 그렇게 하였다면 우리는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나의 생사화복(生死禍福) 가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든다고 하는 데서 비교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이 더욱 귀하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 여기 ‘그 이름’은 두말할 필요없이 [예수 그리스도] 라는 이름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란 주님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그대로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붙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분’이요 ‘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게 해결하시는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나에게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시는 선지자’로 ‘나의 생명 호흡의 권한을 가지신 왕’으로 고백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b) 주님을 알기전까지는 하나님의 원수 된 죄인 중에 괴수였던 과거의 상태에 비교한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지위요 대우로 요즘 표현대로라면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권세[ἐξουσία, 대표되는 영향력, 권위, 사법권, 권리]”란 하나님과 같은 지위를 가지는 것이다. 원수 사탄이 범접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권세가 주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는 약속을 요한 사도는 확인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운명이 바뀐 솔로몬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잠30:21) 라는 항목 중에 드는 내용 중에 하나로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22) 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히 세상이 흔들릴 일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놀라운 이유는 원수 되었던 마귀의 종노릇 하던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지위를 가졌다고 하는 데서 마귀 사탄이 놀랄 일이요, 바로 깨닫기만 한다면 구원받은 당사자는 감격할 수 밖에 없는 영혼의 세계의 대 혼란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되는 창세기3:15절의 약속되었던 역사이다.

결국 아담이 범죄하였지만 이런 엄청난 회복의 약속을 선언하시는 내용이 창세기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심을 마지막으로 나눌 내용이다.



Ⅲ.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사람에 의해서 날 수 있는 방법을 여기서 먼저 세가지로 언급하면서 부정(否定)되고 있다. ①혈통으로, 이 말은 어려운 의미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난 혈연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집안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고 원망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 집안에 태어난 것만으로 자긍심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세상에서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運命)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혈통으로 나지 아니하고”라고 부정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for Exam 이스라엘]

그럼에도 다음으로 부정되는 두 가지는 중심 단어는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지는 낱말이다. 의지, 의향, 결심, 결의, 의도, 뜻을 의미하는 “θέλημα, thelema”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고 이 같은 낱말을 수식하는 내용이 각각 다를 뿐이다.

②육정(肉情, ἐκ θελήματος σαρκὸς)으로, 우리의 육신적(肉身的)으로 바라는 뜻을 의미하기 때문에 영적인 반대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인데 대표적인 표현을 보면 로마서8:4~8에 나타나는 대로 이 육신의 의지대로 행하는 것들의 영향을 거론하고 있는 것을 읽어볼 수 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바울은 역시 육신과 성령의 열매들을 거론하는 갈라디아서에서 단어는 다른 것으로 쓰였지만 “육체의 소욕”(갈5:17)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 “육체의 소욕”에 연결되는 내용을 보면 “성령을 거스르고”라고 나타나고 있다. 이런 내용들을 볼 때 육신의 원하는 바 대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③사람(ἀνήρ)의 뜻으로, 일반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는 낱말로는 “ἀνθρωπος, anthropos”라는 단어가 사용되지만 여기에 사용된 ‘아네르’라는 표현은 그냥 사람이기 보다는 결혼한 성인 남자로 가장으로 자신의 의지로 가정을 이끌고 사회의 일을 결정하는데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자기의 뜻이 분명히 서있는 그런 사람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사용된 예는 오순절날 전에 베드로가 120명의 형제들 가운데 일어나 “형제들아”(행1:16)라고 한 표현 속에 나타난 낱말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가 분명한 사람의 뜻으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시 부정되고 있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반적인 세가지 형통이나 육신적인 뜻, 장성한 사람의 의지가 하나님의 자녀로 나는 데는 모두 “나지 아니하고”라고 부정(οὐδὲ, oude)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세상의 어떤 의향이나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데는 불가능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절망이 오지않고 소망의 빛이 비치고 있다. “…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3b) 이러한 표현은 앞의 부정된 모든 방법이 불가능했지만 가능해진 방법을 말씀하신 것에 대한 표현으로 “오직[ἀλλά, 그리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조용법으로) 정말, 사실]”이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v11~12의 “영접하는 자” 즉, 이 땅에 보내져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어 장사(葬事) 되시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셨다가 이 땅에 따시 오실 유일한 인류의 소망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를 구원하신 이 하나님의 방법을 베드로 사도는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2)고 증거하고 있다.

이 우주 중에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루신 이 일이 사람들이 눈에 보기에는 어리석은 것 같이 보이지만 이것이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라고 바울은 찬양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분명하다. 육신적인 이해로는 어리석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그래야만 마귀 사탄이 손을 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을 통해서 죄인이 의인 되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방법으로 주신 것이다.

사실 죄를 짓고 영원한 형벌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는 사람을 영원히 살리고자 하는데 영원을 소유하신 분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에덴 이후에 이미 하나님의 선언을 들었지만 마귀 사탄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사람의 형편에서도 어떤 사람은 가능하고 또 다른 사람은 불가능하다면(부자, 지식, 건강) 하나님은 비난 받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피를 지불하시고 누구든지 차별없이 이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에덴 범죄 이전의 하나님의 자녀 된 지위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주셨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의 방법이나 수완이 아닌 하나님의 참 빛은 그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나 불신자들에게 지금도 변함없이 비추고 있다. 적어도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는 계속 될 것이다.

이 땅에 빛으로 독생자를 보내시고 그분을 이름을 믿고 붙들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어리석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혈통으로나 육신의 원하는 것이나 사람들의 뜻이나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