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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석
사 58:11~12, 요 4:23~24 2019-08-25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 : 예배  
본문:

이사야 58:11-12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요한복음 4:23-2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서론



8월 첫 주일에 하나님은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 인류와 이 세상을 향해 팔을 벌리고 계실 때에, 사탄은 비교와 경쟁을 부추겨 우리 가운데 시기, 질투, 분열로 죄를 짓게 한다는 말씀을 함께 보셨습니다.



야고보서 1:15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 욕구가 주셨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욕구가 식욕일 텐데요. 갓난 아기가 배고파서 무엇인가를 먹을 것을 먹으려 할 때, 그 음식이 갓난 아기의 것이 아니라고 따지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기에게는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이지요.

에덴 동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담 하와에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주셨습니다. 그 중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허락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생명 유지를 할 수 있도록 생명나무를 주셨고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의미에서 선악과를 주셨습니다. (자유의지가 없이는 참된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에게는 가져서는 안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지요. 선악과의 모양이 보기 좋고 먹음직스러웠으며 결정적으로 “하나님과 같아 질 수 있다”라는 사탄의 유혹에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는 욕심으로 변합니다. 야고보서 1:15의 말씀처럼 그렇게 아담과 하와가 가져서는 안되는 것을 가지려는 욕심을 채웠을 때 죄를 지었고 죽음을 벌로 받게 됩니다. 여기서도 사탄은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말만 했지 어떤 부분에서 같아지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말한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것은 “선악”을 알게 되는 부분에서 같아지는 것이지 하나님과 같이 “전능”해지는 것은 아니었는데요.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말만으로도 아담과 하와의 욕심을 충동질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이미 태초로부터 이와 같이 교묘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하고 죄를 짓게 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큰 증거로 주신 자유의지와 생존본능, 즉 생명 유지를 위한 기본욕구를 사탄은 계속 공격해 온 것입니다. 그것을 거짓으로 속여 가질 수 없는 것 또는 가져서는 안되는 것에 대한 욕망으로 키우게 하고 그리고 결국에는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대상을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죄를 짓게 합니다.



본문

성령의 열매와 함께 기록된 육체의 일에 대한 말씀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금하셨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교묘한 방법으로 인간이 우상 숭배를 하도록 만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우상숭배로 무너진 데를 보수하려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우상숭배와 어떻게 다른 지부터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배는 그 원어를 보면, 예배의 대상 앞에 완전히 엎드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하나님께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신 그 놀라운 일들과 구원의 계획에 대해 경외와 감사로 엎드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주님, 저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온전히 받아 주시옵소서. 제가 부족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무너진 이 세상에서 사탄은 하나님께만 온전히 드려져야 할 예배를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즉 우상숭배로 변질시키게 했습니다. 우상 즉 사탄에게 더 바치면 이 세상의 비교와 경쟁에서 이기게 해 주겠다는 거짓말로 사람들로 우상숭배를 통해 자신 즉 사탄을 섬기도록 속여왔습니다. 사탄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즉 사탄에게 더 많이 바치면 그 댓가로 더 많이 돌려주겠다"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사탄, 즉 우상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다른 종교의 우상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그 대상이 세상의 학위, 재산, 승진, 권력, 건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약속에는 "더 많이"만 있지 "완전히"가 없습니다. "완전히"라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만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사탄은 끊임없이 “더 많이” 주겠다는 약속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특히 구약말씀과 신약말씀의 몇가지 예들을 통해서 우리가 우상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4:24에서는 --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알려주십니다. 신령이란 무엇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께 거룩한 방법으로 즉, 세상의 물질적인 기준이 아닌, 영적으로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는 영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의 기준이나 가치가 예배를 평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없애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예배가 신령해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만이 온전히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드려지는 영광이 하나님 외에는 어떤 누구에게도 가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의 사사로운 욕심이나 감정이 예배를 거룩하게 구별해 내는 과정을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요.  진정은 어떻습니까? 진정은 진리대로,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가 드려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방법대로 예배가 드려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야 할 예배조차도 끊임없이 경쟁과 비교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조금이라도 더 욕심을 키워서 결국에는 우상숭배라는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왔습니다.



[경쟁: 신을 요구의 대상 또는 더 나아가 이겨야 할 대상]

열왕기상 18:26-39에는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내용은 평소에 규칙적으로 드리는 제사의 내용이 아니라서 우리가 지금 말하는 예배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우상을 섬기는 자들, 즉 사탄의 속임수에 속으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특히 우상 숭배하는 자들은 자신의 신조차도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줄 대상으로만 봅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을 심지어 이겨야 할 대상으로 봅니다.



왕상 18:26-39





[비교: 제물을 세상의 가치로 비교]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규례를 떠났을 때,

세상의 기준에서 귀한 것으로 우상을 만들었고 하나님께서 부정하다고 했던 짐승을 제물로 바쳤고 [신령과 진정 중에서 진정 즉, 진리를 떠났습니다]

스스로 세상의 기준을 받아들여 제물에 등급을 매겼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금과 은을 바치고 귀한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도 완전히 만족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으로는 자식의 생명을 가장 귀하다 여겨 자녀들을 우상에게 재물로 바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누구의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바리새인의 기도(눅 18:9-14)가 떠오릅니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죄로 가득 차 있지만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는 모습 말입니다. 속과 겉이 달랐기에 진정하지 못했고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고 했기에 신령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는 어떻습니까?

레위기 5장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송아지, 양, 염소, 비둘기, 고운 가루

우리가 세상적인 기준으로 이 제물들을 평가한다면 송아지 제물이 가장 좋고 고운가루 제물은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제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바로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실수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송아지 제물이나 비둘기 제물이나 고운 가루의 제물이나 세상이 정해 놓은 가치에 상관없이 똑같습니다. 오직 제물을 바치는 자의 중심을 보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진다면 모두 똑같이 받으실 것이며 “완전히” 그 죄를 용서하시고 “완전히” 화목한 관계를 회복해 주셨습니다.



솔로몬 천마리 송아지 (왕상 3:4) = 예수님의 정결의식을 위해 비둘기 두마리(눅 2:22-24) = 과부의 두 렙돈, 전재산(눅 21:1-4) = 세리의 기도 (눅 18:9-14)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더 많이"가 아닙니다. "더 많이"는 세상이 정해 놓은 상대적인 가치일 뿐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을 원하십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결코 측정할 수 없는 하지만 하나님만이 아시는 즉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영적인 가치를 원하십니다. 세상이 우리의 진심을 비교와 경쟁으로 파괴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온전히 받으십니다.



결론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엎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 않습니까? 세상은 특히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고 순위를 만들어서 무엇을 하든 부족하니 “더 많이” 해라, “경쟁에서 이겨라”, “더 많이 요구해라”라고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아노라”라고 말씀입니다.



사탄은 우상숭배하는 이들을 속여온 것과 같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세상의 우상과 같은 격으로 끌어내리려 할 것입니다. 예배의 주체가 내가 되고 하나님에게는 끊임없이 요구만 하고 심지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위협하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치가 세상의 물질로는 매겨질 수 없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기준으로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예배를 평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혹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이 계신다면 하루 빨리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도 주님이 사랑으로 주신 이 교회에서 이 세상의 무너진 성벽을 함께 보수하는 역할을 다 하시며, 기쁘고 감사한 하루로 이끌어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