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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6:32~40 2019-07-28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이리저리 둘러서 열심히 찾고 찾아서 자신을 찾아온 군중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라고 책망하시면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27f) 말씀하셨다.

군중들은 다시 “…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 물었고 여기에 대해 “…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b)일러 주셨지만 저들의 어리석은 요청은 “…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30)고 다시 묻는다.

저들은 한 술 더 떠서 자신의 조상들이 하늘에서 내려 주신 만나를 하늘로부터 받아 먹은 것처럼 자신들에게도 그렇게 기적의 떡을 달라는 요청을 드렸고 여기에 답변하시는 것으로 오늘 말씀이 이러지고 있다.

여기서 주님은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받아 먹은 떡은 모세가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고 그것은 썩지 않을 양식을 주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상징에 불과함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최종적으로는 온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 살것이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고 그러한 불신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지 않았기 때문이며 생명의 양식을 위해 자신을 찾는 사람들은 절대로 주님께서 그들을 버리거나 내 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인하신다.

주님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자신을 찾고 있는 저들처럼 자신의 원하는 것을 행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람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림이 없이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려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한사람이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신을 보고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증거하신다. 특히 이 뒷부분에서 확인 되는 것은 현세상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Ⅰ. 생명의 떡을 주시는 하나님,(32~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적의 떡을 먹은 군중들은 자신들이 계속 기적의 떡을 먹는 것이 과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늘로부터 만나를 받아먹은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하소연하려는 것으로 들린다.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31)

육신적인 사람들도 이런 데는 생각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을 본다. “…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b)라는 책망을 하시자 거기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가 크게 잘 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세의 시대 있었던 사실로 변명한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이나 기대가 과거의 하나님의 역사를 들춰낸다고 해도 바른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그들이 처한 상황이 아무 일거리도 없고 생산도 불가능한 광야의 상태가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면 먹을 것을 벌 수 있는 광야와는 상황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에게 하늘로부터 먹을 것을 내린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사실과 그것은 최종적으로는 참 떡을 주실 것에 대한 상징이었다는 이유도 말씀하시는 내용이 “…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32b)라고 바른 이해를 말씀하시는데 역시 중요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앞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32)라 강조하고 계신다.

군중들은 단순히 광야에서 자신의 조상들이 배부르게 먹은 만나를 생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 지속적으로 기적의 떡을 먹게 해 달라는 것과 사람이 영원히 살기 위한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떡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겉으로는 비슷한 먹는 일로 대화를 하는 것 같지만 내용은 역시 하늘과 땅 차이처럼 다르기 때문에 대화가 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비록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긴 하셨지만 이 떡도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3) 하여 궁극적인 생명을 주시기 위한 영적인 것이라고 덧붙여 말씀하신다.

사실 만나를 본 이스라엘 사람들조차 너무나 신기한 나머지 ‘이것이 무엇이냐?’라는 신기한 탄성이 그 이름이 되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발견하게 되는 사람들은 영원한 삶을 주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감격의 찬양을 드릴 수 밖에 없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해의 엇갈림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소원을 주님께 요청하고 있다.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떡이 참으로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떡을 달라고 떼쓰는 것 같은 모습이다.

하기야 육신의 배고픔만을 생각하고 자신들의 수고가 없이도 육신의 굶주림을 채우게 해 달라는 사람들에게 주님 자신이 바로 모세를 통해서 만나를 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깨닫게 하고자했던 최종적인 생명의 양식이라고 하니 바른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 그들이 요청하는 과거 이스라엘이 먹었던 기적의 떡인 만나를 먹으면서도 저들의 조상들이 불평했던 내용도 성경은 전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민11:6) 우리 육신에 완벽한 기쁨이나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비록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었을지라도 이런 내용을 볼 때 그렇다.

이러한 부조화는 하늘로부터 오는 교훈과 여기에 땅의 가치로 반응하는 엇박자를 보이는 것이고 이것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안타까움을 바울은 이사야서64:4를 인용하면서 탄식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오늘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영생에 관한 것을 그대로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좋은 것들을 달라고 떼쓸 것이 아니라, 참된 진리의 가름침에 대해서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이해보다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자 하는 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이 먼저이다.



Ⅱ.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35~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결국 이 요한복음의 특징이 여기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하늘의 신령한 것과 거기에 바르게 반응할 수 없는 땅에 속한 자들의 불신과 잘못된 이해의 대조를 비교해가고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락방 강화’라고 하는 제자들과만의 교훈에서 이 이해될 수 없는 차이의 간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지식이 아니라 거듭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인 성령이심을 증거하신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적인 기준으로 자신의 가르침에 반응하는 군중들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이 참된 생명의 떡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찾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모자람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고 있다.

