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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석
사 58:11~12 2019-08-04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자  
본문:

이사야 58:11-12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서론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신 복 중에 땅이 있었고 하나님은 가나안을 주심으로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가나안과 함께 사용된 표현이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그것입니다. 그곳은 땅이 비옥하고 물이 충분하여 주위 많은 나라들이 탐내던 땅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그것은 증명하듯 가나안에는 여러 민족들이 서로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수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영향력이 컸던 나라들의 한 가운데에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이집트, 앗수르, 페니키아, 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등이 이스라엘을 지켜봐 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방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본을 세워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가나안이 물리적으로 그 땅 위에 실제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지만, 하지만 영적으로도 젖과 꿀이 흘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순종하면 이스라엘 민족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주위 이방 민족들에게 전해질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왕을 세웠고 그 왕위도 사울, 다윗, 솔로몬왕이 지나서는 나라를 반으로 나누게 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그로부터 주위 이방 민족들의 본이 되기 보다는 이방 민족들의 우상 숭배하는 악한 관행을 따랐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기초를 모두 파괴하고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의로운 분이시기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를 결국 심판하셨고 특히 남유다는 70년간 바벨론에서 종살이를 합니다.



하지만 미쁘신 즉 약속을 꼭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본향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나라를 재건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보신 본문이 바로 그 예언 중에 하나입니다.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방금 보신 구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갈 곳이 가나안이나 예루살렘과 같은 특정 지역으로 제한하지 하지 않으셨다는 부분입니다. 이전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 땅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 제한되어 있었다면 오늘 보신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메마른 곳이라도 영혼이 만족하고 뼈가 견고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곧 물 댄 동산이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 모든 내용이 가능해졌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사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주셨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메마른 곳이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그 지역의 물 댄 동산이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이 될 수 있습니다. 방금 보신 이사야의 예언이 가깝게는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아 예수님의 오심과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가 세워질 것에 대한 내용이라는 부분에는 모두가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언에서 말하는 “너”가 곧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인데요. “그리스도인”을 주체로 해서 12 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2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즉 그리스도인들은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서론이 상당이 길었습니다만, 앞으로 12월까지 본 주제를 가지고 9차례 정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입니다.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를 다른 표현으로는 “갈라진 성벽을 수리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본적으로 “갈라진 성벽”이 무엇인지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본문

하나님께서는 기초를 잃어버린 이방 국가들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통해서 그 참된 기초를 찾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독생자 아들을 통해서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참된 기초를 이방인들에게 전해줄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그리고 특히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은 이방인들에게 또는 이웃에게 하나님의 참된 기초를 전하는 방법에 대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은 구약성경에서나 신약성경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엇인가 뛰어난 행위로 주위 이웃들의 감동을 주는 것보다 그 삶의 신실함과 사랑으로 이웃들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서 전달되고 이웃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우리 사회에 무너진 데, 즉 갈라진 성벽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보수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보수해야 할 대상의 수가 적지는 않아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눈에 갈라지고 무너진 성벽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세워 두신 기초가 파괴되고 성벽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존재가 누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 존재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를 짓기를 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은 특히 9가지 성령의 열매가 나와 있는 곳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9가지 성령의 열매 직전에는 육체의 일이 열거되어 있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 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 5:22–23 (NKRV)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와 같은 육체의 일 즉 죄가 하나님의 참된 기초를 무너뜨리는 방법일 것이고 사탄이 끊임없이 우리 각 개인과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그 성벽을 갈라지고 무너지게 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죄가 우리의 욕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사탄은 우리의 욕심이 시기가 되고 분냄이 되고 분열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찾아낸 최상의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탄은 우리 사회에 “비교”와 “경쟁”의 열심을 줍니다. 우리 사회는 태어나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신체와 가진 것을 남들과 비교하게 하고 경쟁하게 합니다. 몸무게와 키는 물론 성적, 월급, 직위, 재산으로 비교하게 하고 경쟁하게 하고 시기하게 하고 화를 내게 하고 서로 분열하기를 원합니다. 저도 경쟁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 중에 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도 배웠고 그 경쟁이 얼마나 힘든지도 압니다. 제가 내린 한가지 결론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경쟁에는 끝이 없고 만족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보다도 솔로몬의 전도서가 경쟁의 끝에 대한 결론을 더 명확하게 내려주는데요. 마귀는 우리를 영원한 “비교”와 “경쟁”의 굴레에 넣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볼 틈도 없이 자신과 “경쟁자들”만 번갈아 보다가 끝이 나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민족들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에 만족하지 못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도 만족하지 못했던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과거의 이집트 사람들과 주위의 부유해 보였던 이방 민족들을 비교하며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사탄이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자신들을 평가하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여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 중 인상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방 나라들과 같이 왕을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사무엘상 8:11–18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시려 하지만 세상은 구약의 왕과 같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달라” “옆의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이겨라 그러면 더 높은 지위를 줄게”



하지만 주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회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성적, 재산, 직위, 외모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 형제 자매입니다. 과부가 동전 몇 개였지만 전재산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그 가치가 부자의 큰 연보보다 더 크다고 하셨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바리세인들이 두 팔 벌려 하늘을 우러러 기도드릴 때, 구석에서 머리를 깊이 숙이고 기도 드렸던 세리의 기도를 진심으로 받으셨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제가 찬양을 못하고 음치라도 하나님께서는 제 진심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4부 찬양을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제 진심을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번 한 주도 얼마나 많은 비교와 경쟁으로 지치셨습니까?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더더욱 아닌 이 세상의 기준, 마귀 사탄의 기준이 우리 영혼을 끊임없이 상처 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주님의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내 진심을 정확하게 아시고 내 아픔을 정확하게 아시는 주님이 우리 교회의 머리시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요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다른 외형적인 기준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면 됩니다.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우리가 주님께 속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 주님의 제자인 줄 알리라 했습니다.





결론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갈라지고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은 우리를 항상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무한한 “비교”와 “경쟁”으로 결국 시기와 분쟁으로 더 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게 하는 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교회를 주실 때에 사탄의 계획과는 정반대로 “사랑”으로 설계하셨고 교회를 통해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나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교회의 일부라는 것이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혹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이 계신다면 하루 빨리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도 주님이 사랑으로 주신 이 교회에서 이 세상의 무너지 성벽을 함께 보수하는 역할을 다 하시며, 기쁘고 감사한 하루로 이끌어 가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