더욱 두려운 가르침은 자신의 이런 가르침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주님께 주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며 만약에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로부터 왔다면 자신에게 올것이며 그런 자는 결코 내쫓지 않고 영원을 책임지실 것임을 약속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과연 이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해가 불가능함이 무리가 아님을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52)는 반응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이 v35이 이 6장의 주제와 같은 교훈이라고 앞에서 이미 말씀을 드린바 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 이것은 먼저 영적인 말씀이면서 이 가르침을 믿고 이해하는 자들에게는 육신적인 약속도 채워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가르침은 실제적인 삶을 말씀하심이다. 먹고 마시는 것은 관념 즉, 생각으로 불가능하고 행위로써 채워지는 것이 허기와 갈증을 면하는 방법이다. 배고픈 사람이 아무리 통닭을 생각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좋은 스포츠음료를 상상해도 갈증은 면해지지 않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양식이요 음료라면 그만큼 우리의 삶에 사실적으로 받아들이고 마셔야할 생수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또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먹고 마셔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주님을 먹고마시는 행위를 주님 오실 때까지 지속해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 각자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가르치는 내용을 요한계시록3:20에서 볼 수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러한 주님의 안타까움에도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36) 탄식하고 계심을 본다. 보고도 믿지 않는, 경험하고도 인정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다.

베드로사도의 칭찬은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하였고 보고서야 믿음을 고백하는 도마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이해가 바르지 못함을 지적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37)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이라는 교리에서 보려고 하는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이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완벽하게 아시는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각 사람의 인격과 인간됨을 이미 현재로 보시는 분이시다. 각 사람의 인격과 사람됨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성향대로 그들을 대우하시고 다스리실 것이다.

바울 사도는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롬3:5b~6)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만물의 주인이시지만 절대로 자신의 속성에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37f)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단순히 이해할 필요가 있고, 이 말씀의 중요성은 오히려 뒤부분에 강조되고 있다. “…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37b)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는 견고한 약속이다.



Ⅲ.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이의 뜻,(38~40)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바로 앞 v37에 연결되면서 여기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순종을 절대적으로 강조하신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모범을 바로 자신이 보이고 계심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38~39f) 주님께서는 앞에서도 v4:34에나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5:30)라고 이미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바 있다.

우리가 주님을 본받고 따라야하는 부분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러한 자세이다. 아버지와 같은 분이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순종하려고 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첫째 자리는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첫째여야 한다.

그리고 그 뜻이 무엇인가를 연이어 말씀하시는데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39) 어쩌면 이 것은 성경의 전체 주제와 같은 말씀이다.

사실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은 한 사람이라도 잃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는 바울을 통한 말씀은 절대로 립서비스(lip service)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순종하는 자들을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를 통해서 거듭나게 하시고 그렇게 새로운 주님의 몸된 교회 속에 신앙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들이 흔들림없이 하나님의 새하늘과 새 땅을 보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보내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기 다음 절과 함께 반복되는 표현이 바로 ‘마지막 날에’ 라는 표현이다.

여기서 계속 적으로 강조 되는 말씀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 나를 보내신 이의 뜻(39), 내 아버지의 뜻은(40)”이라고 반복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이 아버지의 뜻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인류를 향한 바램과 기대를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범죄하여 포로가 되어 있는 자신의 백성들을 향해서도 하시는 탄식이 “…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33:11, 18:31) 말씀하신다.

오늘 마지막 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40)는 보다 미래적인 주님의 바람이시다.

v39~40에 반복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함께 그 뜻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계신 내용이다. 그것 역시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39)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40)는 내용이다.

이 약속에는 두가지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담고 있다. 그 첫째는 하나님 아버지를 순종하려는 자들의 믿음을 주님 다시 오시는 마지막까지 지키시겠다는 약속이다. 앞의 v37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이미 하신 바 있다.

두번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같은 간절한 소원이 담겨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그 믿음을 지켜서 영원속에서 영생으로 다시 살리심을 받는 것이다.

바울 사도의 이런 위험에 대한 경계들을 더러 보게 되는데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갈라디아 교회가 그런 격이어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경계는 히브리서에서 경고하는 교훈들이다.

5:11~6:8의 내용들로 신앙의 초보를 벗어버리고 믿음의 장성한 자들이 되라는 권면과 함께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4~6)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고달픈 세상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마지막 주님께서 이 따에 죄와 상관 없이 자신을 바라는 자들에게 다시 오셔서 영원한 생명을 위한 부활에 들어가게 될 때는 이 세상에서의 모든 시름과 아픔을 잊어버리고 아무래도 입가가 귀에 걸리도록 크게 기뻐하고 행복해 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먹고 죽는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는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하늘 양식을 풍성히 누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최종적인 이유는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이 땅에 그 희생을 힘입어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던 마지막날에 다시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살리심을 받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